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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적 장애인의 억울한 옥살이 5년

범죄자를 수사하고 재판하는 형사사법 시스템은 오판(誤判)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판사와 검사가 무고한 피의자·피고인은 없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선 최대한 방어권이 확보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원역 노숙소녀 살인사건을 보면 법원과 검찰이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제 서울고법 형사10부는 상해치사 혐의로 징역형이 확정돼 5년간 복역한 노숙자 정모씨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2007년 5월 수원역 근처 고등학교에서 가출 청소년 김모(당시 15세)양을 폭행해 숨지게 했다는 혐의를 벗게 된 것이다. 재판부는 “주요 증거인 정씨와 공범 강모씨의 자백 취지 진술이 일관되지 않을 뿐 아니라 객관적으로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는 등 그 신빙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자백에 의존한 부실 수사로 정씨가 5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얘기다.



 재심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수사·재판 과정을 보면 과연 법치국가가 맞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지적 수준과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정씨와 지적 장애가 있는 강씨를 상대로 자백을 종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 수사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 정씨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정씨가 “강압 수사로 허위로 범행을 자백했다”고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는 형량을 깎아주는 데 머물렀다. 경찰의 수사 잘못이 검찰 기소, 법원 재판 단계에서 걸러지지 않은 것이다.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해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만약 변호사가 발 벗고 나서지 않았다면 정씨에겐 평생 살인자란 낙인이 따라다녔을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노숙자나 지적 장애인, 가출 청소년 등이 강압 수사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미국 경찰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흑인을 대상으로 ‘인종적 프로파일링(racial profiling)’을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우리 수사기관도 소외계층에 대해 용의자란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또 수사와 재판에서 변호인의 충분한 조력을 받는 등의 방어권이 이들에게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재심 재판부는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너무 늦게 무죄가 나와 안타깝다”고 했다. 그런 위로만으론 부족하다. 검찰·경찰과 법원은 정씨 수사·재판 과정에 대해 강도 높은 자체 조사를 벌여야 한다. 그 결과를 국민 앞에 공개하고 수사 투명성 제고와 국선변호 제도 보강 등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경우는 또다시 재연될 것이다. ‘돈과 힘이 없으면 유죄’라는 일그러진 신화가 살아 있는 한 한국의 사법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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