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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수채화와 유화의 대결

김정욱
정치국제부문 차장
그림에 문외한이다. 그저 수채화(水彩畵)와 유화(油畵)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다. 수채화는 물감을 물에 풀어서 그린 그림, 유화는 물감을 기름에 개어 그린 그림이다. 그리는 도구와 방식이 다른 만큼 느낌도 차이가 크다. 2012년 대선은 정치입문 15년차(박근혜), 2년차(문재인-본인을 내세운 활동을 기준으로 했다), 1년차(안철수) 간 대결 구도로 흐르고 있다. ‘정치 경험’이라는 프리즘으로 바라본다면 이들은 수채화와 유화만큼이나 다르다.



 많은 화가가 보통 수채화를 배운 뒤 유화로 넘어간다. 그러니 유화는 초보자들의 것이 아니다. 경지가 높다. 깊이가 있다. 대체로 스케일도 크다. 웅장함에 압도당하기도 한다. 유화 작품에 대작(大作)이 많은 것도 같은 연유일 것이다. 반면에 유화는 불투명이다. 한번 그림을 그리고 말린 뒤 그 위에 다시 붓질을 하는 ‘덧칠의 미학’이 끊임없이 작용한다. 보통 사람들에겐 다가가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비해 수채화는 쉽다. 맑고 산뜻하다. 속이 들여다보인다. 화가가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지 알아채기 쉽다. 나도 직접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소박하고 친근하지만 대작의 경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유화의 깊고 풍부한 표현력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많은 화가가 수채화에 정착하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혼신을 다한 걸작(傑作)의 수가 유화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관점을 조금 빌려본다면 박근혜는 유화다. 깊이와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의 지지자에게든, 반대자에게든 ‘대통령급’으로 올라서 있다. 한국 유권자들은 이런 대접을 결코 아무에게나 하지 않는다. 박근혜가 그간 보여준 원칙과 경륜이 유권자들로 하여금 ‘대작’의 풍모를 느끼게 한 원동력이다. 그러나 덧칠을 피할 수 없는 유화의 운명처럼 그에겐 과거의 흔적이 많다. 그 흔적은 갑갑하고 퇴행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안철수는 수채화다. 맑고 신선하다. 한국 정치가 주던 무거움과 답답함을 날려버렸다. 젊은층 다수가 정치쇄신을 위해 나섰다는 안철수의 말에 공감하는 이유다. 정당 배경 없이도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그의 지지율은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수채화 대작’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그의 짧은 경험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불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안철수는 아직 공력(功力)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문재인은 박·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쪽을 선택하기 어렵다. 수채화에 가깝지만 유화의 특성도 지녔다고 할까. 문재인은 대부분의 인생에서 정치를 멀리했다. 담백하고 올곧게 살았다. ‘거짓말하지 않는 남자’라는 이미지를 쌓았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은 그를 정치 한복판으로 내몰았다. 그 와중에 한 정파의 대변자로 느껴질 만한 편협함이 일부 드러났다. 그가 수채화와 유화가 가진 장점을 함께 살릴지, 오히려 단점만 부각시킬지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유권자들이 어떤 그림을 선택할지는 이제 남은 70일간의 드라마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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