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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선하게 보고 대기업 적대시하는 선입견서 벗어나라”



“중소기업이 선하고 대기업이 나쁘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라. 대기업을 적으로 보는 시선에 동의하지 않는다.”

폴 크루그먼 숭실대서 ‘경제민주화’ 특강



 “진보 이념을 위해 진보정당만 집권해야 하는 건 아니다. 보수 정당이라도 진보적인 정책을 할 수 있다.”



 보수 정치인이나 학자의 발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진보적 경제학자로 알려진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한국 청중의 질문을 받고 내놓은 답이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강조하는 케인스주의자다. 10일 그는 서울 숭실대에서 ‘경제민주화: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란 주제로 강연과 질의응답을 했다.



 강연에서 그는 “소득 불균형을 완화시키기 위해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유를 지키려면 지속적으로 싸워야 하듯이 경제민주화도 마찬가지다. 방어하지 않으면 잃고 만다”는 것이다. 그는 “(불평등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포기한다면 소득 재분배를 이룰 수 없다”며 “조세나 복지제도를 통해 소득 불균형을 얼마든지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보편적인 의료보험 제도 도입이나, 초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을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했다. 금융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그는 1대 99로 나뉜 현재의 미국 사회를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수퍼스타 이론’으로 설명했다. “펀드 매니저나 교사의 교육기간은 비슷한데도, 25명의 고소득 헤지펀드 매니저 연봉이 8만 명 뉴욕 교사의 3년치 연봉과 맞먹는다”고 전했다. 양극화가 더 큰 소득격차를 낳는 현상도 지적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사실상 하위 소득자 3분의 1의 정치적 목소리는 정치에서 무시된다. 대신 영향력 큰 사람, 예컨대 금융인에게 인기를 끌 만한 금융규제 완화 같은 정책이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재벌개혁’으로 보는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를 내놨다. 한 학생이 “한국에선 경제민주화를 위해 재벌 해체 얘기가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물은 데 대한 답변이다. 그는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도 중산층의 소득원이 되는 경우가 많고 미국에서도 그렇다”며 “기업의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재벌이 정치적 영향력을 과도하게 내세우는 것을 견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도 경계했다. “한국에선 보수 쪽의 정치적 영향력이 더 높다”는 학생의 말에 그는 “영국 보수당도 진보적인 정책을 보여주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필요하다면 공립학교에 대한 보조금을 늘린다든가 하는 식으로 보수정당도 진보적으로 정책을 개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복지 확대와 관련해서는 “지속 가능성을 위해 의료보험과 같은 기본적인 것에 한해 전 국민에게 혜택을 줘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칙적으로는 보편적 복지가 바람직하지만 재원의 한계 때문에 일부 제도에 한해서만 보편적 복지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퇴직연금 제도처럼 소득 재분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복지제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도 내놨다. “한국은 수출에 의존하기 때문에 세계 경제 침체에 영향을 받지만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충분한 재정 건전성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경제민주화가 한국의 성장을 저해할 거란 우려에 대해서는 “한국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거의 진입했다. 저성장 구조로 가는 건 어쩔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이날 강연은 폴 크루그먼 교수의 첫 한국 대학 특강이었다. 그의 인기는 뜨거웠다. 수염이 덥수룩한 크루그먼 교수가 연단에 올라서자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곳곳에서 학생과 교수들이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날 강연이 열린 숭실대 한경직기념관 대예배실은 1, 2층 1800석 좌석이 꽉 찬 건 물론이고 통로에도 100여 명의 청중이 가득 들어찼다. 일부 학생은 서서 두 시간 강연을 끝까지 들었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미국의 대표적 진보경제학자. 1991년 가장 뛰어난 40세 미만의 경제학자에게 2년마다 수여하는 ‘존 베이츠 클라크(John Bates Clark) 상’을 받았다. 2008년 ‘무역이론과 경제지리학을 통합’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뉴욕타임스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공화당 등 미 보수주의자들을 “소수의 부자를 위한 정책을 편다”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걸로 유명하다. 『경제학의 향연』 『불황 경제학』 『미래를 말하다』 등 20여 권의 저서와 200편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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