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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떠난 민심, 사라진 정당

2009년 1월. 정치부에 갓 입성해 민주당을 출입하는 야당팀 막내 기자가 됐다. 그런데 자유선진당도 담당하란 지시가 떨어졌다. 선진당은 의석 18석의 제3당이었다. 자민련·국민중심당에 이어 ‘충청당’을 표방했다. 2008년 창당 후 이회창 총재 중심의 ‘1인 정당’이긴 했지만 ‘충청의 아들’ 심대평,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탈북자의 대모’ 박선영 등이 있었다. 보수 성향이었지만, 진보적인 문국현 대표가 이끈 창조한국당(의석 3석)과 함께 제3 교섭단체도 꾸렸다.

하지만 대북 문제 등에서 독자적 목소리를 내도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한나라당·민주당 양당 체제가 공고했기 때문이다. 정치 문외한이던 기자 1명에게 선진당을 맡긴 것도 한마디로 ‘기사가 안 되기 때문’이었다.

2011년 1월. 기자는 한나라당을 출입하게 됐다. 그래도 선진당은 계속 담당했다. “선진당은 한나라당과 성향이 비슷하니 여당팀이 맡아도 된다”는 게 데스크의 판단이었다. 선진당을 바라보는 대다수의 시각이 그랬다. 야당도 여당도 아닌 존재였다.

2012년 10월. 의석 4석의 선진당이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 흡수됐다. 선진당의 면면은 3년9개월 전과 판이했다. 불과 1년 전 입당했던 이인제 대표가 간판이었다.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했다 떨어진 이, 박근혜계 인사들의 모임에서 활동하다 나온 이가 소속 의원이었다.

어쩌다 이리 됐을까. 우선 ‘1인 정당’의 한계가 있었다. 당 대표는 표면적으론 이회창·심대평 순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의사결정은 1인자 중심으로 이뤄졌다. 때문에 이·심 전 대표는 주도권을 놓고 충돌했다. 이인제 대표가 입당한 지 얼마 안 돼 대표가 된 건 총선 패배로 이·심 전 대표가 물러난 상황에서 또 다른 ‘1인’이 필요해서였다. 그러나 이인제 대표가 선진통일당으로 당명을 바꾸려 하자 이 전 대표는 지난 5월 탈당했다.

불분명한 정체성도 문제였다. 심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입각 제안을 받으면서 분란은 심화됐다. 기본적인 민주주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4·11 총선 땐 외부인사를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세워놓고도 당 대표 뜻대로 비례대표 명단을 고쳤다. 5월 전당대회 땐 당을 장악하려던 이인제 대표가 유령 당원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 수사까지 받았다.

그러면서 민심을 설득할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 충청 출신들은 “선진당이 만날 싸우는 게 지긋지긋하다. 앞으로도 기대 안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 정당의 기반이 사라진 것이다. 선진당은 총선에서 대패했고, 소속 의원은 물갈이됐다. 제3당의 지위를 ‘종북 논란’에 휩싸인 통합진보당에 내줬다.
이제 선진당은 사라진다. 열두 번이나 당적을 옮긴 이인제 대표의 유랑 행각만 부각된 채 말이다. 나름대로 제3의 길을 걸으려던 과거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앞으로 또 다른 충청당이 나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선진당식 오류와 비극을 반복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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