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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부실 책임 뻔히 보이는데 … 법 뒤에 숨으면 그만?

[게티이미지]


LIG건설에 철근을 납품하던 김모(47)씨는 지난해 3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회사 측이 급작스레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거였다. 안 그래도 자꾸 미뤄지던 대금 지급이 당장 중단됐다. 6개월 뒤 법원이 승인한 회생계획은 김씨를 더욱 절망케 했다. 서울중앙지법 제3파산부는 지난해 9월 “상거래채권 가운데 30%는 10년 동안 나눠 상환하고 50%는 15년 만기의 무보증 무이자 회사채로 지급하며 나머지 20%는 출자전환하라”고 결정했다. 김씨가 받아야 할 대금 20억원도 사실상 허공으로 날아갔다. 김씨는 “이자 한 푼 없이 연 3%씩만 돌려받고 15년 뒤에나 절반을 받으라는 얘기”라며 “대기업을 살리자는 법정관리에 수많은 중소기업이 죽어나간다”고 말했다.

누구를 위한 법정관리제도인가
‘경영진 유지’ 통합도산법 이용
대주주, 교체 없이 경영권 지켜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한 중견 건설사인 S사는 2년 만에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자산은 3분의 1로 줄었다. 시공능력 순위도 3년 새 80위권에서 160위권으로 뒷걸음질쳤다. 협력업체들도 줄도산했다. 매출 채권의 60%를 떼이고 나머지 40%도 8년에 걸쳐 나눠 받는, 그야말로 빚잔치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주주는 건재하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37%에서 20%대로 낮아졌지만 경영 전반을 여전히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 회사의 협력업체였던 Y사 김모 사장은 “경영 잘못으로 빚어진 고통은 협력업체와 소액주주들이 감수하고 회생의 과실만 대주주가 가져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정관리 제도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실패한 대주주를 과도하게 보호해 고의적인 법정관리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웅진그룹도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법정관리 신청 과정에서 윤석금 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계열사 차입금을 미리 갚는 등 법정관리를 준비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논란의 핵심엔 ‘기존관리인 유지(DIP· Debtor In Possession)’ 제도가 있다. 2006년 제정된 통합도산법에서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 도입됐다. 중대한 위법 사실이 없으면 법원이 기존 대주주를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해 경영권과 지분을 보장해 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통합도산법 제정 이후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 중 85%에서 기존 대표이사가 그대로 관리인으로 선임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주주가 가장 중시하는 경영권이 보장되니 법정관리 신청이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법정관리 신청은 2006년 76곳에서 2010년 630곳, 지난해에는 712곳으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통합도산법 제정 전엔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2006년 4월까지만 해도 법정관리는 대주주에게 경영 활동의 종말을 알리는 제도였다. 보유 지분이 모두 소각돼 경영권을 뺏기고 노출된 개인 재산이 모두 몰수됐다.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대주주가 법정구속되는 경우가 잦았다. 건설업계만 해도 우성건설·건영·한신공영·청구·우방 등이 모두 이런 과정을 겪었다. 부실기업들이 법정관리보다는 은행 등 채권단의 감독 아래 자율적으로 채무조정을 하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선호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권이 보장되면서 대주주들에겐 워크아웃보다 법정관리가 매력적인 수단이 됐다.



 부실을 털어내는 데도 법정관리가 훨씬 효과적이다. 워크아웃은 금융권 채무만 동결된다. 일반적인 거래 대금이나 하도급업체 공사비 등은 정상적으로 지급해야 한다. 법정관리는 모든 채무가 감면 대상이다. 채권단뿐만 아니라 투자자와 거래 업체 모두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통상 법정관리 기업의 하도급 업체들은 받을 돈의 10% 정도를 건지는 데 그친다”고 말했다. 웅진홀딩스 계열사인 극동건설의 하도급업체는 1200개, 이들이 받아야 할 금액은 2953억원에 이른다. 웅진그룹이 발행한 기업어음(CP)과 회사채도 1조원에 달한다.



 지난해부터 바뀐 워크아웃 신청 방식도 법정관리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워크아웃 신청권을 채권단이 아닌 해당 기업이 갖도록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이를테면 피해자(채권단)가 아닌 가해자(채무자”)가 법원에 갈지 말지를 결정토록 한 것”이라며 “현행 구조조정 관련 법은 모두 부실기업에 법정관리행을 유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원이 지난해 도입한 ‘패스트트랙’도 논란거리다. 회생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6개월 내에 법정관리를 졸업할 수 있게 해 법정관리의 ‘매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이런 문제를 더 이상 두고 봐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법정관리가 ‘구조조정의 고통은 사회에 떠넘기고, 과실은 대주주가 갖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과 기업들은 반대다. 기업들은 “기존 경영진이 기업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가장 합리적인 자구책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법원도 “법원이 임명하는 임원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기존 경영진이 관리인이 되더라도 독단적으로 할 수 없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며 “굳이 법을 바꿀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양형우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DIP 제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자격이 없는 대주주까지 관리인으로 선임하는 경우가 많아 논란을 일으킨다”며 “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경우에는 경영진을 교체하 는 등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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