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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 명이 하루 2달러 이하로 연명… 원조 활동에 그들의 질긴 생활력 활용해야”

민동필 과학기술대사(오른쪽)는 지난 5월 대만에서 압달라 다르 교수를 처음 만났다. 좋은 목적을 살릴 수 있는 탁월한 소양과 교육적 뒷받침,남을 배려하는 포용력이 묻어나는 첫인상이 인상적이었다. 조용철 기자
세계 인구의 90%는 가난한 나라에 산다. 매년 산모 15만 명, 신생아 160만 명이 출산 전후 72시간 이내에 사망한다. 정신건강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4억5000만 명에 달한다. 그중 75%는 개발도상국에 살며 85%는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가 설립한 위대한 도전 캐나다(Grand Challenges Canada·이하 GCC)는 ‘박스 의사(doctor in a box)’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연구를 지원했다. ‘박스 의사’는 휴대전화, 휴대용 태양광발전기와 연결돼 초음파·혈액·심전도 검사를 수행할 수 있다. 임산부의 상태를 수천㎞ 떨어져 있는 의사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GCC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건강 정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의 개발도 지원했다. GCC는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지만 철저히 현장 중심적이기도 하다. 전통문화에서 좋은 점을 끌어낸다. 예컨대 아프리카 우간다의 전통적인 육아 방식에서 아저씨·아주머니의 역할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 그들에게 현대적인 육아 방식을 훈련시키고 있다.

GCC가 후원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선진국에도 유용한 것들이다. 예컨대 ‘박스 의사’는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 임산부들의 불편을 덜어 줄 수 있다.

원조를 통해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캐나다 같은 선진국에도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캐나다의 대외 원조 체제에서도 관료주의 병폐가 문제였다. 대외 지원 사업 승인에 최대 43개월씩 걸렸다. 그래서 캐나다 정부는 2008년 질병 퇴치 해외 원조의 효율화를 위해 GCC를 신설했다.

GCC와 GCC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빌게이츠재단의 ‘범세계 보건의 위대한 도전 (Grand Challenges in Global Health)’ 프로그램에 이론적·방법론적 기반을 제공한 것은 토론토대 의대의 압달라 S 다르(64) 교수와 피터 싱어 교수다.

최근 GCC의 과학자문위원회 위원장인 다르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를 초청한 것은 민동필 외교통상부 과학기술대사다. 과학지식혁명을 추구하는 ‘21세기 다빈치회 회장’이기도 한 민동필 대사는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프로젝트도 그가 설계했다.

GCC 모델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인도·이스라엘·브라질, 중동 국가들이 채택한 GCC 모델을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르 교수와 민 대사를 지난 16일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GCC의 장점은.
다르 교수=“연구와 프로젝트에 보다 많은 지원을 하려면 행정 비용을 낮춰야 한다. 우리는 행정 비용을 8%로 낮췄다. 과학 혁신뿐만 아니라 사회 혁신, 비즈니스 혁신을 동시에 추구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같은 원조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우리의 방식은 차별성이 있다. 우리 모델은 보건 분야뿐만 아니라 에너지·농업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는 극적인 변화다. 극적인 변화는 ‘변화를 일으키는(transformative)’ 변화다. 혁신은 가난한 나라들이 빈곤을 탈피하게 하는 출구전략이다. 아이디어가 탁월하기만 하면 우리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이 학생이건 신참 연구원이건 가리지 않고 연구비를 지원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냄새 나는 양말로 모기를 유인해 퇴치한다는 탄자니아 출신 박사과정 학생의 아이디어를 지원했다. 우리는 또한 ‘연구실 밖의 연구’에도 관심이 많다. 혁신은 피라미드의 상부뿐만 아니라 하부에서도 나올 수 있다.”

민 대사=“한국의 경우도 방향은 과학 혁신과 비즈니스 혁신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혁신의 가능성은 ‘지식 생태계(ecosystem of knowledge)’를 수립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 지식 생태계는 과학이 창출하는 지식과 비즈니스 이윤이 끊임없이 선순환하는 체계다. 과학 지식이 기술을 낳고 기술이 시장이나 산업, 이윤을 낳는 것이다. 가장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순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다르 교수의 방식을 참조해야 한다. 그의 방식은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고, 한국이 개발도상국을 돕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국제 원조에 헌신하는 과학자도 선택을 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곳은 많은데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이다. 선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다르 교수=“우리는 지원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확정된 방법과 지침이 있다. 세계 전문가들의 의견으로부터 결론을 추출해 내는 ‘델파이 기법(Delphi technique)’을 활용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우선순위를 파악한 단체들의 결정에 따른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개도국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프로젝트를 선호한다. 그래서 과학기술 혁신뿐만 아니라 사회와 비즈니스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프로젝트가 우선순위의 상부를 차지한다.”
민 대사=“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올바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발굴해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유능한 인물을 끌어들이는 것은 프로젝트 목표의 진정성과 존재 가치다.”

-큰 과학 프로젝트를 달성하려면 다른 조직들과 많은 협조·협의가 필요하다.
다르 교수=“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진행하는 임신부·산모, 신생아, 어린이의 건강을 위한 ‘출생 시 생명 살리기(Saving Life at Birth)’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빌게이츠재단, 세계은행, 유세이드(USAID), 노르웨이 정부, 영국 국제개발국(DFID)이 우리의 파트너다. 프로젝트에 따라 파트너는 달라진다. 한국 정부·기관들이 혁신적인 연구를 위한 파트너십 관계를 우리와 설정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대환영이다.”

민 대사=“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프로젝트의 경우 학술기관을 설득해 협조를 얻어내는 것과 매체를 통해 대중을 설득하는 게 중요했다. 정부와 정치인의 설득도 필요하다. 2007년에는 대선 후보가 국부 창출과 과학기술 경쟁력 증진을 위한 ‘지식 생태계’ 건설에 공감한 덕택에 프로젝트 추진이 수월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과학자들의 소통 능력이나 대인관계 능력은 어떤가.
다르 교수=“일반화하기 어렵지만 많은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포함해 과학 아이디어를 소통시키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과학자들의 소통 훈련도 필요하지만 대중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과학담당 기자들과 협조하는 게 중요하다. 대중과의 소통이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쌍방향 소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습득하기 어려운 듣는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며 윤리적인 문제를 중시해야 한다.”

민 대사=“과학의 언어가 일반 언어와 다르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과학자들의 연구는 ‘제1의 자연(first nature)’, 즉 객관적 우주를 이해하는 데 집중됐다. 과학자들은 각자 자신의 지식 분야에 ‘갇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 과학자의 주요 연구 대상은 생명과학, 인간의 마음, 뇌와 같은 ‘제2의 자연’으로 전환됐다. 과학의 연구 주제가 보통사람들의 관심사에 근접하게 된 것이다. 이제 과학자들은 과학자들끼리뿐만 아니라 공중과 소통해야 한다. 게다가 학문 분과의 경계를 넘어서는 학제 간 연구가 엄청나게 활성화돼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

-개발도상국들의 과학 잠재력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다르 교수=“개도국들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식량·물·위생·에너지 같은 당면 문제들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많은 개도국에 과학기술의 씨앗이 이미 뿌려졌다. 인류는 모두 같은 종(種)이다. 우리 모두 우리의 삶을 혁신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오늘날 20억 인구가 2달러 이하의 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선진국 사람들이라면 그 돈으로 생존할 수 없다. 개도국 사람들이 그 돈으로도 살 수 있는 것은 생활 속에서 창의력(ingenuity)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지역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그 지역에서 나온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 사람들의 혁신 능력과 창의력을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 앞으로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다르 교수=“한국은 이제 과학, 녹색 혁신, 통신 기술, 제조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다. 세계는 한국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한국은 불과 수십 년 전 개발도상국이었다. 한국이 받은 원조는 한강의 기적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한국은 개발도상국도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힘이 있다. 대외 원조를 확대해야 한다. 두 달 전 GCC를 모델로 ‘위대한 도전 브라질’이 결성됐다. 한국이 ‘위대한 도전 코리아’를 창립한다면 적극적으로 돕겠다. ‘위대한 도전 코리아’가 출범될 경우 한국은 적은 비용으로 개발도상국의 보건·농업·에너지 개발을 도울 수 있다.”

민 대사=“우리는 생각과 비전을 공유하기 때문에 협력의 여지가 크다. 발전을 위해서는 적절한 기술 이전과 민영부문(private sector)의 참여가 필요하다. 가난 탈출을 위해서는 경제발전을 자극할 수 있는 산업구조가 형성돼야 한다. 다르 교수의 모델에 한국의 발전 경험을 접목하면 개도국의 산업구조 건설에 필요한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모델이 창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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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