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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가다 <4> K2 (중)

해발 4700m 콩코르디아 이후로는 얼음길이 펼쳐진다. 솟은 얼음이 악어의 이빨 같다. 지난 7월 9일, K2베이스캠프에서 내려온 한 트레커가 브로드피크(왼쪽)와 마셔브룸4봉을 향해걷고 있다.


K2(8611m) 남면과 가셔브룸1(8068m)·가셔브룸2(8035m) 남면에서 시작된 빙하가 서로 만나 거대한 얼음 도로를 이룬 발토로(Baltoro) 빙하. 발토로는 티베트말로 ‘땅을 풍요롭게 한다’는 뜻이다.

6000~8000m 거대 봉우리들, 진시황 병마용처럼 도열하다



빙하는 인더스강의 수원(水源)으로 이 강에 의지해 온 사람들에게 풍요를 선물하고 있다. 그러나 발토르 빙하 상단부는 전혀 딴판이다. ‘제3의 극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황량한 눈 벌판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은빛 강물이 흐르는 것 같다.



용의 등뼈처럼 솟은 K2 빙하와 가셔브룸 빙하는 약 10㎞를 흘러 콩코르디아(Concordia·4700m)에서 만난다. 빙하의 광장이자 8000m 침봉에 둘러싸인 ‘신들의 광장’이다.



카라코람(파키스탄)=김영주 기자

사진=이창수(사진 작가)





‘신들의 광장’ 콩코르디아



콩코르디아의 보안관, 아지 알리가 곡괭이로 얼음벽에 길을 내고 있다.
K2 빙하는 고드윈 오스틴(Godwin Austin) 빙하로 불린다. 처음 발견한 영국 탐험가의 이름을 땄다. 인도측량국 직원 오스틴은 1861년 지형 조사를 위해 K2 빙하로 향한다. 세계 2위봉 K2의 높이가 삼각측량법에 의해 8611m로 측정된 지 3년 후의 일이다. 당시는 아직 아스콜리(Askole)에서 들어가는 길이 뚫리지 않았기에 그는 북쪽 히스파르(Hispar) 빙하에서 무즈타그(Muztagh) 빙하를 넘어 남하했다. 무즈타그 빙하는 거대한 기둥처럼 우뚝 솟아 있는데 남성적인 생김새다.



오스틴은 무즈타그 빙하를 넘어 발토로에 진입했지만 K2를 볼 수 없었다. 무수히 많은 벽을 거느린 카라코람의 제왕, K2는 빙하 중간 지점에서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정면에 있는 가셔브룸4(7995m)를 이정표 삼아 계속해서 올라갔다. 가셔브룸4에서 북쪽으로 휘어지는 빙하가 바로 K2로 들어가는 길이다. 오스틴은 마침내 두 빙하가 만나는 지점(콩코르디아)에서 K2를 두 눈에 담았다. 서양인으로서는 처음이었다.



영국의 탐험가 윌리엄 마틴 콘웨이는 1892년, 원정대를 이끌고 발토로빙하를 찾는다. K2 등반을 위한 원정으로는 최초였다. 대원 중에는 현대적인 크램폰(10발 아이젠)을 만든 오스카 에켄슈타인이 포함돼 있었다. 그해 8월, 콘웨이는 오스틴 빙하와 가셔브룸 빙하가 만나는 지점에 당도했다. 두 개의 거대한 빙하가 만나 형성한 얼음과 눈의 광장을 본 순간 그는 파리의 콩코드 광장을 떠올렸다. 그는 유럽에 돌아가서 파키스탄 북부 카라코람히말라야에 ‘콩코드 광장이 있노라’고 말했다. 그의 한마디는 카라코람의 거인, K2를 ‘정복’하기 위한 유럽인의 야심에 불을 댕겼다.



그로부터 120년 만인 지난 7월 8일 오후, 아스콜리를 출발한 지 1주일 만에 우리 일행은 콩코르디아에 닿았다. 6000m에서 8000m에 이르는 거대한 봉우리들이 진시황의 병마용처럼 빙하를 향해 도열해 있었다. 보통 8000m 산들의 베이스캠프지는 옹색하지만 콩코르디아는 광장이란 이름에 걸맞게 사방이 확 트여 있다. ‘카라코람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셔브룸(7821m)을 포함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미트라피크(6025m), 초고리사(7654m), 가셔브룸5(7321m), 가셔브룸4, 브로드피크(8047m) 그리고 K2가 서 있었다. 약 1세기 전 탐험가들이 이곳에 발을 디딜 때와 변함없이 거대한 침봉들은 석양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콩코르디아에 캠프를 친 각국의 원정대와 트레킹팀.


콩코르디아의 보안관, NGO 직원들



해발 4700m지만 섭씨 25도까지 치솟는 한낮의 열기가 눈을 몰아냈다. 하지만 검은 구름이 몰려오면 광장은 순식간에 하얗게 변할 것이다. 원정대와 트레킹팀 텐트 주변으로는 ‘비아(Bya)’라는 작은 쥐들이 돌아다녔다. 새앙쥐는 검은 바위 틈 사이를 나는 듯 돌아다녔다. 히말라야 고산에 쥐가 있다는 사실은 조금 꺼림칙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구석도 있었다. ‘이곳이 사지는 아니구나’.



콩코르디아에는 광장을 지키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있다. 원정대와 트레커가 버린 쓰레기를 수거하고, 산악 구조활동을 펴는 NGO 단체 K2 클린포스트(Clean Post)의 직원들이다. 광장의 보안관인 셈이다. 아지 알리(55) 대장은 K2를 포함해 발토로 빙하의 8000m 봉우리 4개를 모두 등정한 유능한 클라이머다. 눈이 녹기 시작하는 6월에 들어와 약 석 달 동안 산악구조 활동을 벌인다. 그리고 원정대가 모두 빠져나가는 9월 말이 되면 콩코르디아와 K2, 가셔브룸 1·2 베이스캠프의 쓰레기와 오물을 수거해 80km 떨어진 아스콜리 마을까지 운반한다.



“우리가 처음 들어온 2009년에는 쓰레기가 20t이나 됐어요. 당나귀 400마리가 실어 날라야 했지요. 많이 줄어서 올해는 당나귀 100마리면 될 것 같아요.”



현지 포터들은 밀가루 빵인 자파티와 차이(양의 젖에 찻잎을 넣고 끓인 차)로 매 끼니를 해결한다
올해 발토로 빙하를 찾은 인원은 대략 1000여 명, 한 사람당 약 5kg의 쓰레기를 버리는 셈이다. 놀라운 이야기도 아니다. 사실 콩코르디아 캠프 주변에는 한글이 박힌 초콜릿과 과자 봉지, 통조림 깡통이 난무하니 말이다.



K2클린 포스트는 이탈리아의 산악인이자 기업가인 어거스티노 폴렌자(Agostino Da Polenza)의 기부로 진행되고 있다. 그는 에베레스트-K2 환경단체(Ev-K2 CNR)의 수장으로서 지난 수십 년간 히말라야 고산에서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탈리아는 1954년 세계 최초로 K2를 ‘정복’했다. 미국과 영국·오스트리아 등과 치열한 경쟁 끝에 얻은 승전보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풀이 죽은 이탈리아인들에게 무한한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K2클린포스트는 그들의 자부심이자 양심인 셈이다.



세계12봉 브로드피크를 향해



한낮의 쨍한 볕은 빙하의 광장, 콩코르디아의 신설을 증발시킨다.
신들의 광장에서 하룻밤을 지낸 7월 9일 이른 아침, 거짓말처럼 K2의 위용이 드러났다. 오스틴 빙하를 덮은 짙은 가스 속에 K2는 6000m 이상의 높이에서 둥둥 떠 있었다. 완전한 삼각뿔 모양의 거대한 산, 약 1세기 전 탐험가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던 그 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검은 굴뚝에서 뿜어내는 설연(雪燃)은 신비로움과 동시에 공포를 느끼게 했다. 정상에서 산허리까지는 여러 갈래의 구름띠가 드리워져 검은 거인의 육신을 갈라놓고 있었다. 마치 외계에서 나타난 거대한 비행물체가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에서 기념촬영. 왼쪽부터 정용권 엠투어대표, 김영주 기자, 이창수 작가.
우리는 마치 무지개를 좇는 아이들처럼 K2로 빨려 들어갔다. 콩코르디아에서 세계12위봉,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4950m)까지는 10km 남짓, 서너 시간이면 갈 수 있다. 또 이곳에서 K2베이스캠프(5150m)는 8km, 두세 시간 거리다. 포터들은 이 거리를 한나절 만에 왕복한다지만 고소 적응이 안 된 우리 일행은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에서 한 밤을 자고, 이튿날 K2로 들어가기로 했다.



콩코르디아를 뒤로하고 오스틴 빙하로 접어드는 길, 2개의 거대한 물길을 건넜다. 에메랄드 빛 빙하의 계곡 중 폭이 가장 좁은 데를 찾아 징검다리를 밟듯이 건너야 한다. 발을 헛디뎌 빠지면 목숨이 위태롭다. 빙하의 물길은 봅슬레이 코스처럼 얼음구덩이 속을 통과하기 때문에 구덩이에 갇히면 1시간 이내에 저체온증으로 죽는다. 실제로 그렇게 목숨을 잃는 포터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위험한 곳이지만 가끔씩 뒤돌아보는 광경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거대한 침봉들은 각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콩코르디아에서는 펑퍼짐해 보였던 브로드피크 또한 가까이 가 보니 3개의 봉우리가 연달아 솟은 미봉이다.





베이스캠프에는 벌써 원정대 8개 팀이 텐트를 치고 있었다. 그중 중국 아웃도어 브랜드 ‘토리드(Toread)’의 공동 창업자인 왕징(37)이 이끄는 중국팀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보다 하루 먼저 도착했는데 고소 적응 없이 곧바로 브로드피크 정상 공격에 나선단다. 여성 클라이머이자 사업가인 왕징은 “브로드피크를 오른 뒤 가셔브룸 1·2에 도전할 계획이다. 중국에서 한 시즌에 8000m 봉우리를 3개 오른 사람은 아직 없다. 내가 그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했다.



놀라움과 함께 걱정이 됐다. 다소 무모한 그의 계획은 최근 히말라야 등반에서 중국의 기세를 대변한다. 등반 시즌이 되면 8000m 산의 거의 모든 캠프에는 중국 원정대가 있다. 마치 10여 년 전 한국 원정대처럼 말이다.



각국 원정대 멤버 20여 명이 정상 공격을 위해 잠자리에 든 늦은 밤, 우리는 카라코람을 비추는 별빛을 만끽하며 여유를 즐겼다. 고소 증세도 전부 사라졌다. 이제 K2까지는 하루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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