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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FOCUS] 남-북-러 삼각협력과 러시아의 역할

안드레 란코프 국민대교수
러시아는 오랫동안 한국의 미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변 4강 중 한 나라로 한국인들에게 여겨졌다. 실제로 지난 130여 년의 한국사를 돌이켜볼 때 러시아가 중요하거나 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 많았다. 따라서 현재 남북관계나 향후 통일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러시아에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 입장을 잘 들여다 보면 이 같은 두려움은 근거가 없으며 러시아에 대한 기대는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현재 러시아 대외정책의 기조는 탈 이념주의, 탈 제국주의, 그리고 실용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외부에서는 간혹 러시아를 소련의 축소판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소비에트 연방과 러시아 연방 사이에는 하나의 분명한 차이가 있다. 소련은 공산 이데올로기의 확산이라는 국가적 위신과 관련된 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를 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 이와 달리 러시아는 실용주의에 입각한 대외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정책 수립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 요인은 경제 문제다. 이 같은 실용주의 노선은 러시아의 이해관계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한국인의 일반적 인식과 달리 한반도는 현재 러시아 대외정책에서 주변부에 해당된다.


한국에는 러시아가 남북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 의견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이 지역 다른 강대국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도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러시아 대외정책의 주요 목표는 단순한 현상유지가 아니라 '안정'의 유지다. 러시아 대외정책은 과거의 이상주의적 시각에서 탈피하여 실용주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실용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안정'이란 러시아의 좋은 무역파트너인 동아시아 국가들과 장차 활발한 교역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의미한다. 현 상황에 대한 변화가 역내 불안정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 분명할 경우 러시아는 어떤 변화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한편 남북 통일은 현재 러시아의 당면과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오히려 남북의 평화 공존이 최대 과제이며, 바로 이 부분에서 러시아는 매우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 강대국 중 북한이 쉽게 인정하는 중개자 또는 협력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러시아가 북한 내부문제에 간섭하거나 국내정치 상황에 영향을 줄 의지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러시아를 신뢰한다는 것은 결코 의미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러시아는 중국이 북한 지도부에 야기하는 수준의 우려 대상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는 북한과의 대화에서 중개자 역할을 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개최될 수도 있는 3차 남북정상회담을 가정해보자. 1ㆍ2차 정상회담 개최지였던 평양이 또 다시 후보 도시가 되는 것은 적절한 선택이 아니라고 본다. 대신 블라디보스토크나 러시아 극동의 다른 도시가 3차 남북정상회담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역할에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도 금물이다. 알려진 대로 벌써 몇 년째 한반도종단철도(TKR) 건설 협상이 진행되어왔고, 작년에는 남-북 가스관 연결 사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몇 가지 주요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확고하다면 가까운 장래에 이 두 프로젝트가 성사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들도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철도 관련 협상이 결실 없이 15년을 끌고 있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이 프로젝트들이 매력이 있지만,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상당한 위험부담이 따르는 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철도와 가스관 프로젝트 둘 다 수십 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요구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의 협상이 마무리 되고 건설 작업을 개시하는 순간 러시아 기업은 불안정한 한반도 정치상황의 볼모가 될 수 있다. 북한이 또 다시 선동에 나서거나 미국 또는 한국에서 신보수주의 세력이 등장한다면 건설 사업은 언제든 중단될 수 있고 그 경우 프로젝트에 투입된 막대한 자금은 증발해버릴 수 있다.

과거 소련이라면 이런 리스크를 감수했을지 모른다. 대형 프로젝트가 이 지역에서의 국가의 위신과 영향력을 크게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새로 탄생한 러시아는 위신과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수십 억 달러를 내던질 위험부담을 결코 안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가까운 미래에 가스관과 철도 사업 모두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다고 본다. 다만 남북관계가 진지하고 공고한 안정의 길로 접어든다는 전제 하에서만 이러한 사업의 수행은 가능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이 러시아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러시아에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도 옳지 않다. 지금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호 협력을 위해 손을 잡는 일이다. 한국과 러시아 양국의 협력이 때에 따라서는 매우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드레 란코프 국민대교수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 발간하고 중앙일보가 배포한 ‘러시아FOCUS’에 게재된 기사로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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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