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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위 사무실 그 위엔 살림집 ‘무지개떡’ 빌딩!

1 궁정동 웨스트빌리지 전경 사진 박영채
도시의 맛은 길 위에 있다. 좋은 도시는 살아 있는 길의 장소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길(道)을 따라 산다.
사람이 많아지면 길에는 속도가 생기고 길 위의 집은 그 속도에 따라 변한다. 명동이나 인사동 길 또는 최근의 삼청동이나 신사동 가로수길에서는 사람들의 양과 속도에 따라 지형도가 바뀐다. 자동차 위주의 빠른 길만 부각되는 신도시에는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성냥갑 아파트가 가득하다. 좋은 도시는 인체의 혈관과 같아야 한다. 빠르고 굵은 동맥부터 느리고 가는 실핏줄까지 잘 짜인 유기체적 구성이 필요하다.

지하서 옥탑까지 층층이 다른 용도
경복궁 서쪽의 마을인 서촌(西村)은 느린 시간의 동네다. 북서풍을 막아주는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형에 따라 한양도성을 병풍 쳐온 인왕산 기슭의 마을은 조선 초기에는 궁궐을 관리하는 별감이나 환관들의 거처였다. 또 후기에는 상인·공인·예인 등 이른바 중인들의 마을로서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나 추사 김정희의 집터로도 알려졌고 시인 이상·윤동주나 화가 이상범·이중섭 등의 거처이기도 했다. 현재는 청와대의 뒷동네로서 문화재 규제 외에도 높이규제 및 시선차단(?) 규제까지 받고 있는 곳이다.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迎秋門)이라는 이름처럼 지는 해를 맞이하는 쓸쓸한 가을날 같은 분위기의 마을은 최근 들어 출판사나 갤러리 카페 등 문화예술의 사랑채로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경복궁 돌담길 효자로 변에 ‘구 열린책들 사옥’이 있다. 십여 년 전 말라죽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던 통의동 백송터와 연결된 대지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집이 경복궁 안을 굽어보며 세워졌다. 일견 무심해 보이는 건물과 달리 남측에 붙어 있는 계단길은 자극적이다. 산지나 구릉지가 많은 우리나라 도시에서 자주 보이는 뒷골목 풍경이기도 하다.

2 궁정동 웨스트빌리지 전경 사진 박영채 3 궁정동 웨스트빌리지 조감도 4 구 열린책들 사옥의 계단과 옛날 계단 골목 사진 황두진
건축가는 이러한 길에 대한 판단으로 건물의 모티브를 창안해 냈다. 우선 600년 된 경복궁과 백송에 이르는 길은 땅 위로 구부러지게 이어 역사성에 대한 정리를 했다. 찻길로 뚫린 효자로에 면해서는 무심한 듯 건물의 파사드로 대응했으며 4층까지 다다르는 계단 골목길은 집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일상적 동선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연출하고 있다. 답답하고 좁은 실내 계단의 기 능적 해결을 뛰어넘는 새로운 해석이다.

몇 년 전 열린책들 사옥이 파주로 이사 가면서 사옥으로 쓰이던 4층에 주택이 들어섰다. 일층엔 카페, 이층엔 미술연구소, 삼층엔 사무실, 이른바 상가주택이 된 것이다. 서촌의 ‘동네건축가’를 자처하는 황두진은 최근에 이와 같은 소규모 저층 주상복합건물에 푹 빠져 있다. 한옥 건축가로도 유명하지만 도시 내 주거로서 단층 한옥은 한계가 있고 도심부의 밀도와 속도를 만족시킬 수 있는 주거유형이 좀 더 다양해지기를 바라고 그런 바탕에서 단순한 상가주택을 ‘무지개떡’ 형상으로 발전시킬 것을 제안하고 있다.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똑같은 모양인 아파트가 ‘시루떡’이라면 ‘무지개떡’은 지하층부터 옥탑 층까지 층층이 다양한 용도로 채워지는 형상을 말한다. 특히 높이 규제가 있고 대지 면적이 좁아 적극적 개발에 한계가 있는 서촌에는 적합한 해결책으로 보인다. 경제적 구심력이 약해진 대신 사회문화적 구심력을 향상시킬 기회요소가 되는 것이다.

유럽의 베네치아·피렌체가 이런 도시주거의 대표적인 초기 모습이라면 파리의 경우 여기에 자동차의 속도가 반영된 근대화된 도시주거를 구축해 꾸준히 사랑받는 도시가 되고 있다.

최근 궁정동에 지은 ‘더 웨스트 빌리지’는 소규모 무지개떡이다. 지하층엔 녹음스튜디오, 1층엔 카페, 직접 계단으로 통하는 2층엔 디자인사무실, 3~4층엔 원룸형 임대주택, 5층엔 주인집으로 구성되었다. 푸드스타일리스트인 집주인은 자기 집 주방을 활용해 문하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강남의 아파트 한 채를 처분해 이곳에 이사 온 뒤로 이 동네에 푹 빠져 지낸다고 한다.

경복궁·북한산·인왕산 등 지척에 있는 좋은 인프라에 개인의 일상에서 다다르고 싶은 장소를 바로 곁에 두어 늘 좋은 친구나 지인들과의 사랑방 구실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일과 관계된 사무실 공간까지 마련해 나머지 임대수입으로 건물 관리 비용이나 고정 경비를 충당하는 이른바 일석사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임대수입으로 여유 있는 은퇴생활
최근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후 노후가 걱정거리다. 아파트 투기 열풍의 주역이기도 했던 이들은 부동산의 자산비율이 80%에 이르고 있는데, 깔고 앉아 있기에는 식어버린 아파트 부동산 가치의 미래가 불투명하고 처분하자니 새로운 돌파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일부 공기 좋고 물 맑은 건강형 전원주택도 염두에 두지만 지금까지 길들여온 도시생활을 단번에 끊어내기도 쉽지 않다. 이런 고민들이 수익형 부동산으로 옮겨 타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규모 주택 임대사업과 상가주택에 관심이 쏠리게 된 연유일 것이다. 단순한 경제적 가치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도시생활의 다양한 장소들을 가까이 유지하면서 일과 집의 거리를 좁혀 삶의 질을 확보하고 지인들과의 만남의 공간, 사랑채 같은 동네를 만끽하며 노년을 보내기를 소망하는 이들이 가꾸어 나가는 다양한 무지개떡 마을을 기대해 본다.



최명철씨는 집과 도시를 연구하는 ‘단우 어반랩(Urban Lab)’을 운영 중이며,‘주거환경특론’을 가르치고 있다. 발산지구 MP, 은평 뉴타운 등 도시설계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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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