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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애가라와 이구아수 폭포

30대 초반 운 좋게 세계 3대 폭포 중에 두 군데를 갈 기회가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있는 나이애가라는 거대한 물기둥이 통으로 쏟아져 내리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초당 5720㎥의 물이 떨어진다고 한다. 배를 타고 폭포 밑에까지 갈 수 있는데 우비를 입어도 온몸이 젖을 정도였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에 걸쳐 있는 이구아수(Iguazu) 폭포는 나이애가라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2.7㎞에 걸쳐 270개의 폭포가 크고 작은 물줄기를 내려보내고 있었다. 통으로 쏟아져 내리는 나이애가라와 달리 도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로 온 천지가 폭포인 것 같았다.

몇 년 동안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으며 마치 두 폭포만큼이나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위기는 빠른 시간에 확산되면서 총체적 위기로 다가왔다. 나이애가라의 큰 물기둥이 굉음을 내고 떨어지듯 그렇게 왔다. 그런 만큼 경제에 주는 충격이 컸지만 대응에 있어서는 큰 논란이 없을 정도로 방향이 자명했다. 큰 폭의 적자재정을 감수하면서 돈을 풀었고 금리를 대폭 낮췄다. 서민과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한편 일부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반면에 최근의 위기는 이구아수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큰 물기둥이 떨어져 단번에 타격을 주기보다는 여기저기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서서히 젖어드는 느낌이다. 큰 물줄기 중에는 유럽의 재정위기도 있고 중국 경제의 경착륙 위험 같은 것들도 있다. 이런 물줄기들은 다른 편으로 소비와 투자의 위축, 수출 감소와 가계부채의 증가와 같은 또 다른 물줄기를 만들고 있다. 서서히 젖어가면서 어려움과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고 위기는 자주 들락날락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의 경제위기가 이제까지 겪었던 위기들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 보니 대응에 있어서도 논란이 많다. 국채 발행을 통한 추경이나 적자재정 주장도 있고 하우스푸어 문제 해결을 위한 극단의 대책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나이애가라형 위기에서 통했던 방식이 이구아수형 위기 때도 적절한 것인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서히 적시면서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는 위기에서는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이거나 움츠러들 것이 아니라 긴 호흡의 대처가 필요하다. 국가재정을 튼튼히 하면서 경제 활력을 높이고 취약 계층에 대한 보호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바둑으로 치면 방어를 튼튼히 하면서 인내를 갖고 ‘두텁게 두는’ 것이다.

며칠 전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도 정부의 이런 고민을 담았다. 재정건전성 유지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를 조화시키기 위해 부심했다. 빚을 내서라도 돈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위기가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재정건전성에 방점을 두었다. 동시에 재정운용방식을 바꾸면서까지 쓸 수 있는 재원을 최대한 만들어 일자리 확충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한 경제활력 제고에 주력했다. 또한 촘촘한 맞춤형 복지와 성폭력, 학교폭력 근절 등 사회안전 강화에도 중점 지원하도록 했다.

당장의 위기 대처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있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고치는 것이다. 몸이 약하면 조금의 한기(寒氣)에도 감기에 걸리는 법이다. 우리 경제가 어떤 위기에도 버틸 수 있도록 경제체질을 다듬어야 한다.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내수 비중을 높이고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동시에 양극화와 사회갈등을 치유하고 사회적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이 과정이 위기대응보다 더 고통스럽고 힘들다. 기득권을 건드리는 개혁을 수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듣기 좋은 말보다 쓴소리, 아픈 이야기를 하면서 이 어려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리더십이 그래서 이 정치의 계절에 더욱 기다려진다.

우리 경제 체질을 바꾸지 않는 한 위기는 항상 진행형이다. 어느 정도 위기를 극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다음 위기는 곧 다시 올 준비를 하며 내연(內燃)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위기를 우리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고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위기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서서히 오랜 기간 우리 경제를 적시는 물줄기가 더 큰 위기라면 우리 속에 내재된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기록상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는 나이애가라가 아니라 이구아수다.



김동연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으로 금융위기 극복에 기여했고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으로 재정건전화를 주도했다. 미시간대 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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