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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스님 침묵의 가르침… 바람 소리만 뎅그렁댑니다

1300여 년 전 뿔 셋 달린 소가 청량산 절벽을 오르내리며 필요한 자재를 나르고 청량사 창건 하루 전에 죽었다. 그 소가 묻힌 자리에서 자라는 삼각우송. 그 뒤로 오층석탑이 보인다.
뿔 셋 달린 소를 끌고 가는 한 사람을 뒤따라간다. 뗑그렁 뗑그렁 울리는 풍경 소리가 길가의 단풍나무를 더욱 붉게 한다. 멍에를 졌으나 소의 표정은 산허리에 번지는 노을처럼 평화롭고 이를 끌고 가는 이의 눈빛은 신 새벽의 먼동처럼 지혜로 가득하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소는 우뚝 솟은 봉우리 아래 깎아지른 캄캄한 절벽을 걷는데도 한 치의 두려운 기색이 없다. 절벽을 걷다니.



시인과 떠나는 사찰기행 ③ 장석남 시인의 청량산 청량사

소의 세 뿔 중 하나에는 구름이 걸려 있어 아름다웠는데 구름은 먼 하늘까지 뻗쳐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로부터 일천삼백여 년이 시집 한 권 넘기듯 지나갔다. 나는 홀로 청량산 청량사를 찾아간다. 경북 봉화군에 딸려 있다. 허나 지금은 청량산 청량사라는 이름이 그 군의 지명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그곳에 홀로 가본다. 그이가 더듬더듬 마을 사람으로부터 보시받은 소를 길들여 터를 닦고 길을 내던 골짜기를 혼자 찾아간다. 원효(元曉) 스님. 그분이 이 절의 창건 스님이다. 그 이름같이 이 땅 새벽을 연 분.



‘홀로 간다’는 것처럼 환희로운 것도 없다. 훌훌 털고 가니 닿는 데마다 모두 절간 같다. 물가에 앉으면 거기도 절이요, 나무 밑에 쉬면 거기도 암자다. 혼자는 외롭다고 하나 외로움을 아는 것이 한 깨달음이리라. 외롭지 않으려고 출가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외로운 것임을 알면 외롭지 않은 것이리라. 자비(慈悲)의 출처가 그곳이리… 가만 자비는 한자로 어떻게 쓰던가… 자질구레한 잡념까지 섞어서 중얼중얼 홀로, 홀로, 홀로라는 것을 생각하며 간다. 하나 마침 주말이어서 울긋불긋 값비싼 가을을 입은 등산객들이 소란하다. 외롭게 오지 않고 떠들썩하게들 온 모양이다.



2 신라시대의 명필 김생(711~791)이 10년 동안 들어가 수행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김생굴. 3 청량사 차 공양간 안심당.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우리말 이름이 붙은 차 공양간 안에는 다양한 등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4 청량사는 청량산의 열두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다. 창건됐을 당시 봉우리의 이름은 불교식이 많았는데, 조선 유학자 주세붕(1495~1554)이 이 중 일부를 유교식으로 고치기도 했다.


산문에 닿으니 남다른 기운의 글씨가 어른거린다. ‘청량지문(淸凉之門)’이라고 되어 있다. 바람이 술술 빠져나갈 것 같은 글씨로, 육탈되고 남은 뼈들의 강강함이 묻어 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다. 왼쪽 끝에 ‘김생집서(金生集書)’라고 되어 있다. 청량산에 김생굴이 있다더니 통일신라 시대 신필(神筆)이라고 불리던 김생의 글씨를 집자해 걸어놓았다. 청량하다는 뜻에 잘 맞다고 생각했다. 뻑뻑하고 엄숙한 글씨였다면 그 뜻이 버거워했으리라.



가파른 길을 얼마만큼 올라서니 절의 처마들이 올려다 보인다. 아니 그 처마들이 웃음을 머금고 ‘얼마만큼 오시나…’ 하는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배려일까? 전각 이름이 안심당(安心堂)이다. 숨을 고르라는 뜻인가?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고 우리말 이름이 붙은 차 공양간이다. 들어가 앉으니 비로소 먼 곳이 보이기 시작한다. 절은 ‘먼 곳’을 보러 가는 곳. 나는 홀로 먼 곳을 보러 온 셈. 이 자리, ‘바람이 소리가 되어 떨어지는 곳’, 말씀이 되는 곳이다.



5 유리보전에 모셔진 지장보살은 보물 1666호다. 이 지장보살의 화신이 바로 청량사 창건 전설에 등장하는 삼각우다
이곳의 큰 법당은 약사여래불을 모신다. 이승의 병들고 아픈 이들을 보살피는 보살이다. 약사여래를 모시는 전각은 유리보전(琉璃寶殿)이라고 부른다. 그 앞에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하다. 암반에 뿌리를 둔 소나무답지 않게 튼실한 모양인데 그 자리가 바로 원효 스님과 함께 이 절을 짓던 소가 묻힌 자리라고 한다. 천삼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서 나고 자라는 나무는 중간에 세 가지를 뻗은 다음 그 끝에서부터 잔가지가 자란다고 신화를 전한다. 하여 이 나무의 이름은 삼각우송(三角牛松)이다. 원효의 뿔 셋 난 소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편이다. 과연 그 뿔 셋의 상징은 무엇일까. 하나 더 가지라는 뜻이리라. 세상을 보는 두 눈 말고 저 먼 곳을 보는 지혜의 눈을 하나 더 가지라는 뜻으로 새긴다. 지어낸 이야기라고 해도 되겠으나 삶의 안팎에는 수없이 많은 풀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는 메시지다. 알량한 지식일랑 최소한 이 법당 앞에 오거든 내려놓으라는 메시지다.



이곳 청량사의 템플스테이의 지도 스님인 수암 스님과 유리보전 앞 저만큼 나앉은 탑 아래 앉았다. 젊은 탑이다. 빼어난 팔등신 미인 같은 탑이다. 이 또한 주지 지현 스님의 안목일 텐데 헌걸스럽게 차올라간 심플한 선이 하늘로 한없이 아득히 솟아 올라간다.



“처음에는 여기가 그렇게 좋은 줄 몰랐습니다. 살다 보니 원효 스님이 왜 이 자리를 잡았는지 알게 됩디다. 오래 헐벗었다가 현 주지 스님의 안목에 의해서 하나하나 아름다운 감각으로 일신한 셈입니다.”



신발 끈을 푸는 것이 좀 번거로웠으나 과연 탑 앞으로 걸어 들어가 둘러보니 막 피어난 연꽃 가운데로 들어온 듯하다. 정작 이곳이 큰 법당이다. 둘러선 열두 봉우리들이 이 자리를 호위하고 있다. 볼록 솟아난 가운데 자리의 꽃순 하나가 바로 이 자리다. 거기 아름다운 탑을 올려 하늘로 마저 잇대었다. 순간 나는 원효 스님이 이 자리에 서 있었을 생각을 했다. 분명히 이 자리였을 것이다. 어디를 갔다가도 돌아오시면 맨 먼저 이 자리로 와 한참 예배하듯 서 계셨을 것이고 또 무엇을 하시다가도 이내 이 자리에 와서 하늘을 우러르고 계곡을 굽어보았을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이 탑 아래에 어른대는 빛나는 원효 스님의 침묵들을 나는 한아름 가져가고 싶다. 가져가서 하나씩 풀어 펼쳐보고 싶다.



청량사 유리보전 쪽에 서서 바라본 풍광이다. 왼편으로 보이는 바위 봉우리가 금탑봉이다. 마치 3층 탑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금탑봉을 돌아나가면 응진전이 나온다. 층층으로 이루어진 청량사 절내는 마치 아담한 정원처럼 편안하고 소담한 느낌을 준다.


“지난 10월 첫 주 토요일 윤도현씨가 와서 이 자리에 섰지요. 그도 그만 아주 반해버리더군요.”



이곳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이른바 ‘산사 음악회’라는 것이 처음 열렸다고 한다. 절 풍속의 새로운 열림이었을 것이다.



세속을 끊지 못한 몸은 다시 내려오기 위해 신발 끈을 묶어야 한다. 하나 번거롭다는 이유로 신발 끈을 풀지 않고 그냥 내려갔다면? 나는 한 순간 청년 원효였는데. 그렇다. 신발끈 하나 푸는 일이 큰일이다.



내려오는데, 아쉽게 내려오는데 골짜기마다에서 불빛이 하나씩 켜지고 염불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서른셋의 암자가 골짜기마다 또 바위마다 자리하여 부처님 말씀의 독송 소리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었다는, 천년 전의 시간 속을 걸어 내려왔던 것이다. 글=장석남(시인)





장석남 1965년 인천 출생. 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미당문학상·김수영문학상·현대문학상·김달진문학상 등 주요 시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양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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