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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사연에 취해 '힐링로드' 걷다보니…






















가을길은 어딜 가나 좋다. 바람·볕·공기가 좋고, 거기에 꽃길이라면 금상첨화다. 지난 9일 강원도 태백 두문동재(1268m)에서 금대봉(1418m), 분주령 너머 대덕산(1307m)까지 걸었다. 단풍 들 때까지 야생화가 있는 길이다. 이름 모를 들꽃을 힐끗 보고 지나치면 영영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생태해설사를 찾았다. 태백의 오지를 40년 넘게 돌아다닌 ‘산 지킴이’ 김부래(70)씨는 이 길의 터줏대감이다. 서너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약 9㎞의 길을 야생화 선생의 ‘8교시 수업’을 듣느라 꼬박 8시간 걸었다.

 금상첨화의 길을 남자들만 걷기엔 금대봉 산신령에 대한 예의가 아닐 성싶어 ‘짝’을 맞췄다. 이정화(38)·김은숙(37)씨는 2007년 등산학교에서 만난 친구 사이로 산행보다는 산행 후 약주에 더 욕심을 내는 ‘정통 산꾼’이다.

 8일 오후 석양 무렵 두문동재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정선으로 내려가는 도깨비도로 옆 너덜샘 공터에서 야영했다. 밤새 텐트를 날려 버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지만 덕분에 너른 공터를 독차지할 수 있었다. 달빛·별빛 한 점 새어 나오지 않는 먹먹한 하늘 아래로 백두대간 능선이 선명한 실루엣을 긋고 있었다. 산 너머엔 분명 숲의 정령이 있으리라.

 두문동재에서 시계 방향으로 대덕산을 휘감아 도는 4.2㎢가 1993년 환경부가 생태계 경관보전지역으로 정한 곳이다. 우리 산하 중 가장 좁은 지역에 가장 많은 멸종위기 식물과 희귀 식물이 분포하는 지역이다. 김부래씨는 20여 년 전부터 이 일대의 동식물들을 모니터링한 뒤 매달 한 차례씩 보고서를 내고 있다.

 이튿날 오전 8시 두문동재에 집결했다. 꼭두새벽도 아닌데 두문동재를 지키는 관리사무소엔 아무도 없다. “여기는 주중엔 등산객이 거의 안 다녀요. 주말엔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관광버스가 사람들을 퍼놓지요. 그러면 달리기하듯 대덕산까지 가요. 점심 먹고 내려가서 검룡소 구경하고 다시 버스 타고 집으로 가지요.” 김씨의 첫 설명이다. 산 정상을 수집하듯 다니는 사람들에게 들꽃은 사진 촬영의 배경일 뿐이다. 덕분에 이른 오전 두문동재에 들어서면 이 산의 야생화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셈이다.

 금대봉 오르는 능선은 불바래기길로 불린다. 화전민들이 불을 놓고 이곳에서 불이 올라가는 방향을 가늠했던 곳이란다. 불 놓고 산 너머에서 관망했다는 옛사람들의 두둑한 배짱이 부럽다.

들꽃 이름 하나하나 새기며


 무릎 높이의 키에 대롱대롱 매달린 보랏빛 꽃이 길 양편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요게 보통 투구꽃이라고 알고 있는 그늘돌쩌귀예요. 예쁘다고 따먹지 마세요. 입안이 싸해집니다. 그늘돌쩌귀 뿌리는 예전엔 사약의 재료로 쓰였다고 해요.” 하지 말라는 것은 왠지 더 하고 싶은 개구쟁이처럼 보랏빛 투구에 눈길이 갔지만 ‘선생님’의 엄한 훈시에 단념했다. 이때부터 우리는 김씨를 선생님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늘돌쩌귀가 가을 금대봉의 반가운 손님이라면 개쑥부쟁이는 이 길의 주인 격이다. 어딜 가나 지천에 개쑥부쟁이가 자리 잡았다.

 “예전에는 대장장이를 불쟁이라고 했어요. 그 불쟁이 집에 딸이 셋 있었대요. 먹을 게 없는 시절이니까 큰딸이 산에 가서 쑥을 뜯어다가 동생들한테 먹였어요. 불쟁이 집의 쑥 뜯는 아이, 갸 이름이 쑥부쟁이야. 갸가 죽은 자리에서 난 꽃이 이 쑥부쟁이래요.” 책에 있는 내용인지 전설인지. 그래서 “식물도감에 있는 얘기냐”고 물었다. “뭔 소리야. 내가 지어낸 얘기지. 책에 있는 내용으로만 하면 재미없잖아, 허허.” 보통 들에 핀 국화과의 쑥부쟁이가 개쑥부쟁이다. 꽃잎이 작은 편이다.

 또 하나의 보랏빛 꽃, 각시서덜취의 미모도 손색없다. 무수히 많은 보들보들한 꽃술이 바늘처럼 튀어나와 있다. ‘각시’가 들어간 이름이라 뭔가 사연이 있는 꽃이거니 은근한 기대를 했지만 선생님은 “그런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선생님은 미인선발대회 사회자처럼 신이 나서 야생화 소개를 이어 갔다. 손으로 짚어 주며 설명하니 귀에 쏙쏙 들어온다. 개쑥부쟁이를 닮은 국화과의 벌개미취, 꿩이 앉은 것처럼 앙증맞은 진교, 청룡언월도 같은 작은 잎이 매달린 도둑놈의갈고리, 곤드레로 잘 알려진 고려엉겅퀴, 노란 꽃이 탐스럽게 매달린 국화과의 조밥나물, 작은 열매가 달린 오이풀, 아주 작은 꽃잎이 팝꽃처럼 매달린 마타리, 여러 개의 밥풀이 붙어 있는 모양새의 쇠며느리밥풀….

 쇠며느리밥풀은 해독과 해열에 좋다고 하니 행여나 그늘돌쩌귀를 먹고 배가 아프면 ‘이 꽃을 얼른 따먹으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밥풀은 쇠며느리밥풀을 비롯해 꽃며느리밥풀·털며느리밥풀 등 8종이나 있다고 한다. 이쯤 되니 꽃 이름을 헤아리다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래서 선생님께 정리를 부탁했다. 금대봉 대표 가을꽃은 그늘돌쩌귀·개미취·조밥나물·개쑥부쟁이·각시서덜취란다. 5형제만은 꼭 기억해 둬야겠다.

금대봉은 야생화의 향연

 금대봉은 펑퍼짐한 산이다. 북서쪽 스키장과 민둥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동으로 펼쳐지는 백두대간 능선은 키 큰 잡목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금대봉을 내려가면 트레킹 구간에서 첫손에 꼽히는 야생화 군락을 만난다. 역시 쑥부쟁이 집안의 꽃들이 우세하다. 그중 선생님이 잡풀이 뒤섞여 있는 줄기를 가리키며 “저 꽃이 며느리밑씻개”라고 일렀다. 며느리밑씻개? 허리를 숙여 들여다보니 작은 줄기에 장미처럼 가시가 돋아 있다. 선생님은 “며느리가 얼마나 미웠으면 가시 돋친 줄기로 밑을 씻게 했을까.” 그제야 이름이 이해가 갔다. 이름을 붙인 식물학자의 집안이 평탄치 못했나 보다.

 금대봉을 내려오면 오르막 내리막 능선이 이어진다. 고목나무샘은 한강 발원지 중 하나로 큰 신갈나무 아래 작은 샘이 나있다. 울창한 숲이 주는 포근함이 있다. 샘을 지나면 벌밭 등으로 불리는 능선이다. 금대봉과 분주령 사이, 꽃길의 중간으로 벌을 치던 곳이다. 비 온 뒤의 능선은 미끄러웠다. “나무 뿌리가 밖으로 나와 있어 이걸 밟으면 미끄러지기 십상이에요. 올해만 여기서 2명이나 실려 나갔어요.” 선생님은 어디서 어떤 사고가 났는지까지 훤히 알고 있었다.

 능선을 내려오면 일본이깔나무(일본잎갈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삼림지대가 나온다. 바닥에 깻잎 같은 혹쐐기풀 잎이 무성하게 돋았다. 잎갈나무는 편백나무 못지않게 피톤치드(Phyton Cide·식물이 만들어 내는 살균물질)를 많이 분비하는 침엽수로 대개 이런 나무 밑은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혹쐐기풀은 피톤치드를 이기는 식물로 잎 끝에 주아(珠芽)가 달려 있다.

 두문동재에서 분주령까지는 약 4.8㎞. 평탄한 길이라 2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길을 우리는 4시간 걸었다. 들꽃 향에 취해, 잎갈나무 향기에 취해 흐느적거리듯 온 셈이다. 고갯마루는 각시서덜취와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붉은 억새가 장관이다. 우리는 잎갈나무 아래 풀밭에 널브러졌다. “야영하고, 꽃길을 걷고, 이렇게 누워 있으니 힐링이 따로 없네요.”

 분주령은 산골사람들이 소금과 물, 산나물과 해산물을 지고 ‘분주하게’ 다닌 길에서 이름 붙여졌다. 혹자는 산부추가 많아 분주령이 됐다고도 한다. 어쨌든 분주령은 금대봉과 대덕산 야생화 길의 클라이맥스다. 오던 길로 곧장 가면 대덕산 정상, 남쪽으로 내려가면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다. 가족 트레킹이라면 무리하지 않고 내려가는 게 좋다. 우리의 오후 강의는 대덕산으로 이어졌고, 선생님의 야생화 수업은 오후 4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금대봉 트레킹 정보

 생태계 보전지역이기 때문에 반드시 태백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생태해설사는 주말에 한해 단체 20명 이상일 경우에만 신청할 수 있다. 검룡소~분주령(왕복 4.2㎞), 검룡소~대덕산(왕복 6.6㎞), 두문동재~금대봉(왕복 2.4㎞) 등 3구간에 각각 2~3명씩 배치돼 있다. 생태해설사 없이 개인적으로 갈 때는 태백시내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두문동재에 차를 세워 두고 시작하는 게 좋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면 1만원가량 나온다. 문의 태백시청 환경보호과 033-550-2980.

김영주 기자

센터폴과 함께하는 트레킹 퀴즈

트레킹은 가파르지 않은 길을 오랜 시간 걷는 운동입니다. 정상을 목적으로 하는 등산보다는 여유롭게 걷는 운동이지만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
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적절한 양의 간식을 적당한 때 섭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다음 중 트레킹에 필요한 간식을 고를 때 적절치
못한 음식은 어떤 것일까요?

① 당질이 풍부한 고열량 음식
② 주변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즉석요리 음식
③ 열량화가 빠르고 소화가 원활한 음식
④ 휴대가 간편하고 덜 상하는 음식

정답 ②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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