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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50㎝ 땅속의 현대사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건장한 청년이었을 것이다. 튼실한 넓적다리뼈, 종아리뼈가 한 쌍씩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부서진 골반과 척추뼈가 이어졌고, 치아가 남아 있는 아래턱뼈가 보였다. 쌀가마니쯤 쉽게 들어올렸을, 그래서 동네 처녀들 가슴깨나 설레게 했을 법한 청년의 두개골은 안타깝게도 자취를 감추었다.



 23일 찾아간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 ‘피의 능선’ 740고지.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8~9월에 국군·미군과 북한군이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를 치른 현장이다. 61년이 지난 지금도 고만고만한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랄 뿐 제대로 된 숲은 형성되지 않았다. 능선의 주봉인 수리봉(983m)이 난공불락이어서 쌍방 합쳐 2만여 명이 희생됐다. 국군 5사단 36연대는 전사 307명, 실종 899명의 피해를 입었다. 능선에 퍼부어진 포탄은 105밀리 32만 발, 155밀리 9만 발로 합쳐서 41만 발. 수리봉 정상이 포격으로 2m나 깎여 나가 981고지로 바뀌었을 정도다.



 피의 능선에서는 국군 유해 발굴이 시작된 2000년 이래 총 410구의 호국영령이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올 들어 모셔진 80구 중 마지막 분은 지난 18일 처음 발견됐다. 바로 튼튼한 넓적다리뼈의 주인공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박신한(대령) 단장은 “우리가 이분들을 찾아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꾸로 이분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 주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날 ‘6·25 지층’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피의 능선 일대는 대략 40~50㎝를 파들어가면 한국전쟁 당시의 땅 표면이 나온다고 유해발굴감식단의 주경배(중령) 발굴과장은 설명했다. 이 지점에서 참호 파고 진지를 구축했을 것으로 가정하고 작업을 벌인다는 것이다. ‘건장한 청년’이 발굴된 곳도 비슷한 깊이였다. 눈물이 앞을 확 가리게 만든 것은 유해와 함께 발견된 소지품들이었다. 칫솔, 작은 가위, 통일화, 라이터, 그리고 단추 2개. 모두 당시 국군이 쓰던 물품이어서 전사자의 소속을 쉽게 추정할 수 있었다. 한 짝만 발견된 통일화 안에는 발가락 뼈 몇 개가 들어있었다. 라이터는 소총 탄환에 맞아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발굴된 유해는 전통 예법에 맞춰 작은 오동나무 관에 모셔서 서울의 유해발굴감식단으로 옮긴 뒤 DNA 검사 등 정밀 감식 작업을 벌인다. 유가족이 확인되면 화장 후 대전 현충원 묘역에 안장하고, 신원 확인에 실패하면 4~5년간 감식소에 보관하다가 화장해 서울 현충원에 안치한다. 두개골을 포함해 뼈의 80% 이상이 확보된 유해를 ‘완전유해’라 부르는데, 완전유해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는 네 구 중 한 구꼴에 불과하다. 사실 유해 발굴 자체가 한국전쟁 당시의 개인참호 100~150곳을 파야 한 구가 나올 정도로 매우 힘든 작업이다. 설악산 저항령의 해발 1400m 돌밭에서의 작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왜 60년 전 국군 유해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다니는가. 적은 인원과 예산으로 전국 격전지를 누비는 발굴단원들에게는 ‘10㎝ 병(病)’이라는 게 있다. 일종의 편집증이다. ‘딱 10㎝만 더 파면 영령께서 반가이 맞아주실 텐데…’라는 미련이다. 좀 더 더 깊고 넓게 헤집으면 분명 유해가 나올 것 같기에 쉬이 포기하지 못하는 병이다. 그나마 나라가 이만큼 컸기에, 잘사는 나라의 토대를 만들어준 선열들께 최소한의 보답이라도 하자는 마음 때문에 도지는 병이다.



 한국전쟁 전사자들은 지하 50㎝에 생생히 살아 있는 현대사다. 튼튼한 넓적다리뼈는 바로 대한민국의 기둥이다. 덕분에 우리의 오늘이 있다. 피의 능선에서의 희생이 없었으면 강원도 일부를 뭉텅 잃었을 것이고, 저항령 혈투가 아니었으면 설악산 단풍은 꿈도 꾸지 못했다. 우리는 불과 50㎝ 땅속의 현대사를 너무 못 본 체하는 것은 아닐까. 역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정치화, 파당화(派黨化)하는 데만 열중하는 것은 아닐까.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이 한국전쟁의 영웅인 노(老)장군을 ‘민족반역자’라 부르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다. 부친의 독재를 딱 부러지게 독재로 인정하고 뛰어넘을 시도를 못하는 대통령 후보, 순국·민주화 선열 묘소 참배를 기껏 물타기 용도로 활용하는 대통령 후보들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생각해보면 지하 50㎝뿐인가. 40㎝, 30㎝ 지점에는 산업화가 있고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있다. 대선 후보 진영의 주장처럼 내 역사만 옳고 네 역사는 틀리다면 이건 너무 치사하고 얄팍하다. 우리 현대사가 언제까지 진영논리에 휘둘리고 각자 반쪽만 강조할 것인지 답답하다. 내 쪽의 과(過)를 인정하고 상대의 공(功)을 치켜세우는, 그런 풍경이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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