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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당신의 지성은 차라리 질병입니다

박유진
미국 웰슬리대
미디어학부 4학년
머리가 비었다, 안 비었다를 정의하는 기준이 지식의 양이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삶의 지혜가 있는 사람도 영어를 못하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고, 마이너스 인격에도 주워들은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지식과 분별력의 혼합이 ‘지성’인 것으로 생각되면서 많은 사람이 ‘지성인’의 범주에 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했다. 많은 것을 알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 물론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평가절하하는 오만이 될 때 지성은 질병이 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주유소에서 잠시 일을 했다. 서울 강남 양재대로변 주유소였는데 하루 종일 외제차들이 심심찮게 드나드는 곳이었다. 외고를 졸업하고 과외가 아닌 막일을 택했던 이유는 내가 살던 곳과 다른 세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타인을 얕보는 지성의 간교함을 봤고, 지성을 이유로 무시당하는 동료들의 먹먹함을 봤다. 입 떡 벌어지게 비싼 차를 몰고 온 사장님은 대뜸 나에게 ‘배운 것도 없는 게’라고 말했다. 주유원이라는 이유로 매일같이 무시당했으나 그 세계를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위선자들의 거짓 지성 앞에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직까지도 가끔 그 사장님 생각이 난다. 만일 나를 주유원이 아닌 자제분의 과외선생이나 동료로 만났더라도 그렇게 대했을까.



 거짓 지성과 가시적인 품위에 그렇게 학을 떼고, 지성이 꽃을 피울 거라고 생각한 대학에 왔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수에 넘치는 대학에 와서 좋은 점이라고는 지성이 질병이 돼 버린 자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것과 밖에서 부모님의 어깨가 움츠러들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엘리트라는 허울을 쓴 이들은 남들에게 ‘세상물정 모르는 책벌레’로 여겨지는지 모르고, 각자의 이상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 이상의 힘을 쏟는다.



 영리하고 열정 넘치는 동기들에게 파묻혀 지성이 풍기는 악취에 나의 후각이 마비된 지 4년째.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포부를 품고 무섭게 돌진하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땅으로 꺼지고 싶을 만큼의 공포를 느낀다. 더불어 살고 싶다는 사람은 없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는 사람만 있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답도 없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지성의 피해자로, 혹은 지성을 빌미로 한 가해자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학원가에는 이른 아침부터 온갖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전철역 계단을 줄 서서 올라가야 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무엇을 위한 분주함이며 누구를 위한 지성인가. 변화를 갈망하는 자기중심의 지성보다 타인을 세워 주며 함께 사는 지성이 넘쳐나는 사회, 그래서 웃음이 마르지 않을 사회를 감히 꿈꿔 본다.



박유진 미국 웰슬리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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