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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56년 … JTBC ‘무자식 상팔자’ 주연 이순재

이순재는 지치지 않는 배우다. 50여 년간 연기하면서 촬영장에 늦어본 적이 없다는 그는 이날도 촬영 시작 3시간 전 현장에 도착했다. 분장을 끝내고 큐 사인이 올 때까지 대본 연습을 하는 그는 천생 배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 이순재(78)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현재형’ 배우다. 여든 가까운 나이에도 아직도 연극, 영화, TV 드라마 할 것 없이 정열적인 활동을 펼친다. 젊은 배우는 물론 많은 중견 배우가 자신의 롤 모델로 그를 꼽는 이유다. 그가 자신의 연기 고향인 JTBC로 돌아와 농익은 연기력을 펼친다. ‘사랑이 뭐길래’를 필두로 김수현표 가족드라마의 단골 주연으로 출연해 온 그를 만나 자신만의 연기 철학과 JTBC의 화제작 ‘무자식 상팔자’ 얘기를 들어봤다

여든 바라보지만 밤샘 촬영 거뜬 … 후배들이 ‘강철 순재’라 불러
1964년 TBC 1기로 본격 연기 인생
김수현 작가와는 1979년 첫 호흡
‘김수현 사단’ 배우 중에선 반장급



30년 짝꿍 김수현은 배려 깊은 사람



 ‘천의 얼굴을 가진 인간’. 뛰어난 배우를 두고 사람들이 흔히 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작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은 듯하다. 뛰어난 배우라 하더라도 나이를 먹을수록 연기할 수 있는 배역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순재는 다르다. 해가 거듭될수록 그의 배역은 계속해서 진화한다. ‘사랑이 뭐길래’(1991)의 자린고비형 가장인 ‘대발이 아버지’부터 ‘거침없이 하이킥’(2006)의 코믹스러운 ‘야동 순재’, 최근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에서 선보인 로맨스의 주인공 ‘김만덕 할아버지’까지 그는 매번 다른 얼굴로 대중 앞에 서 왔다. 그런 그가 27일부터 방영되는 JTBC 주말극 ‘무자식 상팔자’(극본 김수현·연출 정을영)의 가장 역할을 맡아 시청자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를 드라마 촬영장에서 만났다. 오전 내내 대본 리딩을 한 직후라 피곤할 법도 했지만 목소리엔 오히려 힘이 넘쳤다. “바쁘신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가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으로 웃으며 답했다. “뭐 이쯤이야 기본이지. 시작하시지요.”(웃음)



●오랜만에 가족드라마로 시청자들을 만나게 되셨네요. ‘무자식 상팔자’는 어떤 드라마인가요.



 “한마디로 가족 간의 정을 다룬 드라마예요. 스토리가 재미있고 아주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요. 워낙 김 작가 작품을 좋아하지만 이번 작품은 특별히 기대가 됩니다.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에서 벌어지는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 동서 간의 문제, 형제 간의 문제, 젊은 친구들의 요즘 사랑까지 많은 것이 들어 있어요. 애증이 있고, 오해가 있고, 그러면서도 또 화해하려는 노력이 있고 말이지. 거기에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재미가 더해져 있어요. 아주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드라마죠.”



●이번에 맡은 배역은 어떤 캐릭터인가요.



 “집안의 가장으로 나이는 팔십 가까운 영감이고, 무엇보다 노인 증세가 아주 심한 사람이에요. 가장 큰 증세는 잔소리가 많은 거고요. 어디 잔소리뿐인가. 했던 얘기 또 하고, 한번 말을 시작하면 끝이 없어 가족들을 곤욕스럽게 하는 캐릭터지. 그러면서도 아들 셋을 제대로 공부시켰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죠. 다 큰 아들 세워놓고 ‘쪼인트’도 까고, 속으론 마누라를 무척 사랑하지만 잔소리가 심하다 보니 마누라는 늘 피해다니지.”(웃음)



 이번 드라마로 이순재는 김수현 작가와 4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됐다. 그는 그동안 ‘사랑이 뭐길래’부터 ‘목욕탕집 남자들’(1995), ‘사랑하니까’(1997), ‘내사랑 누굴까’(2002), ‘엄마가 뿔났다’(2008) 등 제목만 들어도 무릎을 칠 만한 김수현 작가의 대표작들에 빼놓지 않고 등장했다. 이른바 ‘김수현 사단’이라 불리는 배우 중에서도 그는 반장급에 속한다.



27일 오후 8시50분에 첫 방송하는 JTBC 주말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 [중앙포토]
●김수현 작가와는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



 “1979년 TBC ‘고독한 관계’에서 만났으니까 30년이 더 됐네요. 그때 함께 출연한 배우로는 한진희·김민자·허장강 선생이 있었고. TBC에서만 김 작가와 세 작품을 같이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대발이 아버지’를 만들어 준 ‘사랑이 뭐길래’가 기억에 많이 남지. 그리고 TBC 말기에 했던 재미있는 드라마가 하나 있었어요. ‘아롱이 다롱이’(1980)라고 홈코미디였는데 시트콤 이상으로 웃겼어. 딸 셋, 아들 하나 둔 집안의 이야기인데 정말 재미있는 설정이었지요. 요런 자식도 있고, 저런 자식도 있다고 해서 ‘아롱이 다롱이’였는데, 그때 내 아내 역할이 사미자, 아들이랑 딸이 이덕화랑 이미숙이었어요. 녹화하다 우리끼리 웃기 일쑤였지. 당시 연출이 곽영범 PD였는데, 우리가 하도 웃어 NG를 내니까 ‘제발 웃지 말라’고 화를 내기도 했을 정도였어요. 요즘도 김 작가에게 ‘아롱이 다롱이’ 한번 더 하자고 조른다니까.”(웃음)



TBC 시절 밤새워 연기하던 추억 생생해



●작가로서 김수현의 강점은 뭐라고 보시나요.



 “그 양반은 절대 ‘엉뚱한 픽션’을 안 써요. 우리가 경험했음직한, 또 경험해 볼 법한 ‘현실의 이야기’만 다루지. 혹자들은 ‘언어의 마술사’라고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하기도 하는데 그 양반만큼 풍부한 어휘력을 가지고 절묘하게 상황을 표현하는 작가도 없어요.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지. 심리 변화에 맞는 어휘를 탁탁 짚어내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죠. 그 양반 대사에선 단어는 물론 접속어까지 다 의미를 가져요. 그러니 토시 하나 허투루 뺄 수가 있나. ‘쪽대본’을 쓰지 않는 걸로도 유명하죠. 이번에도 방송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11회와 12회 대본이 나왔다니까요. 음…, 시청자들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으면서도 열광시킬 수 있는 요인을 모두 갖춘 작가랄까.”



●인간 김수현을 평가하신다면요.



 “글쎄, 뭐. 내가 생활을 같이해 본 적이 없어서(웃음). 내가 본 김 작가는 원칙에 어긋나는 건 결코 용납하지 않는 양반이죠. 또 본인도 그렇게 사시고. 그래서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때론 무서워하는 거고요. 대신 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양반 작품을 보다 보면 ‘저 사람이 어떻게 저 배역을 맡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 양반의 배려 때문이죠. 김 작가는 어려운 경제상황에 놓인 배우가 있다고 하면 등용해서 기회를 주곤 해요. 구체적으로 실명을 거론할 순 없지만 그 양반 작품으로 소생한 배우가 한둘이 아니지.”



 이순재는 TBC와도 인연이 누구보다도 깊다. 그가 대중에게 배우로서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것도 1964년 TBC의 개국과 함께였다. 서울고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시절 연극에 심취해 배우의 꿈을 키웠다. 1956년 KBS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가’로 데뷔한 뒤 64년 TBC 1기 탤런트로 선발됐다. 이후 80년 TBC가 통폐합될 때까지 17년간 TBC 전속배우로 활약했다.



● JTBC로 돌아온 소회가 남다를 듯한데요.



 “여러 가지로 감회가 깊죠. 1979년 KBS 별관 여의도사옥 스튜디오 오픈도 제가 했어요. ‘고독한 관계’ 첫 번째 녹화를 거기서 했거든. 그러고서 1년 뒤에 얼렁뚱땅 통폐합을 당하고 말았지만 말야. 아직도 밤을 새워가며 작업한 기억이 많이 나요. 지금 중앙일보 편집국이 들어서 있는 서소문사옥 5층인가 6층에 스튜디오가 있었지. 감회도 새롭고, 옛날 생각도 자꾸 나고.”



 그가 맡은 배역 중엔 유독 ‘아버지’ 역할이 많았다. 시대별로 변화해 온 아버지상을 모두 연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득 실제 ‘아버지’로서 그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재미없는 아버지지 뭐. 우리 젊었을 땐 배우로 일하면서 가정을 돌보고 아버지 노릇 할 시간이 없었어요. 한 달에 20여 일은 밖에서 주야로 뛰어야 했다고. 자연히 가정엔 소홀할 수밖에 없었지.”



 그의 아내는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최희정씨로, 슬하에 1남1녀와 외손자 둘을 두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배우로서 일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아내의 이해심을 꼽는다. 최근 TV 토크쇼에 출연해서는 첫 아들의 돌반지를 밑천으로 만두가게를 열어 6년 만에 210평짜리 빌딩을 산 아내의 일화를 소개한 뒤 “알뜰하고, 억척스럽게 산 부인의 땀과 눈물 어린 내조가 있었기에 마음 편히 연기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시청자에게 행복 선물하는 드라마 할 것



이순재는 동료 연기자들 사이에서 ‘강철 체력’으로도 유명하다. 후배들 사이에서 ‘불사조’로 통할 정도다. 젊은 배우들도 힘들어 한다는 밤샘 촬영을 늘 거뜬히 소화하기 때문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혹독한 촬영 일정을 견뎌낼 수 있는 데는 철저한 자기 관리의 힘이 크다.



●평소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어머니가 96세까지 건강하게 살다 가셨는데 그 체질을 물려받은 것 같아요. 술은 원래 못 먹고, 담배는 1982년 ‘풍운’ 할 때 끊었고요. 다행히 젊었을 때부터 술·담배를 안 해서 몸이 덜 망가진 것 같지?”(웃음)



●언제까지 연기를 하고 싶으세요.



 “대사가 암기될 때까지요. 현장에서 4~5번 NG를 내면 그땐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엔 책을 낼 생각도 하고 있어요. 지난 연기 인생을 돌아보는 책을 에세이로 낼까 해요.”



●‘무자식 상팔자’에 임하는 각오 한 말씀 해주세요.



 “‘무자식 상팔자’는 명실상부한 홈드라마예요. 대가족이 한 울타리에 모여 살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죠. 드라마 보면 내 대사 중에 그런 말이 나와요. ‘요즘 어떤 가정은 추석이나 설날에도 자식 얼굴 못 본다는데, 새끼들 얼굴 아침저녁으로 보는 나는 보통 복을 받은 게 아니다’라고요. ‘무자식 상팔자’라는 제목처럼 가끔 속 썩이는 자식들이 없으면 얼마나 편할까 생각이 들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자식이 있어 더 행복한 거잖아요. 시청자들이 우리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백승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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