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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步一生 1만 계단…화산 짐꾼의 아찔한 신

1 산시(陝西)성 화산(華山)의 서봉(해발 2086m)으로 올라가는 길. 용의 등을 밟고 올라가는 것과 같다 해서 화산 반용(攀龍)이라고 불린다. 원 안은 화산에 새겨진 1만여 개의 돌계단. 2 화산의 주인공 짐꾼들의 모습. 무게 50~60㎏의 짐을 다양한 방법으로 산정까지 메고 가는데 마치 무술 고수의 ‘신공(神功)’을 보는 것 같다. 왼쪽부터 첫째와 둘째는 마치 시소를 메듯 목재와 철근을 어깨에 메고 가는 ‘시소 신공’, 셋째는 저울을 메고 가듯 장대 양쪽에 보따리 짐을 싣고 가는 ‘저울 신공’, 넷째는 물건을 많이 실을 수 있도록 위의 입구가 버섯처럼 넓은 질통을 지고 가는 ‘버섯 신공’.
산시(陝西)성 화산(華山)의 동봉에선 황토고원이 잘 보인다. 실눈으로 보면 갑자기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휙 도는 것처럼 황허(黃河)의 물줄기가 꺾이는 것까지 보인다. 대하(大河)치고는 기구하다. 칭하이(靑海)성 산속 호수에서 출발해 동진→북진→동진→남진→동진 등 네 번이나 꺾인 뒤 발해만으로 들어간다. 중국에서는 붓으로 ‘범(凡)’자를 대륙에 휘갈긴 형상으로 황허의 물길을 묘사한다(가운데 점만 빼고).

황허는 내몽고에서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타이싱(太行)산맥의 수비에 막혀 ‘ㄱ’ 자를 그리며 남하한다. 그렇게 1000㎞ 가까이 순항하다가 동서를 가로지르는 친링산맥에 다시 가로막혀 ‘ㄴ’자로 휘도는데, 동봉은 이 마지막 휨과 관중평원을 품에 안은 황토고원, 그리고 황하에 합류하기 직전의 위수와 낙수가 보이는 인문지리 명당이다. 해발 400m의 평지에서 우뚝 솟은 2096m 고봉이어서 1700m의 고도 차이를 넓은 시계(視界)로 실현한다. 마침 날이 맑아서 뭉게구름 넘어서도 망망한 대지가 보일 듯하다.

통일중국의 개국공신, 황토고원과 황허
황허는 이후 동쪽으로 달리면서 친링산맥과 대지를 협공해서 케이크를 짜부라뜨리듯 긴 협곡을 만드는데, 그 유명한 한구관(函谷關)과 퉁관(潼關)이 이 협곡의 관문들이다. 한구관 서쪽은 관중평원이고 동쪽은 화북평원이다. 관중평원에서 땅 따먹기를 한다면 한 사람의 몫이 될 것 같다. 나눌 수 있는 지리적 장벽이 없다. 그래서 하나의 나라가 되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작지 않은 크기의 나라일 텐데 한구관만 넘으면 또 다른 평원이 있다. 군침을 흘리면서 관문을 넘어가 화북평원까지 차지하고 나면 이 대국은 진공청소기처럼 군소 국가들을 빨아들인다.

양대 평원의 자산이라면 중국 어느 곳이든 원정하고, 흡인할 수 있는 자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화북평원을 차지한 쪽도 유혹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여서 『삼국지연의』에서 보듯이 역사적으로 관중평원을 차지하려고 그렇게들 용을 쓴 것이다. 양대 평원 간의 전쟁과 양대 평원을 모두 따먹으려는 북방민족의 남하가 끊이지 않으면서 수많은 피난민을 양자강 이남으로 밀어내 중국의 남쪽을 식민지로 삼고 한화(漢化)하는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이것이 화산에서 본, 중국이 통일제국이 될 수밖에 없는 지형적인 배경이다. 만약 중국도 유럽처럼 알프스산맥에서 흘러내린 강들의 물줄기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교통의 흐름을 교란했다면 같은 평원에 있어도 단일한 영토의식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황허가 고단하지만 그래도 엇나가지 않고 끝내 동진의 흐름을 지켜준 탓에 중국인들은 같은 방향의식과 영토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 통일 중국의 양대 개국공신은 황토고원과 황허다.

나라가 크다고 사는 사람들의 행복도 큰 것은 아니다. 화산에 와 보면 안다. 중국의 오악(五嶽) 중 가장 험한 이 산에 와서도 줄을 서야 한다. 명대의 화가 왕뤼(王履)는 “나는 마음을 따르고, 마음은 눈을 따르며, 눈은 화산을 따른다(吾師心, 心師目, 目師華山)”고 읊었는데 화산에서는 줄을 따라야 한다. 사진이 잘 나오는 지점에는 발 디딜 틈 없다. 비켜 달라고 ‘익스큐즈 미’를 외치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내가 외국인인 줄 어떻게 알았지?’ 약자인 것처럼 가냘프게 해서 양보를 압박하는 그 목소리가 싫다. 새치기가 불가능한 바위 틈새 길에서도 멈칫 하는 사이 파고드는 사람들의 행렬. 내겐 중국의 줄서기에 대한 공포가 있다. 4년 전 후난(湖南)성 창사(長沙) 공항의 입국장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옆으로 새로운 줄이 계속 생겨나더니 입국장의 문이 열리자 대오가 무너져버렸다. 앞에 있는 사람들만 통과했을 뿐인데 공안은 입국장을 닫아버렸다. 서울에서 버스를 탈 때 나름의 위치선정이나 순발력이 좋다고 자신해 왔는데 졸지에 낙오자가 되고 말았다.

‘저 줄은 아니에요.’ ‘저 사람들은 우리보다 뒤에 온 사람들이에요.’ 이런 외침을 듣지 못했다. 중국에서 줄의 권위는 미약하다. 이럴 때 중국은 서로 모르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더기일 뿐이다. 모르는 사람에 대한 신뢰의 정도가 시민의식을 결정한다면 중국인들은 모르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쪽이다.

국(國)과 가(家)로 이뤄진 ‘국가’라는 한자가 시사적이다. 린위탕(林語堂)은 “중국엔 원래 나라와 가족밖에 없고 사회라는 관념이 없었다”고 말했다. 영어의 ‘society’를 번역한 일본식 한자인 사회(社會)는 수입했지만 시민의식(public mind)은 수입하지 않았다. 가족을 돌보거나 국가에 충성할 뿐이다. 이중톈(易中天)은 “서양이 그리스 시대와 같은 도시국가 시대를 거쳐온 것과 달리 중국은 씨족제도가 감쪽같이 국가제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서로 알아서 줄을 지키는 문화가 없다면 강력한 권위에 의존해 무질서를 막을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공안의 힘, 나아가 공산당의 일당 지배가 수용되는 기저에는 이런 집단심리가 있다. 국민은 관광객들이다. 서로 밀고 밀치고 올라가 경치를 한번 보고 떠날 뿐이지, 질서를 세우거나 바꾸는 주체라고 생각지 않는다.

시소 신공, 저울 신공, 버섯 신공…
화산은 기암괴석이 즐비하지만 사실 길이 20㎞, 너비 7.5㎞, 높이 2155m로 이뤄진 한 덩어리의 화강암이다. 이 화강암을 산 밑에서부터 최고봉인 남봉의 정상까지 일일이 쪼아서 지퍼처럼 촘촘하게 1만여 개의 돌계단을 새겨 넣었다. 만리장성급 대역사는 아니지만 대국의 동원체계가 아니었으면 엄두 못낼 일이다. 생고생해서 계단을 만들어 놓으니 관광객들이 올라가고, 그들을 먹이기 위한 식료품을 메고 짐꾼들이 올라간다. 철근·시멘트·목재도 메고 간다.

예전에는 중국 무협소설에서 5대 문파 중 하나로 꼽히는 화산파의 검술이 화산을 대표하는 무공이었다고 하면 지금은 짐꾼들의 노동이 화산을 대표하는 신공이다. 목재와 철근처럼 가늘고 긴 짐을, 달랑 수건 한 장 덮은 한쪽 어깨에 얹어 마치 시소를 메고 가는 것 같은 ‘시소 신공’. 보따리 두개를 장대 양쪽 끝에 매달아 마치 저울을 지고 가는 것 같은 ‘저울 신공’. 버섯처럼 아래는 좁고 위는 넓은 질통을 메고 지팡이 짚으면서 올라가는 ‘버섯 신공’. 평지도 아니고 헛디디면 천길 아래로 떨어지는 외길을 시계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올라간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보일 정도이니 처음에는 말 붙이기가 저어됐다.

하지만 몇 번 마주친 뒤 가만히 들어보니 노동요를 부른다. 익숙하고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말을 붙여보니 대답도 시원시원하다. 숱한 질문을 받아본 것 같다. 짐은 60㎏ 정도고 모든 것을 저울로 달아서 계산하는 중국답게 보수는 1㎏당 0.8 위안(약 150원)을 받는다. 하루 두 번 오르내린다. 내려갈 때 쓰레기를 가져가기 때문에 하루에 120위안(약 2만원)도 벌 수 있다. 그들에게 허톈우(何天武)씨의 근황을 물으니 빙그레 웃으며 오늘도 산에 올랐을 것이라고 했다.

화산 짐꾼계의 지존 허씨는 한 팔 없이 질통을 멘다. 그의 사연은 여러 차례 방영돼 중국인들을 감동시켰고 우리나라에서도 EBS ‘극한직업’에서 소개된 바 있다. 올해 50세인 그는 20여 년 전 병사한 부인이 남긴 빚을 갚고 아이 둘을 키우기 위해 탄광에서 일하다 왼팔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보상금으로 고작 4200위안(80만원)을 받고 쫓겨난 뒤 그나마 반은 소매치기 당하고 농사를 짓다가 다시 홍수로 농작물을 유실당하는 재해를 입었다. 그래도 구걸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는 화산에서 벌써 12년을 보냈다.

일보일생(一步一生). 한 발 한 발에 목숨 거는 이들의 분투는 놀러 온 사람들을 미안하게 한다. 화산은 경치를 완상하는 것보다 사회의 구성원에 대한 예의를 깨닫는 교훈적인 산으로 변모한다. 짐꾼들은 스스로 비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탄광 속 갱도에서 일하는 것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일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노동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줄을 안 지키는 관광객조차도 격려하고 먼저 올라가라고 길을 비켜준다. 이렇게만 돌아간다면 괜찮은 사회다. 노동의 신성함과 정직한 땀을 인정해 주는 사회. 산 밑의 중국은 그런 사회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허씨에게는 다른 꿈이 있다. 5000m 장애인 달리기 대회에서 우승,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겠다는 것. 메달을 따기 전까지는 언론의 인터뷰를 사양하겠다고 한다. 몸으로 보여준다는 건 이럴 때 쓰는 표현이다. 하루 쉬었던 페달을 다시 밟는다.




홍은택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는 등 14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NHN 부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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