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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한국의 류화칭을 기다리며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중국 인민해방군에는 ‘아버지’ 칭호를 받는 두 명의 영웅이 있다. ‘로켓의 아버지(火箭之父)’로 불리는 첸쉐썬(錢學森·1912~2009)과 ‘항공모함의 아버지(航母之父)’로 회자되는 류화칭(劉華淸·1916~2011)이다. 당대 최고의 로켓 전문가였던 첸은 미국에서 유학하고 연구하다 귀국해 오늘날 중국 로켓과 우주과학 기초를 다졌다. 반면 류는 평생 전장을 누비며 대양해군의 꿈을 놓지 않았던 야전 제독이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엊그제 취역한 중국의 첫 항모 랴오닝(遼寧)함 갑판 위에서 눈물과 함께 춤을 췄을 것이다.

 지난해 1월, 류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중국 해군 지휘관 몇 명이 그의 집을 찾았다. 유언은 그들의 가슴을 후볐다. “항모를 보지 못하면 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겠다.” 지휘관들이 “내년에 꼭 항모를 취역시키겠다”고 약속하자 그는 눈을 감았다고 한다.

 1970년 일이다. 해군 부참모장이었던 그는 어느 날 지휘관 회의에서 “항모 보유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참모들은 “미친 거 아냐”는 표정이었다. 문화혁명의 광풍과 사회 혼란, 변변한 구축함 한 척 없었던 해군, 그리고 하루 연명하기도 힘들던 인민들 앞에서 항모라니. 그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중국의 영해가 국토의 3분의 1인 300만㎢다. 이걸 어떻게 지킬 건가. 청 말 서구열강에 국토가 어떻게 찢겨나갔는지 잊었나.” 중국 해군 전략의 기초가 된 ‘해양 국토론’은 이렇게 시작됐다.

 회의를 마치고 그는 해군 내에 ‘항모 논증팀’을 만들어 항모 전사와 작전개요, 관련기술, 인력양성 계획 등을 집중 연구토록 했다. 75년, 중국의 항모를 가져야 하는 논리를 완성한 그는 마오쩌둥(毛澤東)을 찾아 일주일 넘게 설득했다. 80년, 류는 해군 사령관으로 미국을 방문해 항모 ‘키티호크함’ 갑판에 올랐다. 중국 군 장성으로는 처음이었다. 당시 각오를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조국과 약속을 했다. 죽기 전 반드시 항모를 갖겠다”고.

 이후 그는 국방대학 내 항모 함장교육 과정 개설(87년)과 우크라이나 항모 바랴크함(랴오닝함) 매입(98년) 등을 주도했다. 그래서 랴오닝함은 류에게 평생의 한(恨)과 꿈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물론 중국 항모가 미국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갖추려면 앞으로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대양 해군’ 전략은 이미 절반의 성공이다. 그리고 한국 안보에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아쉽고 답답한 것은 중국의 류화칭을 넘을 ‘한국의 류화칭’이 있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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