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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서만 35년 가구 외길 … 3대째 ‘가업의 맥’ 자부심

강남구 논현가구거리에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장을 지키는 할머니가 있다. 쉬는 날이라곤 설날과 추석, 1년에 단 이틀뿐이다. 이탈리아에서 가구박람회가 열려도 비행 시간을 제외하곤 하루 이틀 박람회만 본 뒤 곧바로 돌아온다. 가게를 비울 수 없기 때문이다. 혼수가구를 보러 온 예비신부, 이사를 앞둔 중년 주부는 모두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송 회장님 안 계세요?” “할머니가 잘 해주신다던데요” 하며 할머니부터 찾는다.

3대째 가구업을 이어오고 있는 ‘스페이스 나인’ 송영자 회장 가족. 왼쪽부터 막내 옥종열 이사·첫째 옥지희 부사장·어머니 송영자 회장·둘째 옥종무 사장.

 주인공은 논현동 가구매장 ‘스페이스 나인’의 송영자(72) 회장이다. “좋은 가구 좋은 가격에 사고 싶어하는 여자들 마음을 왜 모르겠어요. 손님들이랑 얘길 하다 보면 모두 딸 같고 손녀 같아서 좋은 제품을 골라주고 또 저렴하게 해줄 수 밖에 없더라고요.”

스페이스 나인은 1977년 ‘한양칠기’로 시작해 현재까지 35년째 논현가구거리에서 대표 매장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시아버지부터 시작해 송 회장, 그리고 맏딸인 옥지희(51) 부사장·둘째 옥종무(48) 사장·막내 옥종열(45) 이사까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매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시작은 나전칠기였다. 시아버지가 통영에서 나전칠기 작업을 하던 것을 어깨 너머로 봐왔던 송 회장이 70년대 중반, 서울 상경 후 작은 칠기공장을 차린 것이다. 당시 서울을 오가던 재일교포들에게 나전칠기가 인기가 높았다. "장사 되겠다” 싶었다. 종업원 20명 규모의 공장을 여장부 기질이 있던 송 회장이 직접 운영했다. 교직에 있던 남편은 사업에 크게 관여하지는 않았다. 판매도 직접 해보자 싶어 논현역 근처에 매장 ‘한양칠기’를 열었다.

“지금이야 논현동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품 가구거리지만 30여 년 전엔 가구 매장이 몇 개 없었어요. 4개 층 건물 전체를 가구 매장으로 운영하는 곳이 흔치 않을 때라, 큰 규모의 한양칠기에 사람들이 많이 몰렸죠.” 1988년에는 서양식 가구 매장을 인수했다. 그 때 이름 붙인 것이 바로 ‘스페이스 나인’이다.

90년 초, 칠기가구의 인기가 저물면서 강남 유명인사들의 단골 가구점으로 이름을 날리던 한양칠기도 문을 닫게 됐다. 공장에서는 칠기 대신 서양식 가구를 제작했고 기존 단골 손님들이 ‘스페이스 나인’으로 옮겨갔다.

단골 손님도 3대째 대이어 찾아

한번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80대 할머니가 예비 손주 며느리와 함께 매장을 찾았다. 30여 년 전에 칠기장롱을 산 것이 인연이 돼 딸을 시집 보낼 때도 이 곳에서 혼수 가구를 마련했다고 했다. 손자의 결혼을 앞두고 세 번째로 가게에 들른 것이다. 3대가 모두 단골 손님이 된 경우다. “옛날엔 매장이 논현역 방향으로 더 위쪽에 있었어요. 자리를 옮겼는데도 물어물어 찾아 오셨더라고요. 너무 고마워서 베개와 시계 등을 결혼 선물로 드렸죠.” 송 사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기억을 더듬는다.

 7호선 논현역과 학동역 사이 학동로 2㎞에 걸쳐 100여 곳의 매장이 들어서 있는 논현가구거리.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크고 작은 매장들이 폐점과 개점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스페이스 나인’이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결은 뭘까. 3대에 걸쳐 단골이 되기를 자처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옥 부사장은 “공장과 매장을 함께 운영해 유통 마진이 적다는 점이 큰 메리트”라며 “논현동이라고 해서 으레 비쌀 거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가격을 알고 나서는 천천히 가구를 둘러보고 구입해 간다”고 전했다. 국산 원자재 이용해 국내에서 직접 제작한다는 점 역시 중국산이나 동남아시아산 제품과는 비교불가한 부분이다.

막내 아들도 가구디자인 전공

트렌디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 덕분에 드라마 협찬 제안도 꾸준하다. 유명 배우들이 “세트장에서 제품을 봤다”며 매장을 찾아와 제품을 구입해 가는 일도 잦다. 홍익대에서 가구디자인을 전공한 막내 옥 이사의 앞선 감각 덕분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원목 냄새를 맡으며 ‘윙~윙~’ ‘툭탁 툭탁~’ 가구 만드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며 “가구 공장과 매장을 놀이터 삼아 지냈으니, 가구디자인을 전공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스페이스 나인’은 매장 한 곳도 버티기 힘들다는 논현동 가구거리 한가운데에 두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본 매장과 2호점은 각각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전체 990㎡(약 300평)의 대규모 전시장이다. 신혼부부를 위한 모던하고 심플한 디자인에서부터 중장년층을 위한 클래식한 가구까지 다양한 제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옥 이사는 전통적인 디자인을 가미한 가구에 대해서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다. “대를 이어 가구업에 종사하고 있는 만큼 ‘전통’을 살리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와나 처마, 창호 문양 등 한국적인 모티프는 가구의 기품을 높여주는 디자인 요소인데, 중·장년층뿐 아니라 최근에는 젊은층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30년이 넘게 ‘가구업계의 거상’이라고 불리며 논현동을 호령해온 송 회장의 꿈은 뭘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매장을 운영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손님들을 진심으로 대해야죠. 제대로 된 가구를 저렴한 가격에 샀다고 느끼는 고객들은 반드시 다시 찾아옵니다. 큰 돈은 못 벌더라도 꾸준히 가구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바람이에요.”

글=하현정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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