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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주변의 부정·부패, 전산실 데이터로 막는다

지난해 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원도 태백시 보험사기 사건. 얼마든지 통원 치료 가능한 환자를 입원시키는 등의 수법으로 총 140억원에 달하는 보험금과 요양급여비를 받아낸 희대의 사기극이었다. 피해금액이 사상 최대일뿐더러 인구 5만 명의 지방 소도시에서 400여 명이 집단적으로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지난 5월 경남 창원에서도 유사 범죄가 재발했다. 피해금액이 100억원이었지만 가담자는 태백보다 훨씬 많은 1300여 명이었다.
두 사건 모두 서로 관련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공모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보험금을 타내려는 보험가입자와 수입을 늘리려는 보험설계사, 역시 돈벌이에 급급한 병원이 한 배에 탔다. 어떤 병원은 ‘나이롱 환자’를 소개한 브로커에게 수당을 지급하기도 했다. 어떻게 여러 사람이 연루된 범죄가 그토록 오랜 기간 드러나지 않았을까.

딜로이트 컨설팅 ‘포렌직’의 세계


기업 내부의 부정·불법 행위 적발, 이른바 포렌직(forensic) 업무가 까다로운 경우는 이처럼 회사 안팎의 이해관계자들이 치밀하게 공모할 때다. 조직적이고 치밀해 회사 장부나 증빙서류를 점검한다고 적발해 내기 어렵다. 회사 임직원(보험설계사)이 거래처(보험가입자·병원)와 짜고 업체의 과다 견적(입원기록 조작)에 근거해 상품을 매입하고(보험금 지급) 뒷돈을 받는 경우 회사 서류상으로는 나타나기 힘들다. 견적서와 세금계산서, 은행 거래, 회계처리 내역이 모두 일치하기 때문이다. 답은 데이터 분석에 있다.

포렌직 업무의 효율성도 기업 경쟁력
기업부정 적발에 쓰이는 대표적 데이터 분석 기법은 ‘사회관계망 분석(Social Network Analysis·SNA)’이다. 임직원 주변의 인적 네트워크와 정보 교류를 분석해 직원과 외부관계자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직원의 거래처별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각각의 주소·전화번호·거래은행 등 정보와 주고받은 사내 e-메일·메신저 내용을 살펴보는 식으로 ‘관계’를 추적한다. 임직원과 거래처의 이해가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그 개연성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비리 규명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내부 감사 때 이런 분석작업을 하거나, 이런 모니터링을 정기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임직원들이 알기만 해도 공모에 의한 부정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데이터 분석이 실효를 거두려면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매입·매출·인사 등 기업활동 주기를 선별적으로 조사한 뒤 이를 재무 데이터처럼 일정한 양식과 속성을 갖춘 이른바 정형(定型) 데이터와 연계한다. 여기에 e-메일·메신저나 이미지 파일 등 비정형 데이터 분석을 가미하면 부정행위 패턴의 윤곽이 드러난다. 직원과 공급처·고객 간에 특수관계가 있는지, 허위 지불이나 리베이트, 잠재적 이해 상충이 있는지 규명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비정형 데이터다. 무수한 비정형 데이터가 도처에 산재한 빅데이터 시대에 기업경영을 위협하는 요소는 재무제표나 획일화된 거래 데이터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정형화된 데이터에 근거한 분석 기법은 한계에 부닥쳤다. 기업이 생산하는 데이터는 비정형 데이터가 80~90%로 압도적으로 많다. 따라서 선택과 집중은 필수적이다. 가령 부정을 의심할 만한 요소를 지수화하는 방식이 흔히 쓰인다.

현실적으로는 ‘거짓 양성’과 ‘거짓 음성’을 초기 단계에서 얼마나 많이 가려내는지가 중요하다. 거짓 양성이란 실제론 부정이 아닌데 부정으로 판정되는 것이고, 거짓 음성은 실제 부정인데 부정이 아닌 것으로 판정되는 것을 뜻한다. 비정형 데이터에 대한 구문 분석, 그리고 종업원-고객-거래처 간 관계 분석, 거주지나 활동 장소 등에 대한 위치기반 분석 등을 분석하고 이를 수학·통계학 예측 모델링에 적절하게 결합시킨다.

1600만건 분석해 과다 서비스 청구 해결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경기가 바닥권이던 2009년. 세계 굴지의 완성차 업체 F사는 자동차 보증수리가 쇄도해 그 비용 급증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청구를 심사하는 직원이 일일이 각각의 청구 내용을 검토하다 보니 과도한 청구를 신속히 걸러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자동차 정비업체와 자동차 소유주가 작당한 조직적 사기 청구를 막기 힘들었다.

이때 고심 끝에 도입한 것이 데이터 분석 및 예측 모델링 기법이다. 접수한 청구 데이터와 정비업체 감사자료, 신용평가 보고서 등 기존의 정형 데이터를 분석하고 관련자들의 주소지, e-메일 내용 등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추가했다. 분석에 동원된 데이터만 모두 1600만 건에 달했다. 결과는 놀랄 만했다. 기존에 파악하지 못했던 사기 청구 유형을 다섯 가지로 체계화하고, 이를 통해 연간 615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게 됐다.

딜로이트가 최근 미국의 한 보험사를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데이터 분석과 예측 모델링을 통해 비용을 연간 4~8%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기 청구 적발 건수 역시 5~10% 늘었다. 이를테면 보상신고 접수 시점과 손해액과의 연관성을 분석해 보상심사를 면밀히 수행할 필요가 있는 청구 건에 대해 경험 있는 손해사정사를 우선적으로 배치하는 식이다. 초기단계에서부터 사기 가능성이 큰 건을 미리 인지하는 예측 모델링 기법을 회사의 보험사기 적발 시스템에 탑재해 조사의 효율성을 높였다.

서두에 예시한 국내 보험사기 두 건은 모두 4년 넘게 은밀히 자행됐다. 누군가의 제보가 없었다면 더 오랫동안 묻힐 수 있었다. 미국 부정조사인협회가 발간하는 부정 통계자료에 따르면 부정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평균 18개월이 걸렸다. 공모 가능성이 큰 허위·과장 보험청구는 평균 2년 걸렸다. 부정 적발에는 여전히 내부고발자 등의 제보가 결정적이지만 그렇다고 제보만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글로벌 규제 강화 추세로 기업 입장에서는 부정·불법 행위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금전적 손실은 물론 당국의 제재로 인한 피해, 이미지 실추에 따른 매출 하락 등 2차, 3차 손실까지 떠안아야 한다. 본사는 물론 해외 자회사들의 준법 현황도 감시해야 한다.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실효성 있는 부정 예방·적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포렌직 기업 활동과 관련해 발생하는 다양한 부정·불법 행위를 적발하거나 사전에 예방하는 업무. 감사나 경영진단을 포함해 기업 관련 부패를 줄이고 투명성을 높이는 업무를 뜻한다.



백철호 영국 버킹엄 대학 석사, 1996년부터 딜로이트에서 기업 조사분석, 2007∼2009년 미국 딜로이트 포렌직센터 뉴욕 사무실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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