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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의 대수술 불국사 석가탑 2년 뒤 다시 만나요

27일 오후 1시 30분 경주 불국사 경내. 한국 석탑의 백미(白眉)로 불리는 불국사 삼층석탑(일명 석가탑· 국보 21호)을 둘러싸고 설치된 직사각형 형태(높이 12.3m)의 가설덧집 안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기단 등 심각한 균열 밝혀져

 “하나 둘 셋.”



 신호에 맞춰 불국사 성타 주지 스님, 국립문화재연구소 김영원 소장 등이 흰 끈을 잡아당겼다. 석가탑 맨 꼭대기 상륜부를 차지하는 구슬 모양 장식물인 보주(寶珠)를 감싼 박스가 도르레에 실려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중요무형문화재인 이의상(70) 석장이 미리 손으로 탑에서 해체했던 것이다. 박스를 벗기자 녹슬고 가운데 균열이 생긴 보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석가탑 해체 착수를 알리는 상징적인 보주 인양식 장면이다.



 석가탑이 약 1000년 만에 전면 대수술을 받는다. 몇 군데 땜질 수준이 아니라 전면 해체·복원을 거쳐 새로 태어나게 된다. 보주 해체 시연에 앞선 이날 오후 1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경주시·불국사와 함께 ‘불국사 삼층석탑 해체 수리 착수보고회’를 열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새로운 1000년을 위해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날 보고회에서 “2010년 12월 정기안전점검 때 북동측 상층 기단 갑석에서 균열(길이 1.32m, 최대폭 5㎜)을 발견한 뒤 전반적인 훼손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기단부·탑신부·상륜부 모두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드러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전면 해체 복원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특히 기단부의 금이 컸다. 내부 적심(기단 내부를 채우는 돌무더기)이 차츰 유실되면서 20t이 넘는 상층부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성타 주지 스님은 발원문에서 “(이번 보수로 석가탑이) 새로운 1000년을 우리와 함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1966년 석가탑 해체 때 사리공(舍利孔)에서 발견된 중수기(重修記)에 따르면 석가탑은 경덕왕 원년(742) 조성됐다. 기단부나 탑신부에 아무 조각이 없어 간결하고 장중하며, 각 부분의 비례가 아름다워 안정된 느낌을 준다. 부재를 쪼개지 않고 통돌을 쓴 가장 오래된 석탑으로 통일신라 시대 석탑의 전형이 됐다.



27일 경주 불국사에서 인부들이 석가탑 해체 착수의 상징으로 맨 꼭대기 보주(寶珠·구슬 모양 장식물)를 해체하고 있다. [사진 문화재청]
 ◆일반인도 공사 볼 수 있어



중수기에 의하면 석가탑은 고려 현종 15년(1024)·정종 2년(1036)·정종 4년(1038) 각각 대규모 지진 피해를 봤다. 이에 석탑은 상당 부분 무너져 크게 수리됐다는 기록이 있다. 1966년엔 사리공에 대한 도굴 미수 사건으로 탑 부재 일부가 훼손돼 부분 보수가 이뤄졌다. 해서 이번 작업은 1038년 이후 약 1000년 만의 전면 해체수리인 셈이다.



 해체 복원의 실무를 맡은 건축문화재연구실 배병선 실장은 “상륜부·탑신부·기단부는 해체하고, 내부 적심도 해체한다”고 했다. 이어 “아울러 석탑 하부 지반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66년 석가탑 일부 해체 당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밝혀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발견된 바 있다. 이번에도 지반 아래서 유물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배 실장은 “석탑의 이런 해체 복원은 금세기 최대의 수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체 뒤 석가탑은 석탑 부재를 세척하고 부재는 접합·강화처리 한다. 최대한 원부재를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내부 적심도 보강한다. 이런 제반 작업을 바탕으로 재조립에 들어가 2014년까지 복원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불국사를 찾는 연 250만 명의 관광객은 절반이 투명하게 설치된 가설덧집을 통해 해체수리 전 과정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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