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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보다 언변?

저널리스트이지만 웬만한 심리학자 못지않은 데이비드 맥레이니는 착각의 심리학에서 개인과 집단 모두가 무의식 때문에 얼마나 불합리한 선택을 하는지 통렬히 보여준다. 21세기의 심리학자나 경제학자들처럼 눈에 보이는 실험과 통계를 내놓지는 않았지만, 분석심리학자 융은 이미 백 년 전에 집단무의식과 대중의 선택이 갖고 있는 양면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개인이나 집단 모두 선하면서 동시에 악하고, 똑똑하며 동시에 멍청할 수 있다.
모이면 뭔가 창조적인 것이 더 많이 나온다며 막연히 집단지성을 추앙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는 시간만 낭비하더라는 결과도 많다(회의 많은 조직의 비능률이란!). 물론 정보가 공유될 때 그 집단의 기술이 전반적으로 발달하는 면을 모두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보의 공유가 반드시 그 집단의 지혜를 보장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시민이 모이면 절대선을 구현하는 국가가 탄생할 수 있다는 헤겔과 프롤레타리아독재가 평등한 사회를 구현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마르크스, 다수결의 결정이 항상 최선의 선택이라는 낙천적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이들도 여전히 있다.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한편으로는 엘리트들에 의한 귀족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플라톤이나 엄청난 지혜를 갖고 있는 수퍼맨을 기다린 니체처럼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 우중(愚衆)을 계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사실 필리핀의 마르코스, 짐바브웨의 무가베, 우간다의 이디 아민, 리비아의 카다피 같은 독재자들이 오랫동안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라의 민도가 낮았기 때문일 수 있다. 미국에서도 예리해 보이는 고어 대신 말실수를 거듭한 부시가 이기고, 일본에서도 독도문제에서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노다가 총리로 있는 걸 보면, 선진국이라고 항상 똑똑한 것은 확실히 아니다.

민심이 천심이라곤 하나 역사 속의 대중은 엉뚱하고 파괴적인 길로 곧잘 들어서왔다. 5000만 명이 희생되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단순히 히틀러나 무솔리니 둘이 일으켰겠나.

선거로 국운을 결정해야 하는 대선의 해라 그런지, 이른바 ‘추석민심’에 관심이 많다. 그동안 한국인이 뽑았던 독재자들과 무능한 대통령들을 생각하면, 살짝 노파심부터 앞선다. 특히 민심의 바로미터인 지지율에 대해 마치 경마 중계하듯 실시간으로 기사가 올라오고, 사람들도 모이면 누가 될지 예측하기 바쁜데, 선거의 본 목적과는 거리가 먼 게 아닐까 싶다. 사지선다형 문제만 오랫동안 풀다 보니, 선거도 정답 찍는 것으로 착각하는 건 아닌지. 내 표가 사표(死票)가 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은 또 얼마나 위험한가. 누군가에게 몰표를 몰아주면, 브레이크 없는 무능한 정권을 만들 수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정책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게 급한 일인데도 골치 아프게 숫자와 통계를 들고 나와 정책을 꼼꼼하게 설명하면 대중은 금방 외면해 버린다. 일 잘하는 깐깐함보다는 웃는 모습과 목소리가 매력적이고 화려한 언변을 구사하는 이미지에 더 혹하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좀 부추긴다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비현실적 나르시시스트인지, 열린 마음으로 실무를 잘 챙길 수 있는 겸손한 일꾼인지 알아보는 현명한 대중이 존재해야 허균이나 토머스 모어가 꿈꾼 유토피아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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