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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박정희의 희극, 박근혜의 비극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토마스 만에 비견되는 헝가리의 거장 산드로 마라이는 “우리는 모든 인간관계에서처럼 죽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변덕스럽다”고 일갈한다. 박근혜의 출마를 계기로 박정희(시대)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그동안 박정희(시대)에 대한 평가는 네 번의 변화를 보여왔다.



 첫째로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시기의 평가는 계속 상승하였다. 특히 민주화 이행 국면의 대통령 무능 및 외환위기와 겹치면서 ‘박정희 향수’는 빠르게 확산되었다. 어떤 조사에서는 세종대왕, 이순신과 함께 3대 영웅의 반열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 민주화가 진전되며 ‘박정희 향수’는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시민들이 안보·근대화·경제 발전 못지않은 인권·민주주의·평화의 가치를 체득하면서부터였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박정희 향수’는 ‘박정희 독재자’ 시각과 경쟁하였다.



 셋째 국면인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전직 대통령 평가에서 줄곧 누려오던 1위가 흔들리며 종종 민주파 대통령들과 선두를 다투었다. 민주파 대통령들의 업적이 박정희에 비견되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기여였다.



 넷째 국면인 박정희 평가의 현재화와 양극화는 박근혜의 출마 전후부터였다. 박근혜의 출마는 박정희를 역사에서 현실로 끌어낸 결정적 계기였다. 물론 박근혜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박정희는 역사적 평가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럴 경우 박정희의 독재·실패·오류보다는 업적·발전·기여가 더 크게 기억되었을 것이다. 즉 박정희 비판을 불러일으킨 일등 공신은 박근혜 출마라는 점이다.



 마침내 박근혜는 박정희 시대의 헌정유린과 인권탄압에 대해 사과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부친 명예회복을 위한 부친 부정”, 이 혹독한 역설 앞에 박근혜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집권을 해야 하나” 반문하며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만약 집권한다면 어떨까? 가족집권이나 2세 집권의 경우 최악의 성적표를 보여온 현대 세계사는, 박근혜의 집권 후 업적을 심히 걱정하게 한다. 미국의 부시2세는 건국 이래 최악의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업적이 형편없었다. 그리스는 파판드레우 가문의 6기에 걸친 3대 집권을 맞아 최악의 국가위기에 내몰렸다. 아르헨티나는 페론 부처(후안 페론-에바 페론-이사벨 페론)의 부침과 함께 세계 4위의 부국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3대 세습의 산물인 북한 현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두 번째의 ‘잃어버린 10년’을 맞고 있는 일본을 보자. 전후 일본은 4대 가문(요시다 시게루-기시 노부스케-하토야마 이치로-후쿠다 다케오)이 무려 ‘총 27년-전체의 40%’를 통치하였다. 그중 ‘총 21년-전체의 32%’는 요시다-기시 단 두 가문에 의해 통치되었다. 잃어버린 10년 동안에는 네 총리(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하토야마 유키오)가 연속하여 4대 가문의 2~3세였다. 국회의원들의 경우 2~3세가 무려 25%(1972년)~24%(2009년)였다.



 이런 가족국가-가산국가를 유지하면서 사회의 다양한 요구가 반영되는 생기발랄한 경쟁적 민주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근혜의 집권은 건국 이래 ‘총 23년-33%’가 박정희 가문(박정희+ 박근혜)에 의해, ‘총 35년-51%’가 박정희와 관련 인사(박정희+전두환+노태우+박근혜)에 의해 통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경험상 깊은 걱정을 자아내는 요소이다.



 전형적인 실패 국가들인 북한·루마니아·쿠바·이집트·리비아 등에서 가족집권의 연장 또는 연장 시도는 국가 전체를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근대 공화주의의 등장은 인간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성찰로부터 비롯되었다. 민주주의를 통한 정권교체가 필수적인 이유는 앞선 통치의 오류에 대한 교정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족집권(부자, 형제, 부부, 손자)은 앞 통치의 극복, 즉 선친살해·선친부정이라는 근대 공화주의의 근본정신을 부정한다. 오류를 인정하지도 교정하지도 못함으로써 계속적인 퇴보를 반복하는 것이다.



 박근혜는 당선되면 2세 통치의 세계보편적 난관이 기다리고 있고, 낙선되면 부친 부정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는 지경에 놓이게 된다. 오디세이에 나오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의 양면 궁경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빈민구호, 여권신장, 장애우 돌봄, 불우아동 돌봄, 환경운동 등과 같은 높은 자리를 추구하지 않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려 하였다면 박정희와 박근혜에 대한 평가는 크게 높아졌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박정희(가문)의 명예를 현양하는 지름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박근혜 출마는 부친과 자신을 위해 최선의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운명적 갈림길에서, 보편 역사와 한국 상황을 뛰어넘을 박근혜 후보의 지혜와 능력을 기대해본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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