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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90) 쑹메이링, 오빠가 소개한 류지원과 2년 열애

국민혁명군 총사령관 취임 당일, 부하와 지지자들 앞에서 북벌을 선언하는(北伐誓師) 장제스.1926년 7월 9일 광저우(廣州) 둥샤오창(東校長).[사진 김명호]




20세기 초, 상하이에는 외국어 유치원이 많았다. 쑹메이링(宋美齡·송미령)도 다섯 살 때 미국인이 운영하는 유치원에 들어갔다. 아버지 쑹자수(宋嘉樹·송가수)는 중국식 교육을 불신했다. 어릴 때부터 집안 상용어가 영어이다 보니 다른 중국 애들에 비해 문화충격이 덜했다. 그해 겨울, 큰언니 아이링(<972D><9F84>·애령)이 미국 유학을 떠났다. 1907년 8월, 메이링도 둘째 언니 칭링(慶齡·경령)과 함께 태평양을 건넜다. 열 살 생일 직후였다. 훗날 할리우드를 주름잡게 되는 캐서린 헵번과 40년 후 메이링과 장제스 부부에게 치명타를 안기는 린뱌오(林彪·임표)가 태어난 것 외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해였다.



신해년(1911) 가을, 중국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신문마다 아버지 친구 쑨원의 모습이 큼지막하게 실렸다. 엄마 편지 받고서야 쑨원이 총통에 취임했다는 걸 알았다. 정치에 조금씩 관심이 갔다. 2년간 미국 생활을 익힌 후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웨슬리 여자대학에 입학했다. 영국 문학과 철학 시간만 되면 즐거웠다.

총통은 잠시, 수배자 신세로 전락한 쑨원은 일본으로 망명했다. 추종자였던 아버지도 가족들 데리고 도쿄로 이사했다. 쑨원의 비서였던 큰언니가 망명객과 결혼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형부 쿵샹시(孔祥熙·공상희)는 전당포 비슷한 것을 수십 개 운영하는 부자였다.



메이링은 주말만 되면 하버드대학에 다니는 오빠 즈원(子文·자문)을 만나러 케임브리지에 갔다. 보스턴과 케임브리지에는 중국 유학생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귀여운 데가 있다”고 쑤군대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오빠 소개로 알게 된 류지원(劉紀文·유기문)만은 예외였다. 항상 친절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줬다. 사진 촬영이 전문가 수준이라고 들었지만 카메라를 함부로 들이대는 법도 없었다. 덕분에 남들이 “잘 익은 호박” 같다고 놀려대던 소녀 시절 모습을 후세에 남기지 않았다.



학업을 마친 둘째 언니 칭링은 귀국 도중 일본에서 아버지와 합류했다. 칭링이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상대가 쑨원이라고 하자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언니들처럼 결혼 상대자는 내가 선택하겠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메이링은 하버드대학 기숙사를 찾아갔다. 류지원을 불러내 약혼식을 올리자고 했다. 군말이 있을 턱이 없었다. 2년 후 귀국할 때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붙어 다녔다. 빵이건 아이스크림이건 한 개만 사서 한 입씩 번갈아 가며 먹었다. 할리우드와 그랜드캐니언도 함께 여행했다. 두 사람만 아는 비밀이 많았다.



10년 만에 돌아온 중국은 너절했다. 메이링은 음식, 복장, 사무실, 목욕탕 등 뭐든지 미국과 비교하며 짜증을 부렸다. 아버지가 딸 미국 유학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절대 보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는 말을 듣고 찔끔했다.



이듬해,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국영화심사위원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던 메이링은 밤마다 망부(亡父)의 문건들을 정리하며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는 중국을 저주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사랑했다”고 일기에 적었다. 생활 습관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중국어를 익히며 붓과 씨름하다 보면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약혼자에게도 치파오 입고 찍은 사진을 보냈다.



1922년 12월 2일, 오빠 집에서 기독교 관련 모임이 있었다. 장제스(蔣介石·장개석)라는 30대 중반의 군인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 신자들만 모인 자리에 온 사람이 기도도 할 줄 모르고 찬송가도 부를 줄 몰랐다. 여자들만 힐끔힐끔 쳐다봤다.



연인과 처음 만난 날짜나 장소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평생 일기를 쓴 장제스는 경우가 달랐다. 이날도 일기를 남겼다. “하는 일 없이 거리를 빈둥거렸다. 여자들 엉덩이에 자꾸 눈길이 갔다. 이 버릇 고치지 못하면 평생 사람질 못할 것 같다. 소변이 마려워 근처에 있는 즈원의 집으로 달려갔다. 말로만 듣던 여동생을 처음 만났다. 낮에 하고 다닌 일 생각하니 수치심이 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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