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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이 있는 길 ③ 경기도 가평 연인산

가을 산의 매력은 올라봐야 안다. 경기도 가평군은 등산객을 위해 임도로 쓰던 길을 최근 산책길로 개방했다. 임도 시작점부터 40분은 오르막, 이후부터는 일반 등산로보다 평탄한 길이 펼쳐진다. 연인산은 단풍이 곱고 길이 넓어 부부와 연인이 함께 걷기 좋다. [신인섭 기자]


가을 산은 사람을 부른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은 평소 산과 담 쌓고 지낸 사람도 한 번쯤 꿈틀하게 만든다. 경기도 가평군 연인산(戀人山)도 그중 하나다. 이름만으로도 연인들을 부추기는 산, 뭔가 로맨틱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산이다. 철쭉과 진달래로 유명한 연인산은 봄에 사람들이 몰린다. 가을에 다시 찾아간 이유는 둘레길 전도사인 박승기(56)씨가 추천해서다. 그는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의 ‘등산 교수’로 제주 올레길을 포함해 북한산 둘레길, 경기도 둘레길 등 굵직굵직한 길 만들기 작업에 참여했다.

산허리 감아도는 단풍길 8㎞ … 도시락 싸들고 데이트하기 딱
우정고개 ~ 백둔리 4시간
유사시 불길 잡기 위해 만든 임도
운동화 신고도 걸을 수 있어



 지도 한 장 들고 길을 찾아나서는 게 일, 그래서 이름난 길보다 알려지지 않은 길을 좋아한다. 추천 이유는 이렇다. “연인산 5부 능선에 가을에 걷기 좋은 단풍나무 길이 있는데, 임도(林道)라서 운동화 신고도 걸을 수 있고 산불 방지 기간에도 갈 수 있다.” 본래 임도는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방화선이다. 로맨스와는 거리가 먼 삭막할 길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전도사가 추천한 터라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달에 소개할 힐링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11월 1일이면 전국의 산은 산불 방지 기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연인산은 정말 ‘연애하기 좋은 산’인가. 예전 산 아래 사람들은 월출봉·우목봉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공식적인 이름을 얻지 못하다가 가평군에서 1999년 연인산이란 이름을 달았다. 로맨틱한 이름이 붙여진 뒤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면서 2007년엔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예전엔 월출봉·우목봉으로 불려



 11일 이른 오전 연인산을 찾았다. 산행 들머리는 가평군 하면 마일리 국수당이다. 연인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중 하나로, 현리버스터미널에서 5㎞ 정도 떨어져 있다. 이날 산행에는 박 교수의 친구이자 등산학교에서 사제지간으로 만난 김상율(56)씨와 그의 아내 오명수(56)씨가 함께했다. 두 사람은 다음 달 결혼 30주년을 앞두고 있는 금실 좋은 부부다. 김씨는 19년 전 등산학교에서 암벽에 입문한 이후 줄곧 산꾼으로 살아왔다. 대한산악연맹 가이드 자격증도 갖고 있다. 오씨는 주말마다 산으로 가는 남편 덕에 한동안 산을 미워했지만 지금은 본인이 더 자주 간다고 했다. 연인산에 제법 잘 어울리는 모델이다.



 이날 가야 할 길은 약 12㎞. 마일리 마을 언덕에서 우정고개까지는 1.6㎞ 오르막이다. 여기까지는 일반 등산로. 이후 임도에 진입해 연인산과 산 아래 마을 중간에 놓인 8㎞ 길을 가로지른 뒤 백둔리로 내려오는 코스다. 박 교수는 “4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산행 전 SUV 차에서 가슴팍 높이의 노간주나무 지팡이를 꺼냈다. 무엇에 쓰려고 하나 궁금해 하던 차, “평탄한 길에서는 굳이 스틱을 찍을 필요가 없다. 스틱을 쓰면 산도 아프다”고 했다.



 우정고개까지는 제법 땀이 나는 오르막이다. 바닥은 돌과 자갈이 깔려 있어 운동화를 신고 걷기엔 무리가 있다. 예전에는 이 산길을 4륜 구동차로 헤집고 다닌 때도 있었다. 자동차의 진입을 막기 위해서인지 길 중간에 큰 바위가 놓여 있다.



 오르막은 30분이면 끝이 났다. 고개는 해발 약 600m, 산꼭대기까지 딱 중간이다. 여기서부터는 평지나 다름없다. 땀도 식힐 겸 고갯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오씨는 일주일에 두 번씩 산행을 즐긴다. 2년 전 무릎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퇴행성 관절염이라며 ‘무릎을 아끼라’는 진단을 받았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퇴행성이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치면서 의사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곤 “이제 산에는 못 가는 거냐”고 울먹였더니 의사가 껄껄 웃으며 “(산에 못 가는 게) 그 정도로 스트레스받는 일이라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가도 좋다”고 했단다. 이후 열심히 산에 다닌 결과 신기하게도 무릎 통증이 사라졌다. 의사는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하기 때문에 고통을 망각하게 되는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지만 진단이야 어찌됐든 오씨는 이제 걷는 자의 목표를 갖게 됐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거기는 산길이 아니라 평탄한 길이라 나 같은 사람도 갈 수 있다고 하더라. 무릎이 더 나빠지기 전에 꼭 도전하고 싶다. 오늘 이런 길 같으면 한 달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1t 트럭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어



 우정고개에서는 다섯 갈래의 길이 펼쳐진다. 이정표의 화살표는 연인산 정상, 우정능선, 매봉 등을 가리키고 있다. 용추 휴양소 방면으로 들어서야 임도의 시작점이지만 화살표의 방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화살표를 찾는 것보다 길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1t 트럭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고 길 양쪽에 단풍이 도열한 길이다. 여기서부터 힐링길이 시작된다.



 임도는 유사시 불길을 잡기 위해 큰 나무를 베어낸 뒤 키 작은 단풍이 대신하고 있다. 일반 등산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한적한 분위기 속에 키 작은 단풍이 고요한 길을 선사한다.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잎은 드문드문 선홍빛이다. 누가 봐도 ‘단풍 들면 참 예쁘겠다’고 할 만한 길, 연인끼리 도시락 싸가지고 나와 데이트하기 좋은 길이다.



 평탄한 길을 천천히 내려오니 뒤편으로 연인산 정상을 향하는 능선이 보인다. 꼭대기 아래 안부(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음푹 들어간 부분)는 아홉마지기로 불린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아주 옛날, 연인산 어디쯤에 화전을 일구고 숯을 굽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산 아래 참판댁 종살이 하는 처자를 마음에 두게 됐다. 참판에게 여종과 혼인하고 싶다고 하자 “조 100가마를 가져오라”는 말을 듣게 됐다. 첩첩산중에서 조 100가마를 구할 방법을 궁리하던 그는 연인산 아래에 화전을 만들어 조를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참판은 끝내 약속을 들어주지 않았고, 둘은 사랑을 위한 도피를 감행하지만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그래서 두 사람이 죽고 난 자리에 철쭉이 만발했다는 설이다. 철쭉 많은 연인산의 작명 설화라고 하는데, 숯 가마터가 있는 산동네라면 으레 있을 것 같은 진부한 스토리다. 그래도 이야기를 듣고 나니 펑퍼짐한 연인산 봉우리가 좀 더 근사해 보이기는 하다.



선홍빛 단풍, 진한 잣나무 향



 임도는 이정표가 없어 자칫 등산로로 들어갈 수 있다. 다행히 MTB 코스를 표시하는 표지판이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다. 우정고개에서 장수고개까지 임도는 매년 봄에 열리는 ‘연인산 MTB’ 대회 코스다. 동그라미 모양의 표지판이 2.5㎞ 간격으로 ‘20㎞’에서 ‘15㎞’까지 박혀 있다.



 걷다 보면 종종 잣나무와 밤나무 숲을 만난다. 특히 잣나무가 많은데, 지도상에 ‘잣나무 창고’라고 표시된 군락이 있다. 이곳을 지날 때면 나뭇잎 향이 풍긴다. 샛노란 낙엽이 깔린 길은 맨발로 걷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다. 어디선가 후두둑 후두둑 잣나무 열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들숲이 고요해 낙엽 밟는 소리며 작은 짐승의 소리까지 선명하다. 밤나무가 많은 곳은 길바닥에 성게가 깔린 것처럼 밤송이가 무수하다. 떨어진 밤송이는 주워 가는 사람이 없어 밤알이 그대로 박혀 있다. 마늘 크기의 ‘쥐밤’은 그냥 먹어도 달다.



 밤까지 까먹고 나니 어느덧 임도의 마지막인 장수고개다. 이 고개 또한 여러 등산로가 교차하는 갈림길이다. 고개에서 백둔리 마을까지는 2.6㎞. 줄곧 내리막인데 종종 콘크리트가 깔려 있다. 푹신푹신한 임도 길을 한참 걸어온 뒤에 만나는 아스팔트 길은 영 맛이 없다. 백둔리로 내려가는 길, 가평 잣막걸리를 내놓는 매점들이 줄지어 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길이다.



 백둔리는 연인산 캠핑장이 있는 곳이다. 2008년 세계캠핑카라비닝대회가 열린 곳으로 넓은 부지에 오토 캠핑장을 비롯해 캠핑카를 세울 수 있는 카라반 사이트까지 다양하다.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임도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낭만적일 것 같다.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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