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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분노’의 시대

지난 18일 오전 8시 무렵 중앙일보 베이징특파원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 하나가 날아들었다.
“이성적이고 질서 있게 애국심을 발휘해 주세요.”

이훈범의 세상탐사


베이징 공안당국이 시민들에게 보낸 것이었다. 이날은 만주사변 기념일이다. 81년 전 일본 관동군이 남만주 철도의 류타오후(柳條湖) 구간을 폭파하고 중국에 책임을 떠넘겨 전면전을 촉발한 날이었다. 예상대로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100개 넘는 도시에서 전후 최대의 반일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시위 규모만 늘었을 뿐 자동차가 불타고 유리창이 박살 나던 전날까지의 과격 양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자 그대로 베이징 시민들의 애국심이 ‘이성적이고 질서 있게 발휘’된 것이다.

다음날 같은 시간 무렵 또 하나의 문자 도착 알림이 울렸다.
“이성적으로 애국심을 발휘했으니 시위를 자제해 주세요.”
문자는 또 한번 현실이 된다. 그토록 소란스럽던 시위가 이날 아침 감쪽같이 종적을 감췄다. 현명한 베이징 시민들이 경이적인 자제력으로 분노를 이겨낸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의 일사불란함이나 관제시위 여부 따위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늘날 사람들의 분노가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는지가 내 관심이다. 특히 깡통 따듯 쉽게 꺼내져서 한 냄비(목표)에 담겨 부글부글 끓어오른 뒤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쉽게 버려지는 ‘인스턴트 분노’ 말이다.
중국을 예로 들었지만 그런 즉석 사용 가능 분노가 통제사회에서만 빚어지는 건 아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숱하게 보고 겪는 ‘XXX녀’ ‘○○○남’ 같은 인터넷 마녀사냥이 인스턴트 분노의 대명사다. 보는 이들이 공분하도록 꼭지 따고 꼬리 자른 사진 한 장, 동영상 하나가 일파만파 분노의 쓰나미를 일으킨다. 설령 나중에 마녀가 아니란 사실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때는 이미 대중의 분노가 쓰레기통에 던져진 이후다.

숭고한 동기라고 인스턴트 분노가 비켜가는 게 아니다. 베이징의 반일 시위와 마찬가지로 예지자 마호메트를 모욕한 영화에 열 받은 이슬람권의 반미시위 뒤에도, 정부의 긴축정책을 거부하는 남유럽 국민의 거리행진 뒤에도 인스턴트 분노의 텁텁한 화학조미료 맛이 들어있다. 학예회 수준의 조잡한 영화 하나와 미국 대사의 목숨을 바꾸는 거래나,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는 정부에 맞서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반달리즘이 달리 나올 수 없다.

이들 인스턴트 분노의 동력은 두말할 나위 없이 문자메시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그 힘은 때론-아니 흔하게-예상치 못한, 그래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얼마 전 네덜란드의 한 소도시에서 일어난 소동이 그런 경우다. 10대 여학생이 자신의 생일파티에 초대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전국에서 3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여학생의 생일을 축하하러 모인 그들은 이내 “도시를 쓸어 버리자”고 외치는 폭도로 변해 버렸다. 인구 1만8000명의 소도시는 약탈과 방화·파괴의 제물이 됐다.

인스턴트 음식의 애용자가 그렇듯, 인스턴트 분노 역시 젊은이들과 못 가진 자들의 것이다. 그러기에 그것의 부메랑 효과는 더욱 위험하고 거칠다. 독재자 카다피를 쫓아낸 무장세력들이 이제는 민주화의 장애물이 되고 있는 리비아의 역설이 그것을 웅변한다. 방향은 다르지만 중국 정부가 반일시위를 자제시킨 것도 그것이 자칫 반체제 시위로 확산되는 역풍을 우려한 것이다.

고성능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대의민주주의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시대다. 사람들은 자신의 대표를 통하기보다는 스마트폰에 대고 직접 의사를 표명하고 싶어한다. 그만큼 인스턴트 분노가 자라날 틈이 넓어진다는 얘기다. 지구촌이 앓는 시위의 몸살이 갈수록 격해지는 이유다.
지도자라는 사람들도 그들과 직접 소통을 못해서 안달이다. 권력의 하향 이동, 정보의 유비쿼터스란 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직접 소통의 문법을 모르고 섣불리 나서다가는 낭패를 겪기 십상이다. 대중의 다양한 의사와 견해가 어떻게 하나의 인스턴트 분노로 수렴될 수 있는지, 그것의 치명적 폭발을 막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12월 대선에 출마한 우리의 세 후보 중 누가 그걸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스마트폰은 상상도 못했겠지만 결국 마키아벨리의 생각도 그런 것이었을 터다. “지도자는 지옥으로 가는 길을 잘 알고 있어야 대중을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
이훈범 중앙일보 국제데스크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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