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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나 윤석금의 진짜 잘못 두 가지

정선구
산업부장
내 고향은 충남 공주시 유구읍. 차령산맥 줄기가 이어지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조선 산하를 조사하며 큰 인물이 나오지 못하도록 명당은 모두 없앴는데 그중 하나로 전해진다. 과연 이여송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그대로 들어맞았을까.



 나는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다. 중학교 2학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치약이란 걸로 이를 닦아봤다. 부잣집 솥 안 밥알이 숭얼숭얼거리는 게 늘 부러웠던 어린 시절. 그래서 단 하나의 꿈은 ‘쌀밥을 실컷 먹는 것’이었다. 1971년 만 26세가 돼서야 첫 번째 꿈은 이뤄졌는데, 내기바둑이나 두면서 빈둥대다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파는 세일즈맨으로 취직하면서였다. 이것이 내 인생을 확 바꾸는 계기가 될 줄이야.



 ‘저 친구, 영어 굉장히 잘하네. 얼굴도 잘 생겼고….’



 브리태니커 면담 날 사무실에서 본 한 청년의 첫인상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 물어봤다. 이곳 직원 같은데 백과사전 몇 세트나 파셨느냐고. 그 친구 대답. “하나도 못 팔았습니다.” 저런 친구가 저 정도라니, 나 같은 충청도 촌놈은 더욱 안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다음 날 다른 직원을 만났다. 그 직원은 지금까지 17세트를 팔았다고 했다. 당시 한 세트 가격이 27만원. 수당으로 양복 한 벌 값이 떨어질 때였다.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해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전을 팔았다. 세일즈맨은 쭈뼛쭈뼛하면 안 되겠다 싶어 설명을 요령 있게 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 반복해서 외웠다. 신뢰감 있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매일 거울 앞에서 30분씩 표정 짓기 연습을 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내 얼굴에 밝은 인상이 생겨났고, 신기하게도 사전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나는 브리태니커 세일즈에 뛰어든 첫해에 국내 1등을 넘어 세계 1등이 됐다.



 꿈은 진화하는 것. 이번엔 직접 출판사업을 해보기로 했다. 80년 어느 날 퇴근 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과외금지령 소식을 듣고 실력 있는 교사들을 모아 ‘헤임고교학습테이프’를 제작했는데, 이게 공전의 히트를 쳤다. 또 우연히 신문을 읽다가 구독안내를 보고 힌트를 얻어 당시 학습지업계에서 전례가 없던 1년치 구독상품(웅진아이큐)을 만들었고, 이를 밑천 삼아 웅진식품과 웅진코웨이를 잇따라 설립했다. 97년 외환위기 때는 업계 최초로 렌털 마케팅시스템 도입해 돌파구를 찾았다. 그러고는 이여송의 명당 파괴를 무색하게 그룹 회장까지 됐는데….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까지 이르게 된 작금의 웅진 사태에 대해 반성한다. 무리한 욕심 때문에, 자만심 탓에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무일푼으로 시작해 대기업을 일구기까지 성공을 위해 달려온 칠십 가까운 내 평생. 많은 사람의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내 진짜 잘못은 따로 있다. 첫째, 긍정만을 너무 강조한 잘못이다. 나는 늘 긍정적인 삶을 살아왔다. 고스톱을 칠 때도 일단 광이 두 장 들어오면 나머지 한 장도 내게 온다는 믿음을 갖는다. 신기하게도 70% 이상은 정말 광이 들어왔다. 골프에서 퍼팅도 남들보다 잘하는 편이다. 퍼팅 전에 ‘이것은 들어간다’는 자기 최면을 건다. 그러면 백발백중이다. 항상 낙천적이요 낙관적이어서 바둑(아마 5단)도 잘 두고 당구(300점)도 잘 친다. 하지만 이게 잘못이다. 성공 전까지 긍정의 생각은 옳지만, 성공 이후에는 비관과 부정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간과했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 말이다.



 한데 더 큰 잘못이 있다. 나를 롤 모델 삼아 살아온 대한민국 월급쟁이들에게 실망을 안겨 준 것이다. ‘샐러리맨 신화’ ‘제2의 윤석금’을 꿈꿔온 젊은이들에게 성공한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지 못한 점이다. 이 땅의 청춘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절대 포기하지 말자다. 사람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으로 나뉜다. 꿈 없는 사람은 살아있어도 죽은 사람이요, 꿈을 잃지 않는 사람은 망해도 산 사람이다. 긍정의 마인드로 성공하고, 성공한 뒤에는 ‘비관해야 생존한다’는 자세를 잃지 말자. 나는 윤석금이다. 영원한 세일즈맨이다. 나는 잠깐 물러서지만 그대들은 앞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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