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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씨티그룹 CEO 모두 불명예 퇴진

금융공룡 씨티그룹의 숙명인가. 1998년 그룹 탄생 이후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불명예 퇴진했다. 미국 월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진기록이다.

 운명의 첫 단추는 씨티그룹 탄생의 주인공인 존 리드 축출이었다. 새 천년의 시작인 2000년 2월 씨티그룹의 공동 CEO인 리드가 돌연 사임을 발표했다. 공식적으론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월가는 즉각 알아챘다. 리드와 또 다른 CEO인 샌디 웨일 사이에 권력다툼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드와 웨일은 씨티그룹을 만든 사람이다. 1998년 시중은행인 씨티은행 CEO인 리드와 보험을 중심으로 한 트레블러스 그룹의 CEO인 웨일이 두 회사 합병을 주도해 씨티그룹이 탄생했다. 모든 금융상품을 한 그룹이 파는 ‘금융 수퍼마켓’의 탄생이었다. 이질적인 조직의 결합이었다. 두 사람은 동지적 우애를 자랑하며 언론 앞에서 얼싸안고 합병을 자축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영업을 중시하는 리드와 공격적인 경영을 선호하는 웨일은 물과 기름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씨티그룹 탄생 2년 만인 2000년 갈라섰다.

 당시 월가는 불안한 쌍두 체제가 끝났다고 환영했다. 카리스마 있는 웨일이 씨티그룹을 제대로 휘어잡고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분에 의한 CEO 퇴진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도 봤다. 하지만 이는 성급한 판단이었다. 3년 뒤 웨일마저 이사회 내분 때문에 물러났다. 분란의 원인은 임직원들의 비리였다. 대출을 미끼로 보험 등을 끼워 파는 일이 비리로 몰렸다. 결국 일단의 이사들이 ‘준법 경영’을 내세우며 웨일에게 반기를 들었다.

 후임은 찰스 프린스였다. 그는 변호사였다. 방대한 조직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비리나 불법 행위를 없애는 게 그의 최우선 임무였다. 하지만 그는 그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 2007년 스캔들이 불거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섞인 자산담보부증권(ABS) 등을 마구 사들였다가 거액을 손해 본 것이다. 그 책임을 놓고 내분이 일어났다. 결국 프린스는 2007년 11월 CEO 자리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후임이 정해졌다. 바로 인도계인 판디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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