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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조선시대판 막장소설? 『화문록』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요즘 ‘욕하면서 보는’ 대표적인 드라마는 MBC 아침 연속극 ‘천사의 선택’이다. 출생의 비밀과 기억상실증은 물론이고 한집에서 두 여자와 부부생활을 하는 남편까지 등장하는, ‘막장 설정’의 종합선물세트라 할 만하다. 추석 연휴를 맞아 조선시대 왕실 부녀자들이 즐겨 읽었다는 소설 『화문록(花門錄)』을 집어 들었다가 ‘천사의 선택’과 흡사한 전개에 놀라고 말았다. 아, 자극적인 설정의 중독성이란 이토록 유구한 역사를 지닌 것이었구나.



 『화문록』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내고 있는 ‘조선 왕실의 소설’ 시리즈 중 하나다. 1847년 헌종이 후궁 김씨를 위해 지은 창덕궁 낙선재에는 2000여 종의 소설이 보관돼 있는데, 이 중 왕실 여성에게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는 작자미상의 한글소설이다. ‘옥 같은 얼굴에 샛별같이 빛나는 눈’을 가진 조선시대 꽃미남 화경이 주인공. 부모의 뜻에 따라 이혜란이란 여성과 정혼을 하지만, 우연히 호홍매를 보고 한눈에 반해 그녀를 둘째 부인으로 삼는다. 그러나 홍매는 혜란을 죽이고 남편을 홀로 차지하기 위해 모략을 꾸미는 악녀였던 것.



조선 왕실의 소설 『화문록』 현대어본 표지.
 홍매의 기상천외한 계략들은 현대 드라마 작가들에게도 좋은 참고가 될 만하다. 시부모에게 올리는 술에 약을 탄 후 그 죄를 혜란에게 뒤집어씌우고, 산적들에게 납치를 사주하기도 한다. 얼굴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약 ‘변용단’을 먹고 혜란으로 변신, 외간남자를 만나기도 한다. 같은 시리즈물로 출간된 『천수석(泉水石)』 역시 비슷한 연애소설인데, 이 작품에는 신분을 숨기려 여장을 하는 남성과 간통으로 이혼하는 부부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스토리는 뻔하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의 서술자가 들려주는 인간관계에 대한 철학적 해석과 은유적 화술은 꽤 신선하다. 후궁에게 푹 빠져 국사를 망치는 왕이 등장하는 등 정치적 함의도 담겼다. 수위 높은 장면들은 애교 있게 눙친다. 화경과 홍매가 첫날밤을 보내는 장면. ‘화경이 미소를 머금고 즉시 촛불을 끄고 이부자리에 나아가니 애정이 비길 데가 없었다. 마치 원앙새가 푸른 물가에서 함께 만나고, 비취새가 연리지에서 짝지어 노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음란함은 차마 기록할 수가 없다.’



 조상님들의 연애담을 색다르게 즐기는 방법이 있다. 요즘 서울 중구 덕수궁의 중화전 행각을 찾으면 아나운서가 낭랑한 목소리로 읊어주는 『화문록』과 『천수석』을 들을 수 있다. 12월 2일까지 덕수궁에서 진행되는 현대미술전 ‘덕수궁 프로젝트’의 하나다. 듣다 보면 살짝 민망해지는 옛 사랑 이야기와 함께 궁궐의 가을을 만끽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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