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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냥도 안 되는 난, 왜 글쓰기에 매달릴까

피아니스트 손열음씨의 손. 같은 곡도 연주마다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는 천재의 손이다. 그는 이 손으로 속 깊은 글도 써낸다. 욕심 많은 그녀는 글도 매번 완벽하고 빼어난 작품으로 빚고 싶어 한다. [중앙포토
‘이번 글은 그냥 망했다’고 매번 생각한다. 그냥 어떻게든 써 젖히면 되겠지, 이를 악물어보기는 한다. 문제는 꼭 연주를 하루 이틀 앞에 두어야만 연습을 시작하는 버릇이 글 쓸 때도 똑같이 나온다는 거다. 물론 음악 할 때처럼 가끔은 영감을 받았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마감 며칠 전부터 글을 써보겠다고 빨빨거릴 때도 있다. 한두 문단까지 써 내리고는 스스로의 나쁘지 않은 문장력에 살짝 수줍어하며 이렇게 가면 되겠지 하며 일단은 접는다. 이후 마감이 일고여덟 시간 앞으로 다가오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지난번에 썼던 그 글을 다시 여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이걸 어떻게 2500자로 풀어 쓰려 했지? 스스로가 한심하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창작의 괴로움

지난번에 써둔 한두 문단이 없는 경우에도 보통 두 문단, 그러니까 딱 800자 정도는 대개 아주 쉽게 쓴다. 좀 더 부드러운 스타트를 위해 보통 이슈나 에피소드로 글을 시작하는데, 이것들은 무엇이든 신기하게도 800자라는 규격에 보기 좋게 맞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이 두 문단을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분명히 있을 터인데, 신기하게도 내가 처음 예상했던 방향과는 아무 상관 없이 글이 멋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연주가로서 무대에 섰을 때 처음에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 느낌이 있었는데 갑자기 연주 자체가 유기체가 되어 나를 지배하는 거다. 내가 연주를 하는 게 아니라 연주가 나를 끌고 가는 기이한 상황이 글에서도 가끔 발생한다.

문제는 그것이 오래 가느냐? 물론 그렇지 않다. 기왕 나를 잡아 먹었으면 끝까지 수월하게 써질 일이지 종종 1200자 능선에 도달할 즈음 ‘아, 이 주제로 지금까지 쓴 만큼을 더 쓰는 것은 불가능이다’ 하며 지금까지 써 놓은 글에 뇌사 판정을 내린다. 엄청난 갈등의 시작점이다. 형체는 있는데 생명은 없는 이 불가사의한 존재를 살려, 말아. 아깝기는 한데 이 주제로는 도저히 끝까지 쓸 수 없을 것 같고 다른 주제로 처음부터 다시 쓰기에는… 그렇다. 당연히 시간이 없다.

종종 나는 오케스트라와의 리허설을 한 시간 앞두고 있다든지, 아니면 30분 이내에 공항으로 떠나야 한다든지, 일반인이었다면 자주 마주하지는 않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잘도 처해 있다. 벼락치기가 일상인 내가 전혀 준비 안 된 새 곡을 가지고 연주해야 할 때와 비슷한 고민이 시작된다. 될 것 같은데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계속 같은 부분에서 막히고 수십 번씩 원점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분명히 ‘이러지 말고 쳤던 곡으로 바꾸지?’ 하는 어둠의 목소리를 듣는다! 다행히 글은 이전 썼던 것을 지워버리면 그만이라 쓰는 과정에서 내가 대체 몇 번이나 이 목소리를 들었는지 읽는 사람은 알 턱이 없지만.

단순히 더 잘 쓰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진심이 담긴 글을 쓰고 싶 다. 내 마음은 한없이 슬픈데 아무 상관도 없는 가벼운 글을 쓰고 싶지 않은 건 스스로 공급자인지 수요자인지를 혼동하는 걸까? 이게 만약 내 연주라면 무대에 올라가기 전 아무리 슬픈 일이 있었을지라도 군말 없이 기쁜 음악을 연출할 텐데….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 음악은 매우 추상적인 예술이라 기쁘면서도 슬플 수 있고 슬프면서도 기쁠 수 있다. 그것을 바로 작품성이라 하는 것인데 글은 그보다 훨씬 구체적이어서 작자의 심경이 발가벗은 것처럼 드러나지 않는가.
아직 오래 살지는 않았어도 의식이 생긴 이래로 내내 예술만 해 왔는데 ‘창작 기반의 예술은 정말 다르구나’ 하는 근원적 고찰의 시간이 찾아온다. 아주 어려서부터 다른 건 몰라도 상상력과 창의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온 나라는 음악가는 정작 6세 때 16마디 동요를 지어 엄마·아빠에게 보여준 그날 이후로 창작이라는 걸 해본 역사가 없다. 우리의 창의성이란 주어진 텍스트를 기술과 예술성을 잘 조합시켜 얼마나 독창적으로 구현하느냐지 작곡가들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건 내 적성도 아니고 재능도 아닌 것이 분명 맞을 것이다! 그런데 깜냥도 안 되는 나는 왜 이 짓을 매달 하며 스스로의 뇌세포를 죽이고 있는 걸까?! 이거 정말 더 바닥나기 전에 관둬야 하는 게 아닐까? 이제는 더욱 근원적이고도 실제적인 질문이 찾아온다. 내 글이 공익에 이바지할 만한 유익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누가 보고 감탄할 만한 문장력이 날개를 펴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나 하나 글 안 쓴다고 그 누가 애석해할 것도 아닌데.

한참을 스스로와 씨름하다가 결국 내놓는 핑계의 키워드는 진부하게도 ‘소통’이다. 혹시 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사람이 생기지는 않을까? 나만의 생각을 여럿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더 나은 소통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지는 않을까? 혼자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 해고도 했다 재고용도 했다 하다 보면 어느새 글은 2500자를 넘겨 있다. 연주를 다 마치고 난 희열에 비하겠느냐만은 절대비교가 불가능한 이 쾌감에 사로잡힌 지도 어언 2년 하고도 반. 늘 부족한 글을 받아주시는 본지 편집국의 모든 분과 모자란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들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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