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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입궐’하니 굴곡진 역사가 꿈틀

한가위인 오늘은 고궁이 무료 개방된다(창덕궁 후원은 제외). 10여 년 전만 해도 심드렁하게 들었을 정보인데, 지금은 솔깃하다.
예전 학창 시절에 갔던 고궁은 솔직히 따분했다. 정전(正殿)을 제외한 모든 전각이 꼭 닫혀 있어 고적한 느낌만 감돌았다. 전각의 마루는커녕 때로는 월대(月臺)에도 올라가지 못하게 쇠줄이 쳐져 있었다.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푯말투성이의 공간에서 관련된 역사에 대한 설명은 그저 겉돌 뿐이었다.

문소영의 문화트렌드 재미난 고궁


요즘은 다르다. 지금 덕수궁 덕홍전에 가면 전각의 고전적인 단청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초현대적 은색 곡선형 의자들이 거대한 물결처럼 전각 바닥을 점령하고 있다(사진). 관람객은 들어가 그 의자에 앉을 수 있다.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의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이 예술가들에게 덕수궁에 어울릴 작품을 의뢰해 12월 2일까지 전시하는 ‘덕수궁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의자의 은색 크롬 표면에는 화려한 단청이 불규칙하게 반사돼 기괴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일그러짐에는 이유가 있다. 덕홍전은 원래 명성황후의 신주를 모시는 혼전(魂殿)이 있던 곳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한·일 강제병합 후에 개조해 고종이 일본 관리를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하게 했다. 하 작가는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이 왜곡의 산물이었다는 아이러니”에 주목했다고 한다. 관람객은 여기 앉아 사운드 아티스트 성기완의 신비한 음악을 들으며 눈앞에 펼쳐진 의자들처럼 굴곡진 역사에 대해 명상할 수 있다.

덕수궁 관람객은 또 고종의 침전이자 그가 승하한 장소였던 함녕전 대청마루에 올라갈 수 있다. 거기에는 고종이 잘 때 보료 3채를 깔았다는 궁녀들의 증언에서 영감을 받은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작품이 있다. 그것을 보며 개인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불행했던 군주의 불면의 밤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석어당 대청마루에 앉아 미술가 이수경의 거대하고 찬란한 눈물방울 조각을 보며 궁중 여인들의 눈물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고궁의 내밀한 곳 가까이 들어가 그와 어우러진 현대미술을 통해 역사를 더듬는 편이 예전에 닫힌 전각을 돌면서 설명을 들었던 것보다 훨씬 와 닿는다. 그와 관련해 2010년 내한했던 장자크 아야공 당시 베르사유궁전 관장과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도 지낸 바 있는 아야공은 2008년부터 베르사유궁전에 현대미술 전시를 도입해 화제를 일으켰다. 게다가 미국 작가 제프 쿤스,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 등 고궁의 위엄과 대조적인 유머러스하고 톡톡 튀는 팝아티스트의 작품을 많이 전시했다. 올해에는 포르투갈 작가 조아나 바스콘셀로스가 전시 중이다.

왜 현대미술을 전시하느냐는 질문에 아야공은 이렇게 답했었다. “한 해 베르사유궁전 관람자 중 약 70%가 외국인 관광객이고, 정작 프랑스인은 언제든 갈 수 있다 생각만 하면서 가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미술 전시가 열리면서 국내 관람객 수가 크게 늘었다. 그리고 대개 고궁에 오는 사람들은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비교적 나이 든 세대가 많다. 현대미술 전시는 고궁에 젊은 세대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아야공의 생각에 모두가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쿤스와 무라카미의 전시 때는 루이 14세의 후손인 어느 귀족이 그의 선조에게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전시를 중단시키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이 기각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덕수궁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별로 반대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다. ‘창덕궁 달빛 기행’ ‘경복궁 경회루 연향’ 등 다른 고궁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늘 잠재하는 문화재 훼손과 ‘불경’에 대한 염려는 언제라도 이런 프로그램에 제동을 걸 수 있다. 2008년 숭례문 방화의 비극이 일어났을 때 문화재 개방 문제가 도마에 올랐었다. 또 유홍준 문화재청장 시절 고궁에서 만찬 행사를 연 것에 비난이 빗발쳤었다. 거기에는 화재 등의 우려뿐만 아니라 ‘불경죄’라는 생각이 많이 작용한 듯싶다. 일제가 조선 궁궐을 훼손하고 모욕한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궁 사용에 대해 민감한 편이다.

그에 대해 아야공 전 장관의 말을 다시 곱씹어보자. “물론 궁전은 주의 깊게 보존돼 후손에게 전해져야 한다. 그러나 궁전은 죽은 장소나 과거의 장소가 돼서는 안 된다. 살아 있는 문화가 그 안에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고궁이 재미있어진 적은 없었다. 숭례문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겠지만 이런 ‘열린 고궁’ 프로젝트가 멈추지 않고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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