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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갑자 딱 중간, 2014년은 남북통일 큰 기회

계룡산은 영산이다.

생민들의 오랜 염원이 서린 지성소다. 머리는 봉황, 몸통과 다리는 용의 형상인 국보 백제금동향로의 모델이다. 신라 5악의 하나로 제왕들이 제사해 온 기도터이기도 하다. 남동쪽 기슭에 신도안이 있다. 신도안은 대한민국 육·해·공 3군 통합기지인 계룡대가 들어서기 전까지 어지러운 무속과 신흥 종교의 본산으로 자리 잡아왔었다.

남서쪽의 국사봉(國事峯). 해발 576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계룡, 곧 봉룡(鳳龍)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조망이 으뜸이다. 계룡산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장소로 지기(地氣)가 세기로도 유명하다.

“내가 너무 늙어서 다시 못 오를 줄 알았느니. 한데 오늘 여기 다시 서니 수십 년 묵은 속세의 때를 말끔히 씻었도다. 미재라. 동방의 유정한 산하여. 넓은 벌판 사이로 산과 산이 연이어 굽이치고 내달리니 이름 그대로 연산(連山) 고을이 아닌가. 괘상으로는 중산(重山) 간(艮:

)이로다. 대저 이 나라가 오묘한 산국(山國)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 산국에서 구시대의 낡은 것들이 종막을 고하고 새로운 문물과 문화가 움틀 게야.”
백두옹은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감개무량해했다.

“어르신, 오늘 또 놀랐습니다. 가파른 산길을 어찌 그리도 잘 오르시는지요? 젊은 제가 되레 힘이 팽겼답니다.”
강권 교수는 나무 지팡이를 내던지며 철퍼덕 주저앉았다.

“요새 사람들 허우대만 멀쑥하지 속이 죄다 곯았어. 우리 젊었을 적엔 하루에 이 100리 길도 너끈히 걸어 다녔네.”
백두옹은 주머니에서 오원단(五元丹) 몇 알을 꺼내 건넸다. 쥐눈이콩알만 한 환약이었다. 입안에서 오물거리니 향기와 원기가 온몸에 퍼졌다.
계룡산이 품은 동양남·서양녀 형상의 비밀
“어르신, 다짜고짜 왜 여기에 올라오신 건지요?”

“강 교수, 여기가 이른바 국사봉 아닌가. 대권은 국사니까 국사를 논하자면 한번쯤 올 만하지 뭐. 이곳은 ‘기억의 장소’일세. 장소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문화 공간이지.”

백두옹은 계룡산 상봉과 쌀개봉·연천봉을 그윽한 눈길로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강 교수도 그 눈길을 좇았다. 용틀임하듯 뻗어 올라간 끝자리, 봉황의 벼슬 같은 연
봉이 맑은 가을하늘 아래서 신령스러운 자태를 뽐냈다.

“뭐가 보이는가?”
“날씨 쾌청해서 스카이라인이 선명합니다.”
“그리고?”

“뭉게구름요.”
강 교수의 말에 백두옹은 조용히 웃었다.

“내가 오늘 몇 가지 천기(天氣)를 누설하려네. 잘 듣게.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하기 전 몸소 이곳에 올랐다네. 저 아래 신도안에 궁궐을 짓고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서 천도할 셈이었지.”

“그건 역사적 사실이지요. 이후로도 여러 차례 계룡산 천도설이 나왔고요. 심지어는 박정희 대통령 때도 그랬으니까요. 오늘날 계룡대와 세종시가 그 결실 아니겠어요?”
“그런데 왜 이곳을 꼽았던 건지 아는가? 이곳에는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겨둔 천장지비(天藏地秘)의 표식이 많다네. 그중 하나가 저 스카이라인이 품고 있는 동양 남자, 서양 여자의 형상일세.”

백두옹은 손가락을 뻗어 상세히 설명했다. 송신탑이 박힌 상봉은 동양 남자의 턱이고 쌀개봉은 코다. 그 뒤 관음봉과 문필봉은 서양 여자의 얼굴이며 연천봉은 가슴이다. 보는 각도와 빛의 양에 따라 이마와 턱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
“와, 정말 그렇군요! 두 남녀의 얼굴 형상이 완연해요!”

강 교수는 탄성을 질렀다. 워낙 성격이 똑 떨어지는 사회과학자라서 이 정도지 종교적인 인간형이었다면 합장하고 예배했을 거였다.
“화순 운주사 와불(臥佛)은 인공물이네만 저 산상(山上)의 선남선녀는 천지의 조화일세. 전에 말했잖은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간방(艮方)인 한국의 소년과 태방(兌方)인 미국의 소녀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국. 이른바 간태합덕(艮兌合德)이라는 것이네.”
“절묘합니다. 하지만 자연물에 지나친 의미부여 아닌가요? 한국의 산은 사람뿐만 아니라 갖가지 동물 형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잖아요. 풍수의 형국론이 그래서
나왔고요.”

냉철한 강 교수는 신비주의를 단호히 배격하는 입장이었다.
주역 <계사전>에 이르되 ‘우러러 천문을 보고 굽어서 지리를 살피고,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해서 팔괘를 만들었다’고 했어. 자연을 단순화시키고 부호화한 것이 주역 괘상일세. 거기서 인간사의 준칙을 보는 건 철학자의 몫이네.”
주역 철학은 64괘라는 범주로 세상을 해석한다. 따라서 코드에 담긴 내용을 해석할 때, 상징과 비유의 요소를 지닌다. 은비학(隱秘學)의 속성도 거기서 온다.
“이성계는 왜 600여 년 전 이곳 국사봉까지 와서 저처럼 기막힌 땅의 비밀을 보고도 이 터를 쓰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때가 아니었음에.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운주사 와불이 일어서고 저 산꼭대기 선남선녀가 합궁하는 날이 오고 있다네. 그 옛날 소년·소녀가 성장하여 어느덧 성년이 되었지. 이제 동서 두 문명이 조화를 이뤄 옥동자 같은 신문명을 창도해야 할 때라네. 그걸 알고 행하면 얻는 것이고 모르고 지나치면 잃는 것이지. 나는 대선 후보들이 문명사적 관점에서 오늘 우리 시대를 보고 큰 그림을 그려주길 바라네.”
백두옹은 학의 자태로 도인체조를 했다. 그러더니 사방을 향해 기운을 뿜어내주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보고서 박수 치며 환호했다. 구경꾼들
이 내려가고 조용해지자, 백두옹이 한참 동안 묵념한 뒤 앉았다.

“대선은 국가의 축제일세. 축제에는 마땅히 희생제의가 필요하지.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데 어찌 마땅한 제물 없이 넘어가겠는가?”
강 교수가 듣기에 좀 생급스러운 말씀이었다.

“YS에서 MB까지 자그마치 20년간 충청권에서 이긴 자가 대권을 거머쥐었다네. 1992년 YS, 97년 DJ, 2002년 노무현, 2007년 MB가 모두 그랬네. 그 중심에 이 계룡
산이 있지.”

듣고 보니 새뜻한 관점이었다. 중심점에 사람이 아닌 산을 놓는다는 게 참신했다.
“왜 계룡산이지요?”
“2007년 늦여름이었다네.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압도적으로 기선 제압하던 때일세. 이곳 국사봉을 오르내리며 산기도하며 살던 내 후배가 찾아왔었네. 대뜸
노무현 대통령이 곧 죽게 생겼다는 게야. 현직 대통령의 서거라니? 내가 헛소리 마라고 야단쳤네.”
“그분 뭣 좀 보는 분이었군요.”

옆에 앉은 강 교수가 초를 쳤다.
주역정역을 좀 읽은 사람이었네만 아는 소리는 여간해서 잘 안 했거든. 나는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시답잖은 언행을 경계하네. 그래서 일언지하에 호통친 거야. 그랬더니, 지금 죽으면 태산같이 무거운 역사적 죽음이 되고, 퇴임하고 죽으면 한 맺힌 죽음이 된다는 게야. MB 당선의 일등공신 역할을 해놓고도 비참하게 죽는다나? 희생제의를 피할 수 없다는 거지.”

“적중했군요.”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하고서야 그 후배의 말이 옳았다는 걸 알았지. ”
“그분 이따 만나볼 수 있을까요? 이 근처 사실 거 아녜요?”
“이 근처에 있는 건 맞는데 못 만나.”

“왜요?”
“그해 가을, 흙 보탬이 됐으니까.”

“이인(異人)이었군요.”
“이인은 무슨? 신명을 극심히 모아 궁구하면 그런 정도는 보여. 그날 그 후배와 의견 일치를 본 게 하나 있네.”

백두옹은 눈을 감고 호흡을 골랐다. 강 교수는 말없이 기다렸다. 이윽고 눈을 뜬 백두옹이 입을 열었다.
2002년엔 편 가르고 싸우느라 기회 놓쳐

“19대 대권을 쟁취한 이가 남북통일의 발판을 마련할 거라고. 실은 노무현이 집권한 2002년 임오년이 통일의 적기였다네. 그런데 편 가르고 옥신각신 다투느라 큰 그림을 못 그렸으니 모르고 지나갈밖에. 내후년인 2014년 갑오년이 더 큰 기회야. 1984년부터 시작된 하원갑자 60년의 딱 중간이거든. 국운 융창기의 한복판에 통
일 못하면 언제 하겠어? 나는 대선 후보들이 절대 잊지 말았으면 해. 남북통일이야말로 진정한 대통합이니까.”

“대권, 대통합, 남북통일! 왠지 겉도는 느낌입니다. 좁은 소견머리를 못 벗어난 각 후보들이 소권, 소통합을 위해 절절매는 행색들이잖아요. 대통합과 남북통일은 북한 김정은 맘먹기에 달렸어요.”

강 교수가 속 시원히 내질렀다.
“허허허허, 그거 말 된다.”
백두옹이 목젖을 드러내며 웃었다.

“축제에는 제물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처녀의 몸으로 일찍이 적진에 뛰어든 박근혜 후보! 그는 김정일과 단둘이 밀실서 회담한 경험이 있어요.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된 아주 소중한 경험이죠. 박정희와 김일성의 사후에 대를 이어 지도자가 된 2세들이 만나 무슨 얘기를 했겠어요? 짐작건대 통일 얘기 나누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한쪽이 죽어버렸어요.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독점할 권리가 있죠. 제가 박근혜라면 한 말 안 한 말, 한 약속 안 한 약속 섞어가며 기선 제압해버리겠어요. ‘문재인, 안철수 두 동생들아, 너희가 국정을 제대로 아니? 민족 통일의 해법을 아니? 누나 말 명심해 들어. 오해는 말고. 내게 비법이 있단다.’ 그렇게 어르면서 당차게 치고 나가겠어요. 그깟 장학회니 학교 법인이니 하는 따위들은 대선 축제의 제물로 기꺼이 던져 줘버리고요. NLL 문제도 박근혜가 물고 늘어질 소재가 아니에요. 여하튼 지금 지켜지고 있으니까 대범하게 묻어버리고 휴전선 걷어낼 생각을 해야죠. 중국과 일본이 민족주의를 내걸고 있는 마당에 북한을 끌어안고 우리 민족이 함께 살길을 제시해야지요. 유라시아 철도 놓고 시베리아 가스관 끌어오고요. ”

“얼씨구! 그럼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제물은?”

날이 저무는 것도 모르고 백두옹은 흥에 겨워 추임새를 넣었다.



김종록 성균관대 한국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밀리언셀러 『소설 풍수』와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바이칼』 등을 썼으며 중앙일보에 ‘붓다의 십자가’를 연재했다. 본지 객원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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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