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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111년, 수상자들 이야기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로 유명한 스웨덴의 기업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1901년 시작됐다. 물리·화학·생리의학·문학·경제학·평화상 등 6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룩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노벨 자신이 평생 355개의 특허를 따냈을 정도로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과학 분야가 중심이다. 문학상은 소년 시절 문학가를 꿈꿨던 노벨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고, 평화상은 노벨이 짝사랑한 오스트리아의 베르타 폰 주트너 남작 부인(1905년 평화상)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경제학상은 노벨의 유언엔 없었으나 69년 스웨덴 중앙은행에 의해 추가됐다. 올해는 8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상(9일), 화학상(10일), 평화상(12일), 경제학상(15일), 문학상(미정) 수상자가 잇따라 발표될 예정이다.



사위·딸 포함 다섯 차례 … 퀴리 부인 일가는 ‘노벨상 패밀리’ 
“기생충이 암 유발” 의학상 … 피비게르 이론 훗날 오류 판명

 ◆노벨상 명문가=한 개도 어려운 노벨상 메달을 2대에 걸쳐 다섯 개나 가져간 마리 퀴리 부인 일가가 대표적인 노벨상 가족이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공부한 퀴리 부인은 1903년 남편 피에르와 함께 방사능 연구에 대한 공로로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에도 꿋꿋하게 연구에 매진해 11년 화학상을 단독으로 거머쥐었다. 이어 35년엔 딸 이렌이 사위 프레데리크 졸리오와 함께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노벨상위원회에 따르면 부부·부자·형제 등 가족이 노벨상을 받은 경우는 퀴리 부인 가족을 포함해 모두 열 가족이다. 영국의 조지 톰슨은 특이하게도 아버지(J J 톰슨·1906년 물리학상)의 연구 결과를 뒤집은 덕분에 37년 물리학상을 받았다. 가장 최근에는 미국 스탠퍼드대의 로저 콘버그 교수가 아버지(아서 콘버그·59년 생리의학상)에 이어 2006년 화학상을 수상했다. 건국대 석학교수를 겸하는 그는 국내 연구진과 공동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아시아의 노벨상=제2차 세계대전 이전 아시아의 노벨상 수상자는 단 2명에 그쳤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1913년 문학상)와 물리학자 찬드라세카라 라만(30년 물리학상)이다. 전후 수상자 중에는 아시아 출신이라도 고국을 떠나 미국 등에 기반을 두고 연구한 경우가 많았다. 중국인으로는 처음 노벨상을 받은 리정다오(李政道)와 양전닝(楊振寧)이 대표적이다. 57년 함께 물리학상을 받은 두 사람은 중국 본토에서 태어났으나 대만 국적을 갖고 미국에서 연구한 게 공통점이다. 수상 당시 리 박사는 컬럼비아대 교수, 양 박사는 프린스턴대 연구원이었다. 파키스탄 출신의 압두스 살람도 영국에서 연구 중이던 79년 물리학상을 받았다.



 ◆논란의 수상자=노벨상 초창기에는 완전히 틀린 이론으로 수상한 사람도 있다. 발표 당시에는 획기적인 이론으로 평가받았으나 후세에 과학이 발전하면서 뒤집어진 경우다. 26년 덴마크 의사 요하네스 피비게르는 기생충이 암을 일으킨다는 연구로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나중에 오류로 밝혀졌다. 이에 노벨상위원회는 이후 40년 동안이나 암 관련 연구에 노벨상을 주지 않았다.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을 제치고 12년 물리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발명가 구스타프 달렌도 논란이 됐다. 그는 사람이 없는 등대에서 빛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장치를 개발했는데 노벨상을 받을 만한 획기적인 발명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반면 에디슨은 니콜라 테슬라와 공동 수상자로 거론됐으나 결국 둘 다 상을 받지 못했다. 전기를 보내는 방식에서 에디슨은 직류, 테슬라는 교류를 주장하며 ‘전류 전쟁’을 벌였던 게 문제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이 아니라 빛이 입자의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을 증명한 ‘광전 효과’로 21년 물리학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가 상대성 이론에 대해 “자연현상의 설명이 아닌 수학적 공식화”라며 부정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수상자 발표 당시 아인슈타인은 세계 순회강연을 다니던 중 중국에서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향하고 있었다. 덕분에 아인슈타인은 일본에서 가는 곳마다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일본 과학의 발전에 큰 자극을 줬다고 한다. 그는 23년 스웨덴을 방문해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을 했는데 광전 효과가 아닌 상대성 이론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수상 거부자=노벨상 역사에는 수상을 거부한 사람도 두 명이 있다.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64년 문학상)와 베트남 공산당의 레득토(73년 평화상)다. 사르트르는 노벨상뿐 아니라 프랑스 정부에서 주는 훈장도 거부했다. 상을 받으면 작가로서의 자유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르트르의 수상 거부는 노벨상위원회의 노여움을 사 그 후 21년 동안 프랑스 작가는 문학상을 받지 못했다.



 레득토는 베트남 평화협상 진전에 대한 공로로 헨리 키신저와 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키신저는 대리인을 보내 상을 받아갔으나 레득토는 “조국에는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키신저도 노벨상 메달을 반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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