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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라스트펀치' 움직이는 30대女 "남편은…"

코브라 헬기 조종석에서 이륙을 준비 중인 박혜숙 대위.




[사람 속으로] 공격헬기 코브라 여성 조종사 박혜숙 대위

두두두두~.



 수도권에 자리 잡고 있는 한 헬기 부대에 굉음을 울리며 코브라 헬기가 들어온다. 주변을 날려버릴 것만 같은 바람을 일으키며, 양옆엔 토우 미사일과 로켓포를 달고, 조종석 아래엔 20㎜ 기관포를 장착하고 있다. 계류장에 착륙한 코브라 헬기의 앞자리에서(코브라 헬기는 조종사 두 명이 앞뒤로 앉는다) 1m60㎝도 안 돼 보이는 앳된 얼굴의 단발머리 여성이 내린다. 양손에 헬멧 가방과 임무수행 가방을 들고 당당히 걸어나오는 주인공은 바로 여성 공격헬기 조종사 박혜숙(32) 대위였다.



 공격헬기는 육군의 ‘라스트 펀치’로 통한다. 뛰어난 기동성으로 정찰은 물론, 유사시 치명적인 벌침을 발사하는 육군의 ‘트랜스포머’다. 1.5㎞ 거리에서 창문을 명중시킬 정도의 정교함을 가진 20㎜ 기관포 한 발은 수류탄 한 발과 맞먹는다. 이런 무시무시한 쇳덩이가 이 여린 여성의 손가락 끝에서 움직인다. 2009년 헬기 조종사가 된 박 대위는 500MD를 개조한 공격헬기를 조종하다 지난 3월부터 코브라 헬기의 조종간을 잡고 있다. 두 명의 여성 공격헬기 조종사 중 선임이다. 그는 헬기 조종사 양성 과정을 “빡세다”는 말로, 공격헬기의 매력을 “짜릿함”이란 말 한마디로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왜 군인의 길을 택했나.



 “32년 동안 군 생활을 하시고 대령으로 전역하신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에게서 군대 문화가 ‘정직한 문화’라는 인상을 받았고, 고등학교 때부터 군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군간호사관학교에 가려고 응시했는데 낙방해 대학에서 4년 공부하고 나서야 군에 왔다. 아이들을 좋아했고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할 생각에 아동복지학(숙명여대)을 전공했는데 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결국 여군 장교에 지원하게 됐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자식 이기는 부모 있나.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아버지가 군 생활하시는 동안 30번 넘게 이사를 했다. 딸이 그처럼 힘들게 사는 걸 바라지 않으셨다. 다행히 아버지는 찬성하셨다. 형제가 딸만 넷인데 아버지는 그중 한 명쯤은 군인이 되길 바라셨던 거다. 간호사관학교에 떨어지고 일반 대학에 갔을 때 꿈을 접었다고 생각하셨을 텐데, 대학 졸업하며 다시 말씀드리자 어머니도 이해를 하셨다.”



●여성으로 헬기에 관심을 갖는 게 평범하진 않아 보인다. 계기가 뭔가.



 “1997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전도사로 계셨던 교회에 매주 다녔다. 매번 교회 지붕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곤 했는데 근처에 공격헬기 기지가 있었다. 이착륙하는 헬기가 너무도 멋졌다. 그때 ‘나중에 저걸 꼭 몰고 말 거야’란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군인이 돼 필수 코스인 소대장을 마친 뒤 주저하지 않고 보병에서 항공으로 병과를 옮겼다. 처음 도전에선 필기시험 1등을 했지만 기량이 모자랐는지 낙방을 했다. 두 번째 도전에 성공해 500MD 헬기를 거쳐 지난 3월 코브라 헬기 조종간을 잡게 됐다. 운명이랄까. 공교롭게도 헬기의 매력을 느끼게 했던 교회 주변의 기지에 배치받았다. 공격헬기 조종사를 꿈꾼 지 꼭 15년 만이다.”



 박 대위가 근무 중인 항공대 준사관(준위)들은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가 헬기 조종사를 꿈꾸던 소녀 시절 교회에 함께 다녔던 사람들이다. 장교들과 달리 헬기 조종을 전문으로 하는 준위들은 부대 이동이 많지 않다. 이 부대에 근무 중인 한 헬기 조종사(준위)는 “박 대위가 군복을 입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13년을 이곳에서 근무 중인데 어느 날 갑자기 이마에 장교 계급장을 달고 와서 군기를 잡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군인이 되기 위해 간호사관학교에 낙방하고, 헬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또 한 차례 고배를 마셨다. 대상은 달랐지만 삼수 만에 꿈을 이룬 셈이다. 전차를 담당하는 기갑부대 출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군인이 됐고, 결국 ‘전차 킬러’인 공격헬기 조종간을 잡게 됐으니 부녀가 묘한 인연으로 얽혔다. 가냘픈 체구의 박 대위에게 국방색 원피스 조종복은 일반 여대생들의 멋내기 패션쯤으로, 귀여운 액세서리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군대 얘기가 나오자 그의 목소리 톤이 불쑥 올라가고 눈빛이 번쩍이며 ‘천상 군인’으로 변했다.



●처음 헬기를 타고 하늘을 날았을 때 무섭지 않았나.



 “교관 조종사 옆자리에 앉아 침투 비행훈련을 했다. 교관 조종사가 고도에 적응하는지 보려고 일부러 급상승과 급강하를 되풀이했다. 급강하 때 너무 신나 ‘야호’ 소리를 질렀다. 어떤 사람들은 매스꺼워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너무 흥분이 됐다. 역시 선택을 잘했고, 이게 내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무거운 항공기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으니(웃음).”



●조종사 양성 과정도 만만찮을 텐데.



 “36주간 양성 과정을 거쳤다. 최종 선발된 10명의 예비 조종사들이 훈련을 받았다. 여성은 나 혼자였다. 임신했을 때를 제외하곤 모두 체력검정(3㎞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특급을 받을 정도로 남자 군인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공간감각이 좀 뒤처졌다. 여자여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좀 떨어진 것 같다. 여성 조종사들도 공간감각이 뛰어난 이들이 많다. 4~6주 간격으로 반복되는 평가를 준비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감각을 익히기 위해 밥도 먹지 않고 시뮬레이터를 타거나 시동이 걸리지 않은 헬기(500MD)에 올라타 이미지 트레이닝을 계속했다. 비행하다 교관 조종사의 지적을 받고 혼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면 밥이 넘어가지 않았고, 그럴수록 개인훈련에 더 매진했다. 누구나 그렇게 하긴 했겠지만 숙소 벽에 계기판을 그려놓는가 하면 천장에 헬기 항로를 야광 별로 표시해놓고 매일 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조종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곤 했다.”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나.



 “(손사래를 치며) 전혀 없다. 그 정도는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꿈을 이루지 않았나. 남편도 그곳에서 만났으니 후회할 일이 어디 있겠나. 다만 아이를 보며 흔들린 적은 있다. 15개월 된 딸이 있는데 근무 시간에는 언니가 봐준다. 가끔씩 아이가 짜증을 낼 때 ‘엄마가 필요할 때 옆에 없어서 그런가’라는 생각을 하며 휴직서를 들고 제출할까 말까 고민한 적도 있다. 앞으로도 그런 고민을 할 수는 있을 거다. 그런데 다행히도 잘 크고 있으니, 헬기 조종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남편도 군인이란 말인가.



 “남편도 헬기 조종사다. 한 해 후배인데 조종사 선발시험에 같은 해 합격했으니 교육 동기인 셈이다. 양성 교육을 받는 동안 남편은 타고난 조종 실력을 보였다. 여성이 나 혼자였으니 교관이 그 사람의 실력을 인정해 내게 도와주도록 했다. 비행을 마치고 양손에 배낭을 들고 걸으면 뒤따라오다가 아무 말 없이 내 배낭을 들어주곤 했다. 그러던 중 교육을 마칠 즈음 기종 결정을 할 때 우연히 그 사람이 교관과 얘기하는 걸 듣게 됐다. 난 코브라를 몰고 싶었지만 수송헬기인 UH-1H를 모는 것으로 배정을 받았다. 그는 누구나 원하는 UH-60을 몰게 됐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UH-1H를 몰면 코브라에 배정된 인원 중 한 명을 UH-60으로 보내고 그 자리에 나를 배정해 주면 안 되느냐는 얘기였다. 눈물이 나더라. 내게 사심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따로 불러 ‘야, 너 나 좋아하냐’고 다짜고짜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라. 그렇게 운명이 시작된 것이다.”



●공격헬기를 몰면 남편이 걱정하지 않나.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군인은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한다. 적의 총알이 여자라고 피해가진 않는다. 그러나 적을 눈앞에서 보고 직접 타격하는 짜릿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다. 남편과 떨어져 생활하는 게 힘들긴 하다. 정상적인 가정은 아니니까. 하지만 만나거나 전화할 때 항상 헬기 얘기를 하고 조언을 해준다.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전투기든 헬기든, 조종사들의 컨디션은 곧바로 사고로 이어진다. 전날 밤 좋지 않은 꿈을 꿔도 조종간을 잡지 않는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엔 비행거부 사유계를 작성해 제출하면 비행에서 제외한다. 매일 아침 엄격한 건강 체크는 필수다. 체크 목록은 수면·음주·투약과 정서·심리·총평 등을 본인이 가나다로 정리한다. 그만큼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 고된 직업이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비가 올 때를 제외하고 매일 비행을 한다. 새벽 3~4시에 비상이 걸려 헬기 시동을 걸었던 경우도 허다하다. 통상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서 7시50분에 각자 하루 예정된 훈련 계획을 대대장에게 보고한다. 그러면서 연구 상태, 비상발생 시 대처 절차, 임무 수행 지역에 대한 위험 요소 등도 점검받는다. 8시에 전 간부들이 모여 체조를 하고 건강 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한 뒤 30~40분간 항공기 점검을 마치면 시동을 걸고 임무에 들어간다. 임무를 마치면 작전 지역에 새로 생긴 위험 요소를 보고한다. 고압선이나 철탑 등이 대상이다. 작전 지역은 눈 감고도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꼼꼼히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오후 4시부터 5시까지는 체력훈련을 한다.”



 그는 ‘여성’ 헬기 조종사가 아니라 ‘군인’으로 봐달라고 했다. 군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조종사가 된 것이라고 말하는 ‘뼛속까지 조종사’였다. 여성이라 불편한 점도, 힘든 점도 아직은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예전엔 눈치를 보며 가야 했던 보건휴가도 제도화되고 성희롱 같은 어려움도 없어졌다고 했다. 다만 우리 군의 전력 강화를 위한 대형 공격헬기 도입에 대해선 몇 차례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개인의 꿈이자 확실한 ‘라스트 펀치’를 갖춰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앞으로의 꿈은.



 “대형 공격헬기가 도입된다면 그곳에서 대대장을 하고 싶다. 물론 내가 노력해서 자격과 능력을 갖추는 게 먼저이긴 하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보며 군인의 꿈을 키웠다는 지금의 대대장(김종필 중령)을 보며 나도 저런 대대장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부대원들과 호흡하며 신바람 나는 군대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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