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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우리가 루스벨트를 아는가

남윤호
정치부장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대통령. 우리의 두 유력 야권 대통령 후보가 그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한다. 대공황과 전쟁이라는 국난을 극복한 지도자,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맞서 노동자·서민의 권익을 증진시킨 개혁가, 대통령 선거에 네 번이나 승리한 정치인….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갖춘 대통령임엔 틀림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대개 거기까지다. 그래서 유력한 야권 대선 후보들이 모두 루스벨트를 롤모델로 삼는다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가 과연 선량하고 훌륭한 품성의 지도자였을까. 그의 뉴딜은 대공황을 극복한 모범답안이었을까. 루스벨트는 곧 메시아쯤 되는 걸까. 그에겐 잘못 알려지거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면모가 있다. 이게 쌓이고 쌓여 실체와 다른 신화로 굳어지기도 했다.

 우선 그는 미국에서 세무조사를 권력의 도구로 삼은 최초의 대통령이다. 첫 희생자는 그에게 비판적이던 휴이 롱 루이지애나 주지사였다. 공화당 하원의원 해밀턴 피시, 공화당 정부의 재무장관을 지낸 앤드루 멜런 등도 무자비한 세무사찰에 시달렸다. 그중엔 감옥 갔다 온 사람도 있지만 무혐의 처분된 사람도 있다.

 루스벨트는 부자와 기업에 늘 공격적이었다. 절세와 탈세를 구분하지도 않았다. 합법적으로 절세한 부자를 ‘무정부주의자’로 매도했다. 재무부엔 미국에서 가장 잘사는 1000명의 이름을 가져오라고 지시한 적도 있다. 세금을 잘 내는지 보자는 거였다. 그는 세금을 피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면서 “이것으로 적어도 1000만 표는 나올 거야”라며 정치적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본인은 어땠나. 법의 테두리에서 최대한의 소득공제를 받아냈다. 1932년 그가 소득공제 후 실제 낸 세금은 겨우 31달러였다. 그해 벌어들인 소득(1만9000달러)의 0.2%도 채 안 됐다.

 루스벨트는 또 뻔히 들통날 거짓말도 종종 했다. 이미지에 광을 내기 위해서다. 1920년 8월엔 부통령 후보로 연설하면서 “내가 아이티의 헌법을 써줬다”고 말했다. “꽤 잘 만든 헌법”이라고도 했다. 1915년 미국이 아이티를 점령했을 때 해군성 차관이었던 자신이 헌법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이게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나자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또 거짓말을 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무장관을 지낸 해럴드 아이크스는 1936년 자신의 일기에 “불행히도 대통령은 자기 말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썼다.

 그의 품성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화는 수두룩하지만, 이쯤하고 정책으로 넘어가 보자. 그의 뉴딜이 미국을 대공황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건 사실(팩트)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직도 찬반 양론의 논쟁거리다. 뉴딜 덕에 그나마 버텼다, 뉴딜이 회복을 더 지연시켰다, 하며 시각이 엇갈린다. 다만 루스벨트의 ‘절친’이던 당시 헨리 모겐소 재무장관은 1939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을 퍼부었지만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해 회복 조짐을 보인 유럽과 달리 미국에선 실업률이 20%를 넘었다. 결국 경기회복의 결정적 계기는 뉴딜보다 전쟁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그의 대대적인 증세도 논란거리다. 루스벨트 정부 때 각종 세금의 최고세율은 보통 70%대였다. 재산세 70%, 연방 소득세 79%였다. 기업의 내부유보에 과세하는 법도 있었다. 루스벨트는 2만5000달러가 넘는 소득에 대해선 100%의 세율을 적용하는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과도한 세금과 반기업 정책이 투자의욕을 꺾었고, 이게 일자리 창출에 지장을 줬다는 인식이 서서히 퍼졌다. 1938년 3월 갤럽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67%가 루스벨트 정부의 반기업적 태도가 경기회복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답했다.

 요즘 야권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루스벨트를 충실히 닮아가는 듯하다. 위대한 리더의 화장한 모습과 차가운 정치인의 민낯 어느 쪽을 더 닮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만. 끝으로 왜 루스벨트만 편파적으로 문제 삼느냐며 거품을 물진 말기 바란다. 루스벨트는 양면성이라도 있지, 또 다른 유력 후보가 롤모델로 삼는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어떤가. 21세기 민주사회에서 16~17세기 절대군주라…. 도대체 무슨 말을 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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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