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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남해안 조선벨트를 살리자

한은화
경제부문 기자
우리 조선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거북선’ 에피소드를 빼놓을 수 없다. 정 회장은 1970년 울산조선소를 짓기 위해 영국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화폐 한 장을 담보물로 내밀었다. 제대로 된 조선소가 없지만 1500년 전 철갑선을 만들어 낸 기술력 있는 민족임을 내세웠다. 이렇게 빌린 돈으로 현대식 선박 건조시설을 갖춘 조선소를 지으면서 두 척의 유조선(26만t급)을 뚝딱 만들어냈다.

 조선소의 가장 큰 경쟁력이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조선산업이 선박 수출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인 요즘도 현장에서 배 만드는 일은 거의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선주사의 요구에 따라 맞춤형 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 경력의 현장 근로자를 ‘명장’이라 부르며 우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이 후배를 육성하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배를 만들게 하는 조선소의 재산이어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조선산업 위기로 40년 넘게 육성해 온 조선 인재풀이 붕괴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선박 수주량이 끊기면서 대다수의 중소 조선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본지 10월 11일자 1, 8면). 대한민국 조선 메카라 꼽히는 ‘남해안 조선벨트’ 지역은 줄도산 위기에 떨고 있다. 통영의 조선업체 신아sb에서 만난 한 직원은 “먹고살 게 없으니까 십수 년 베테랑의 선박 용접공이 시골에서 비닐하우스 철제 용접하러 다니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20여 년 전 일본의 상황도 비슷했다. 90년대 조선업계 불황으로 일본의 조선분야 인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위기를 맞은 일본 조선업계는 주력 업종을 중공업으로 바꿨다. 유수 대학에선 조선 관련 학과가 없어졌고 현장에는 인력 공급이 끊겼다. 그 결과조선 호황기가 다시 왔을 때 우리나라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줬다. 양적인 측면에서도 조선산업의 고용효과는 크다. 공학한림원에 따르면 10억원을 투자할 때 반도체산업은 4.4명을, 조선은 12명을 고용한다. 즉 조선소 하나가 문을 닫을 경우 지역경제도 함께 휘청거리게 된다. 통영시의 경우 주요 조선소들이 파산하자 인구가 확 줄고 문 닫는 상가들이 속출하고 있다. 고성·김해·양산 등 조선소에 부품을 공급하는 기자재 업체가 모여 있는 공단 지역도 부도 위기다.

 이렇게 조선산업과 그 연관산업이 이루고 있는 그물망은 방대하면서 촘촘하다. 조선산업 위기에는 조선소 근로자, 납품업체 직원, 지자체 주민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당사자로 엮여 있다. 조선소 하나만 정리된다고 해서 위기가 끝나는 게 아니다. 혹여 일본의 전철을 밟다가 세계 정상을 빼앗길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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