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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그들은 왜 마녀를 미워했을까

마녀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봄아필

432쪽, 1만 9000원




이 책이 프랑스에서 1862년 출간됐을 때 유럽사회는 들끓었다. 이른바 사탄과 내통하는 ‘마녀’의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종교적 금기를 건드린 것은 물론이고, 변두리에 있던 여성을 역사의 중심에 올려놓은 점 등이 뜨거운 반향을 낳았다.



 저자는 “과거 1000년 동안 마녀는 민중의 유일한 ‘의사’였다”고 썼다. 유럽의 중세는 한센병·간질·매독 등이 창궐하던 때다. 유일신 안에서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던 개인은 점차 자신의 욕망에 눈 뜨기 시작한다. 이들은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숲 속의 마녀를 찾아간다. 한때 누군가의 어머니였고, 부인이었으나 다른 신령을 믿는다는 연유로 숲으로 쫓겨난 이들이었다.



 마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약초를 구했다. 때론 외과의사처럼 부러진 뼈를 맞췄고, 아이를 받는 산파이기도 했다. 특히 영주의 패악질과 가부장의 억압에서 이중고를 겪었던 여성들을 달래는 정신 상담사였다. 마녀가 주최하는 ‘사바(Sabbat)’라는 축제는 비상식적으로 억눌린 남녀의 성적 욕망을 분출하는 창구이기도 했다.



올해로 탄생 600주년을 맞은 잔다르크는 이교도로 몰려 화형당한 ‘마녀사냥’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림은 독일의 화가인 헤르만 스틸케가 1843년 발표한 ‘잔 다르크의 죽음’이란 작품이다. [그림 봄아필]
 책은 14~18세기에 걸쳐 마녀의 탄생부터 마녀 숭배, 마녀의 쇠퇴, 그리고 마녀를 압살하려는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이란 단어를 만들어낸 잔혹한 처형에 이르기까지 마녀의 생사고락을 담았다.



 저자인 쥘 미슐레(1798~1874)는 ‘르네상스’라는 말을 처음 쓴 프랑스의 역사학자다. 프랑스혁명을 열렬히 지지했던 그는 전쟁의 격동 속에서 진보적 역사학자로 살았다. 『프랑스 대혁명사』 『프랑스사』 등을 썼고, 노년에는 여자를 주제로 『여자의 사랑』 『여자의 삶』 등을 썼다. 그는 민중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쉬운 단어와 문학적 수사를 곁들여 역사를 서술했다. 그러니 소외된 자로서 ‘마녀’의 인생에 집중했던 것은 필연적인 일일 게다.



 책의 1부가 마녀의 탄생을 다뤘다면 2부는 마녀의 수난사다. 종교재판관은 마녀가 사람의 환심을 살수록 권력집단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그들을 더 억압했다. 감금·고문·화형은 늘 마녀를 따라다녔다. 에스파냐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마녀가 죽은 아기의 시신을 묘지에서 꺼냈다는 누명을 쓰고 붙잡힌다. 판사는 땅 속에 고스란히 누워 있는 아기의 시신을 보고도 “이것은 악마의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한 마녀는 결국 화형대에 오른다. 독일의 경우엔 이렇게 죽은 마녀가 한 도시에서만 500~1500명에 달했다. 처형자 명단에는 11세 어린이도 있었다.



 급기야 ‘마녀사냥’의 방법론을 다룬 책도 나왔다. 마녀의 이단성에 대한 신학적 논증, 체포·고문·판결 등에 대한 실질적 조언이 담긴 책이다. 프랑스의 종교재판관인 슈프렝거의 『마녀 망치(철퇴처럼 마녀를 징벌하는 망치)』(1480년대), 판사인 랑게르가 쓴 『악마의 변덕』(1610년대)이 대표적이다. 법원은 ‘얼마나 많이 처형시켰냐’로 경쟁을 하기도 했다. 17~18세기 수도사나 신부의 노리개로 이용당한 수녀들이 마녀로 낙인 찍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이야기도 볼 수 있다.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독일의 화가 한스 발둥이 1508년 발표한 작품 ‘마녀’의 부분.
 책의 단점이라면, 문체가 낯설다는 것이다. 예고 없이 마녀의 시각으로 시점이 옮겨가 소설처럼 서술되기도 하고, 감탄사와 비문이 자주 출몰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150년 전 민중들에겐 쉽게 읽혔던 독창적 문체가 설명조로 역사책을 읽어버릇한 현대인에게 걸림돌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인내하고 읽어낸다면, 문필가로서 저자의 감수성을 포착할 수 있다. 예컨대, 저자는 숲에 숨어 들어온 마녀가 자연과 친해지는 과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막과 절망과 결혼한 여자, 증오와 복수심만 먹고 살던 여자인데,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순진하게 자신에게 미소짓기만 하지 않는가! 포근한 남풍을 맞으며 나무들은 그녀에게 점잖게 인사한다. (중략) 모든 것이 분명히 사랑이다.’(119쪽)



 어쩌면 ‘마녀사냥’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나 난징대학살처럼 역사의 굵직한 사건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특정 민족이나 세대로 묶일 수 없어 누구도 그들의 억울함을 대변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녀는 무고한 희생자보다 신비의 주술사나 사탄의 친구로 기억된다. 이 책은 ‘마녀’를 이 시대로 소환해 기억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음지에 있는 오늘날의 ‘마녀’들에게 이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새로운 것들은 모두 사탄이었다. 죄가 아닌 진보는 없다.’(3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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