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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한·일 노벨상 1 대 18 … 학문 분야선 0 대 17

한국이 일본을 만나면 투지가 샘솟는다. 스포츠 한·일전이 벌어질 때마다 나오는 말이다. 대표적인 종목이 축구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광복 후 처음 일본을 만난 1954년 3월 스위스 월드컵 지역예선 1차전에서 놀라운 투혼을 발휘하며 일본 대표팀을 5대1로 꺾었다. 이후에도 일본과의 국가대표 경기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한 한국은 지금까지 75전40승22무13패라는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고 있다.



일본 2000년 이후 이공계 수상자 10명 … 한국은 김빛내리·신희섭· 김필립에게 희망 건다

 경제에서도 후발주자인 한국이 ‘잃어버린 20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본을 따라잡는 분야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는 한때 일본 전자산업의 신화로 불렸던 소니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평가한 2012년 국가경쟁력은 한국이 22위, 일본이 27위로 다섯 계단이나 차이가 난다. 최근에는 국가신용등급도 신용평가사에 따라 일본을 추월(피치·한국 AA-, 일본 A+)하거나 같은 수준(무디스·한국과 일본 Aa3)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이 일본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노벨상 수상자 숫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긴 했지만 한국인이 학문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적은 아직 단 한 번도 없다. 반면 일본은 1974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 외에도 학문 분야에서만 모두 1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스포츠 경기로 치면 노벨 평화상을 제외하고 한국이 일본에 0대17이란 압도적인 점수 차로 뒤져 있는 셈이다.



일본, 1949년 첫 노벨상 수상자 배출



 일본의 첫 노벨상 수상자는 1949년 물리학상을 받은 유카와 히데키다. 교토대 출신인 그는 원자핵을 결합시키는 힘을 가진 ‘중간자’의 존재를 예측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수상자 발표 후 그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며 패전 후 실의에 빠져 있던 일본인에게 큰 희망을 안겨줬다. 이는 전후 일본에서 과학 붐이 일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때 뿌린 씨앗은 2000년 이후 10명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내면서 꽃을 활짝 피웠다.



 유카와 이전에도 노벨상에 가까이 다가간 일본 과학자가 여럿 있었다. 노벨상 제정 첫해인 1901년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추천됐던 기타사토 시바사부로가 대표적이다. 그는 1890년 독일의 에밀 폰 베링과 공동으로 혈청을 이용한 면역요법에 관한 논문을 펴냈다. 하지만 노벨상위원회는 베링에게만 생리의학상을 줬다. 공동 수상의 관행이 생기기 전이란 이유도 있었지만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작용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한국이 갑오경장(1894년) 이후 비로소 근대화의 시동을 걸던 무렵 일본 과학은 이미 노벨상 수준까지 올라 있었던 셈이다.



 세균학자였던 노구치 히데요도 1913년 이후 아홉 차례나 노벨상 추천을 받았다. 현재 대부분의 일본인은 지갑 속에 노구치의 초상화를 넣고 다닌다. 2004년부터 통용되는 1000엔권 지폐 초상의 주인공이 노구치인 까닭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지폐에 과학자의 얼굴을 넣었다는 사실은 과학기술을 존중하는 일본의 전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국내 화폐에는 과학자의 초상이 없다.



2002년 화학상을 수상한 다나카 고이치는 당시 43세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석·박사 학위 없이 시마즈제작소란 회사에 들어가 줄곧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그는 승진해서 관리직이 되면 연구에 지장을 받게 될까 봐 승진 노력도 별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 소식은 회사로 걸려온 국제전화로 통보받았는데, 처음엔 영어가 서툴러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여기저기서 축하인사를 받으면서 자신이 노벨상을 받게 됐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스타일로 주목을 받은 그는 노벨상 기자회견 때도 정장 대신 작업복 차림으로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2008년 68세의 나이에 물리학상을 받은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유학은 물론 평생 해외여행 한번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여권도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시상식 연설에서도 어눌한 영어로 “죄송하지만 저는 영어를 못합니다”라고 양해를 구한 뒤 일본어로 소감을 밝혔다. 다나카와 마스카와의 사례는 일본 내에서만 열심히 연구해도 노벨상을 탈 수 있을 정도로 일본 과학의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계기가 됐다.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장은 “도쿄대와 서울대가 이공계 교육을 시작한 것만 따져봐도 일본 과학교육의 역사는 한국보다 적어도 50년 이상 앞서 있다”며 “이런 요인이 쌓이고 쌓여 노벨상이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학 경쟁력 일본 2위, 한국 5위



 그렇다면 한국인의 노벨 과학상 수상은 언제쯤이면 가능할까. 결정권을 가진 노벨상위원회는 묵묵부답이다. 하지만 한국 과학계는 노벨상을 향해 한발, 한발 꾸준히 다가가고 있다. 2010년에는 김필립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물리학상에 거의 근접했다가 아깝게 놓쳤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IMD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과학 경쟁력은 세계 5위, 일본은 2위에 올랐다. 한국의 과학 경쟁력도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일본과는 아직 세 계단의 격차가 있긴 하다. 하지만 한국은 2004년 17위까지 떨어졌다가 8년 만에 열두 계단이나 뛰어오르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최근 10년간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와 연구 인력·논문수가 급증하며 한국의 순위가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이다.



 일부 항목에선 한국이 일본을 앞지르기도 한다. 2010년을 기준으로 한국은 1000원을 벌면 37.4원을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비로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은 33.6원으로 한국보다 적었다. 연간 국내총생산(GDP)에서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으로 한국은 세계 3위, 일본은 5위를 기록했다. 다만 연구개발비 투자를 총액으로 따졌을 때는 일본(1690억 달러)이 2위, 한국(379억 달러)은 7위로 나타났다. 일본의 경제 규모가 세계 3위로 한국(15위)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9년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과학기술이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는 분위기다. 그해 총선에서 복지 공약을 내세워 정권을 잡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과학기술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그러자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일본의 과학자들이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예산 삭감에 반발했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고바야시 마코토 나고야대 교수는 “하토야마 정부가 과학기술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공언해 놓고는 정작 관련 예산은 줄이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5년마다 작성하는 ‘과학기술 기본계획’도 대폭 수정했다. 2001년과 2006년 자민당 정권 때 과학기술 기본계획에는 ‘50년간 노벨상 수상자를 30명가량 배출한다’는 목표가 명시돼 있었다. 그러나 간 나오토 전 총리가 정한 2011년 계획에서는 노벨상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다. 과학계에서 “품위 없게 목표 수치를 제시하면 안 된다”고 반발한 이유도 있지만 과학기술에 소극적인 민주당 정권의 분위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과학자 중에는 신희섭 소장과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등이 노벨상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소장은 생쥐의 뇌에 전기신호를 흘려 보내는 독창적인 방법을 착안해 소우주로 불리는 ‘뇌의 세계’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선 직접 인간의 뇌에 전기자극을 보내지만 현실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할 순 없기 때문에 생쥐를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DNA에 이어 생명과학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마이크로 RNA’ 연구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힌다. 마이크로 RNA는 세포의 탄생에서 성장·노화·질병을 거쳐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로병사의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물질이다. 김 교수는 “외국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앞서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신 소장이나 김 교수 같은 과학자들을 파격적으로 밀어주는 체계를 마련했다. 지난 5월 ‘기초과학 분야 세계 10대 연구기관’을 목표로 출범한 기초과학연구원이 전담 기관이다.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이 연구원은 분야별 연구를 기획·총괄하는 연구단장을 선정하고 해마다 최대 100억원씩 10년간 연구비를 지원한다. 우수한 과학자들이 원하는 주제를 돈 걱정 없이 장기간 소신껏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다.



1차 연구단장에는 신 소장과 김 교수를 비롯해 유룡 KAIST 교수 등 10명이 선정됐다. 김기문(초분자화학) 포항공대 교수, 김은준(뇌기능 장애) KAIST 교수, 노태원(차세대 반도체 재료물질) 서울대 교수, 오용근(기하학)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 정상욱(신물질 합성) 미국 럿거스대 교수, 찰스 서(면역학) 포항공대 교수, 현택환(나노입자 합성기술) 서울대 교수 등도 명단에 포함됐다. 연구원은 다음 주 2차 연구단장 명단도 발표할 예정이며 2017년엔 50명까지 늘린다는 청사진을 마련해놓고 있다.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은 “한국 기초과학의 수준을 착실히 높여나가면 언젠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며 “외국 석학들도 한국의 높아진 국력과 위상을 고려할 때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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