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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HINA FORUM] ‘시진핑의 중국 어디로 가나’ 세션 1 지상중계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원장: 최근 전세계 이목이 베이징의 중난하이(中南海)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시진핑(習近平)의 건강문제가 거론되면서 20년 전 환절기가 되면 덩샤오핑 건강이 문제되면서 사망설이 나돌고, 홍콩 주가가 폭락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중국은 과거에 비해 투명해졌습니다. 지금은 반투명에서 2/3정도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오늘 세미나는 불투명한 부분을 환하게 비춰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부분을 최대한 환하게 볼 수 있도록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을 모을 기회입니다. 번스타인 교수님께 30분, 토론 선생님들께 10분씩을 할애하겠습니다.

토머스 번스타인 콜럼비아대 명예교수: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강의를 하도록 초빙을 받았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교류재단과 중앙일보 측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정종욱 대사님께 특별히 감사 드립니다. 오래 전부터 정 대사가 예일대 대학원 학생일 때부터 알아 왔습니다. 저는 교수진이었습니다. 교수가 되면 학생이 선생보다 나아진다는 중국어의 ‘청출어람(靑出於藍)’ 경험을 하게 되어 즐겁습니다. 정 대사는 학문의 깊이를 갖추셨습니다. 회의를 가능케 해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말씀을 드립니다.
중국의 경제와 정치 개혁이 정체됐다는 관점이 팽배합니다. 원자바오 총리는 올 3월 전인대에서 이런 점을 강조했습니다. 정치개혁이 전제되지 않으면 경제개혁이 지속될 수 없습니다. 정치적 개혁으로 인한 경제개혁이 없으면 문혁이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엘리트층에서는 그 동안 정치개혁 논의가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불가능한 정도의 논의가 있었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많은 정치 개혁이 있었습니다. 중국은 전체주의 체제에서 권위주의 체제로 옮겨갔습니다. 마오쩌둥의 전체주의 권력체제에서 덩샤오핑 체제로 옮겨갔을 때 중국 사회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남성상과 여성상이 등장했습니다. 덩샤오핑은 당-국가가 사회를 지나치게 장악해 새로운 공산당원을 만드는 기조가 아닌 모두 부자가 되자는 실험에 착수했습니다. 완전 통제에서 물러났습니다. 시민들에 대한 요구도 줄었습니다. 많은 소규모 활동들이 중단되었습니다. 중국은 시장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개인이 자신의 이니셔티브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농경의 탈집단화가 진행되고, 개인의 영업 활동도 일부 허용이 됐습니다. 1978년 이래 개혁·개방이 시작됐습니다.
정치적으로 중국은 국가 운영에 시민들의 참여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참여는 다양한 형식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 중 하나를 지방 레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표 직을 놓고 한 명 이상이 경합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경쟁의 요소가 도입됐습니다. 새로운 시도입니다. 시골 농촌에서 원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게 됐습니다. 최근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협상 민주’로 불리는 실험이 진행 중입니다. 관료뿐만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를 청취합니다. 이것이 정책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정책을 수립하는데 시민들의 코멘트도 받아들입니다. 현직 공무원을 시민들이 평가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참여할 수 있는 자유를 늘였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권력은 공산당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공산당의 리더십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권력의 공유는 결코 아닙니다. 중국에는 8개의 ‘민주당파’가 있습니다. 민주동맹은 1949년 이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당파들은 8000만 당원의 공산당에 비해서는 수적으로 매우 적습니다. 소수 민주당파는 공산당 리더십을 받아들입니다. 이들은 공산당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으로 역할이 국한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공산당입니다. 공산당의 정치 참여에 어떻게 접근하는가. 중국의 정치는 사회 경제적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중국이 지난 30여년간 연간 10%의 성장을 이루는 광경을 목도했습니다. 중국은 세계 경제에 편입됐습니다. 경제 교류가 증가했고, 도시화도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상향이동도 많았고, 수평이동도 많았습니다. 농민공들의 하향조정도 많았습니다. 국영산업을 대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단행됐습니다. 5000만 명의 종업원들이 사회 안전망 없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소요도 잦았습니다. 고등교육 수혜자도 크게 늘었습니다. 개혁개방 초기 70~80만 명에서 2500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새로운 프로페셔널, 경영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전문가와 분석가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 분석가들을 정부가 활용하고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상의 혁신이 있었습니다. 인터넷이 크게 보급됐습니다. 현재 중국의 네티즌 수는 5억1500만 명입니다. 2억 명 이상이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란 창구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해관계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내용을 보면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단 공산당 자체는 아니라, 정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회·경제적인 변화와 함께 정치적 변화도 있었습니다. 비정부기구가 수십 만 개 생겨났습니다. 모두 정부가 만들었고,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자원봉사가 크게 늘었습니다. 원촨(文川) 대지진 발생 당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시민들이 자원봉사에 나섰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는 없던 현상입니다. 시민사회가 부상하고 있습니다. 단, 아직은 국가에 귀속된 시민사회입니다. 많은 분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시민사회가 서양처럼 완전히 자발적이지는 않습니다. 중국 전통의 시민사회입니다. 개인들이 온라인에 많은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중국의 시민들은 정치 과정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싶어합니다. 사회가 복잡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후진타오는 17차 당대회에서 “이해 당사자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했습니다. 각 주체에게 독립을 주는 단계는 아닙니다. 노조와 같은 이해단체의 정당성을 아직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회 운동가들이 자체적으로 조직화를 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결사하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부르조아 정치자유화(자산계급 자유화)라고 부르며 금기시합니다. 지도자들은 사회가 스스로 결사하면 혼돈이 오고, 체제가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일본·대만과 같은 아시아식 민주주의가 부상할까 우려합니다. 권위주의가 끝날 것이라는 걱정입니다. 서양식 민주주의는 중국에 위험하다는 근거 없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 개의 이벤트를 언급하겠습니다. 1989 천안문사건 당시 베이징뿐만 아니라 전국의 시민들이 천안문 앞에 모였습니다. 베이징에서 6월 4일 대학살이 있었습니다. 당시 동유럽에서 공산당이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비폭력적인 체제전환이 일어났습니다. 1991년 소련 공산당이 붕괴했습니다. 중국 지도부에게는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중국은 고르바초프를 원망했습니다. 사회 세력들에 대한 통제권을 놓쳐서 소련 공산당이 붕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탄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이 실패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덩샤오핑은 “정치 자유화는 안된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후계자들은 이를 지켰습니다. 금지령은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입니다.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는 시위 숫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군체성사건으로 불리는 대중 시위는 1993년 3500건, 2007년 8만7000건 2010년 약 18만 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집권당에 위협은 되지 않지만 걱정거리가 되기엔 충분합니다. 지방의 당관리들이 권력을 남용하기 때문에 시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은 경제성장을 중국식으로 해왔다. 정치 권력이 전국 차원, 지방 차원에서 집중되어 왔습니다.
땅 이용권과 관련해 수백 만 농민들이 농지를 잃었습니다. 지방정부가 개발 업자와 함께 산업, 관광지로 개발했습니다. 지방 관리들은 농지를 매입하는데 돈을 주기는 주지만 잘못된 주머니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방정부에서 잘못 활용됐습니다. 지방정부의 발전 과정에서 토지 수매로 큰 혜택을 입었습니다. 모두 부패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재정과 지방경제 발전을 위해서 활용됐습니다. 어느 정도 부패와 유용이 발생했습니다. 농민들이 누적된 피해를 당하자 시위를 벌였습니다. 농민과 원주민들이 세력 행사를 한 것입니다. 20년동안 도시 재개발이 많았습니다. 중국에서는 지금 현대식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새로 세워지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어려운 환경으로 내몰리고, 적절한 보상도 못 받습니다. ‘정디(整地)’로 불리는 강제철거가 빈번하게 벌어집니다. 진정서 숫자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베이징으로 가서 민원을 제기합니다. 상팡(上訪)이라고 불립니다.
그 결과 보상이 이뤄지기도 하고, 관리가 해임되기도 합니다. 광둥의 우칸에서는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됐습니다. 시위대 탄압도 많습니다. 시위 주동자가 구속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방정부는 주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 시위를 줄이고자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안정입니다. 중국 사회는 조화를 이루고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른바 “안정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穩定壓倒一切)”라는 사상입니다. 이는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에서 2003년부터 05년까지 ‘색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중국 정권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포위되고 있다는 멘탈리티를 갖고 있습니다. 서방세력이 침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포위 맨탈리티(Siege mentality)는 사회 안정 예산은 현재 국방예산을 능가합니다.
서양식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을 투옥하고 공산당의 원칙을 따르도록 강요합니다. 상방자의 숫자가 많으면 지방지도자에게 패널티를 주고 있습니다.
비판적 엘리트와 정치개혁 지지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개혁 마인드의 태자당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직 당간부, 언론인 등이 권력의 집중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독립적인 사법부를 만들고 검열을 없애자고 주장합니다. 당정분리과 견제와 균형을 요구합니다.
왕양(汪洋) 광둥성 서기는 “30년 전에는 이데올로기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것이 개혁의 초점이었다. 이제는 기득권을 깨는 개혁에 집중해야 한다” 주장합니다. 사회로의 권한이양을 강조합니다. 최근 들어 당 기관지 학습시보에 기고가 실렸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정치개혁이 부족한 것은 근간의 쟁점들을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산아제한, 이주금지법, 경제·정치 세력의 집중, 시대착오적 쟁점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정치개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당 기관지가 말했습니다.
이런 제한들은 정치자유화를 금기시한 덩샤오핑의 유산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런 기사가 보도된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천안문 광장의 시위보다 엘리트의 의견교환을 억압할 수만은 없습니다. 중국의 방향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소수가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정치학에서 정확한 예측은 할 수 없습니다. 18차 전당대회 후의 전망은 더욱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는 하향식 개혁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혁신적인(transformative)’ 지도자가 비전과 파워를 갖고 이데올로기를 재해석하고 자유화를 시행했습니다. 경제 개혁을 이룬 덩샤오핑은 대표적인 ‘혁신’ 지도자입니다. 시진핑이 곧 권력을 물려받습니다. 시진핑은 ‘거래적인(transactional) 리더’로 분류될 것입니다. 제한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타협을 선호할 것입니다. 시진핑이 과연 예상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요? 소련 공산당의 고르바초프도 관료체계에서 성장했습니다. 끝에는 ‘혁신적’ 지도자로 변신했습니다. 시진핑은 정치개혁에 긍정적인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제어를 잘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진정한 자유주의자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권력을 온전히 장악할 때까지 색채를 드러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시진핑은 계파간 균형을 이루고 포스트 덩샤오핑의 컨센서스에 제한을 받을 것입니다. 무조건 덩샤오핑 식으로 따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야 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합니다.
시진핑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정치자유화로 인해 위구르와 티베트 지역의 독립운동이 거세질 수 있습니다. 이는 중국의 해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군사 개입이 이뤄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엄청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게임체인지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급격한 경제적 위기는 보수적 지도자라 하더라도 이해 충돌과 경제위기 해소를 위해 중도적 정치개혁을 도입할 것입니다. 신임 지도부는 촌급 지도자 선거를 자유화하는 정치개혁에 착수할 것입니다. 단 공산당의 권력 독점을 건드리는 근본적 개혁은 이뤄지기 힘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문흥호: 감사합니다. 번스타인 교수께서 폭넓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번스타인 교수의 발표문에 한정하기보다 그 밖의 다양한 문제도 주목해 우리가 중국의 미래 전망을 함께 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 시진핑 부주석의 건강이상설, 정치국 상무위원 결정문제, 1달 앞으로 다가온 전당대회 일정도 확인할 수 없는 사정을 보면서 중국연구자들이 중국정치가 Black Box라는 부족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이 맞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를 하는 한편 좀 더 학문적인 겸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랫동안 중국문제에 천착해 온 석학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이런 기회에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통찰력있는 지혜를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중국의 1인당 GDP는 5400달러(2011년말 기준)로 비교정치학의 근대화모델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추세라면 모든 국가가 예외 없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는 1인당 GDP 8천달러 시대에 곧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평자의 판단은 중국에서 서구적 자유화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미국식 민주주의와 경제체제에 대한 중국의 인식이 크게 변화하면서 당-국가체제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하고 있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당분간 비교정치학의 근대화모델에서 중국이 그 경로를 이탈해 나가면서 새로운 길을 추구할 수 있는 중국예외주의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떠한가?
둘째, SNS문제입니다. 중국은 일단 억이 넘어야 통계에 잡힌다. 휴대폰 10억, 네티즌 5억을 넘었다. 개인 블로그도 2억이 넘었다. 중국식 카카오톡, 트위터 3-4억이 된다. 이러한 SNS 열풍은 중국정치개혁에도 새로운 논의를 제공하고 있다. 즉 중동민주화를 촉발한 SNS혁명이 중국에도 나타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중국정부가 방화벽을 설치하여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고, 행정의 투명도를 높여 정부에 대한 지지를 향상시켜 체제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또 하나는 SNS가 시민사회를 성숙시키고 대중동원을 통해 ‘광장의 정치’를 만들어 보다 민주적인 중국을 만들 것이라는 견해이다. 전반적으로 중국이 중동이나 북한과 같은 국가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체제의 개방도가 높고 정치영역에서 수축과 적응(atrophy and adaptation)을 높여가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인 데 이러한 SNS가 반드시 중국의 체제에 주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셋째, 중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은 많은 차이가 있다. 많은 부분에서 중국이 서구적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식 민주를 보는 서구의 입장은 다소 규범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과소평가와 과대평가의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미국의 프리덤하우스 지표를 보면 중국은 언론자유 부분에서 197개국 중 187위로 기록하고 있고 정치적 권리(Political Right)는 북한과 같은 7등급, 시민적 권리(Civil Right)는 6등급(북한 7등급)이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평가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이처럼 서구가 중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에는 주로 절차(procedure)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번스타인 교수도 동의했듯이 중국이 이미 전체주의에서 권위주의로 이행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여기에 효능(effectiveness), 소통(communication), 통합(integration)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좋은 민주주의(good democracy)의 관점에서 중국의 변화를 보면 상당한 발전이 있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식 정치발전의 성과와 한계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넷째, 중국 모델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중국에서는 “권위주의적 지배+국가가 효과적으로 지배한 시장+국방비를 능가하는 사회통제 시스템”이 결합된 기존의 중국모델에 대한 혁신의 과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대추구(rent-seeking)행위와 부패가 빈발해 체제의 도덕적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비록 중국은 다당제와 삼권분립체제를 반대하고 있으나 당내(intra party)민주, 기층민주(grass-roots democracy) 등 민주주의의 투입(input)구조를 확대하는 한편 체제혁신과 시장의 확대로 이를 돌파하려고 하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체제도 ‘권력의 한계’가 아니라 스스로 체제정통성의 적자(sons by CCP)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 개혁 보다는 체제 내 개혁(change in system)을 추진하면서 당-국가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모델이 규범적으로는 한계가 있으나, 이 모델이 지속가능성의 차원에서는 상당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떠한가?
다섯째, 이데올로기의 해석권 문제입니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정치권력이 변화하면서 이데올로기가 수정되어 왔다. 즉 마오쩌둥사상→덩샤오핑 이론→ ‘3개대표 중요사상’→ 과학발전관 등으로 변화했다. 시진핑 체제에서는 어떠한 이데올로기 수정이 가능하겠는가? 그리고 정치권력의 핵심은 체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해석권을 지닌다고 볼 수 있는데 중국의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규정하는 소유권 문제는 이미 해체되었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외연(denotation)이 지나치게 확대었지만 핵심적인 내포(connotation)는 거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교수님은 이러한 중국의 사회주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설명하고자 하는가?
여섯째, 중국은 당외 민주화의 지체에도 불구하고 당내 민주주의는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다. 권력선출과정의 베일에도 불구하고 권력계승은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총서기와 정치국 상무위원 등 핵심지도부의 선출과정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그리고 포스트 후진타오의 권력구조도 지지부진하다. 임박한 전당대회 일정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의 구성도 여전히 난항인 과정에서 ‘보시라이 사건’은 역설적이게도 중국정치의 속살(insider)을 드러낸 사건이다. 다시 건재를 과시한 시진핑 체제는 건국 이후 첫 총서기이지만, 과감한 정치개혁은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향후 5년간은 ‘낡은 술통에 새 술을 붓는’식의 중국정치의 전통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중국정치가 새로운 권력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과거권력이 관여하고 있는 점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이런 점에서 후진타오가 총서기와 국가주석의 이양에도 불구하고 장쩌민 시기와 같이 군부권력을 유지하는 이른바 반퇴(半退)를 선택할 것인가도 관심사이다. 이를 정치발전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시진핑 시대에 대한 개인적인 전망을 말씀드리겠다. 시진핑의 정치개혁은 한 달 지나면 알 수 있다. 18차 당대회에서 방안이 나와도 그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다.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더 될 수도 있다. 단순히 18차 당대회를 보면 알 수 있는 아니다. 두 가지를 검토해야 한다. 하나는 중국이 당면한 문제, 즉 정치개혁에 대한 객관적 필요성이다. 정치개혁을 해야 되는지, 그렇다면 어떤 것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둘째는 5세대가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주관적 조건이다. 객관적 상황과 주관적 조건을 나눠서 살펴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정치적 자유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경제발전과 민생문제 해결 통한 정치문제의 완화’ 전략을 지속할 것이다. 국민의 정치참여 요구를 축소하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정치개혁은 최소한 시진핑 집권1기(2012-17년)에는 우선적인 국정과제(agenda)가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이 전략이 성공한다면, 다시 말해 이를 경제 및 사회 정책을 통해 국민의 정치참여 요구와 ‘길거리 정치’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면, 시진핑 집권2기(2017-22년)에도 ‘급진적’ 정치개혁은 추진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정치개혁을 매우 많이 했다. 정치개혁이 없었다면 연10% 경제성장은 불가능했다. 비교적 안정적인 사회체제 유지도 불가능했다. 그 정치개혁이 우리가 아는 정치민주화가 아니었을 뿐이다. 중국은 민주화 대신 국가체제의 정비에 투자했다.
이 시도가 두 문제를 낳고 있다. 첫 문제는 정치권력의 집중화와 부정부패다. 국가의 실패다.
천안문사건 이후 당정분리를 폐기했다. 국가권력이 당정간부의 재산으로 바뀌었다. 가산제국가가 됐다. 간부가 온갖 부를 취한다. 불름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일가의 자산이 4억 달러에 이른다. 더 심해지면 약탈국가가 된다. 이게 첫 번째 문제다. 민주가 아니라 평등도 아닌 부패 문제가 제일 급한 현안이다.
국민정치참여가 배제되자 길거리 정치가 만연되고 있다. 스팡(什?)시에 몇 억 달러 규모의 화학공장을 착공했다. 환경재해 위험에 공장착공이 취소됐다. 시위 하루 500건이 벌어지고 있다. 시진핑 체제 5세대가 정치 개혁을 할 수 있을까. 못한다. 세가지 조건이 제약하고 있다.
1. 현재 중국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다. 한 사람이 기존체제를 바꾸는 시도를 나머지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다. 2010년부터 원자바오는 정치개혁을 8번 외쳤다. 나머지 상무위원 8명이 동의를 안한다. 상무위원 7명 체제에서 시진핑 본인이 정치개혁을 주장할지라도 동의를 못 얻으면 할 수가 없다. 동의를 못 얻을 것이기 때문에 시도도 안 할 것이다.
2. 중국의 가이드라인은 공산당의 일당집권 유지와 정치개혁은 경제성장에 기여를 해야 한다는 두 가지다. 정치적 민주화, 자유화는 이 둘을 모두 흔든다.
3. 정치 자유화에 대한 내용적 합의가 없다. 시진핑의 개인전기를 모두 읽었다. 이에 따르면 시진핑은 후진타오보다 보수적이다. 개혁적이지 않다. 그가 앞 세대를 뛰어넘는 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은 적다.
시진핑 시대의 정치개혁을 전망하겠다.
정치개혁의 주변화가 진행될 것이다. 중국은 경제성장과 민생문제 해결을 통해 정치참여 욕구를 억제해 왔다. 인민이 요구하기 전에 당이 먼저 나서서 해결했다. 이 정책이 시진핑 집권 1기는 계속될 것이다. 국정 과제를 놓고 보면 국정 과제의 50%이상은 민생, 취업, 주택, 의료, 빈부격차 해소에 집중할 것이다. 이는 정치개혁의 주변화를 의미한다.
둘째. 개혁은 공산당개혁을 중심으로 추진될 것이다. 중국식 표현으로 당건설이다. 시진핑이 시종일관 하는 말이 공산당의 순결성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당의 순결성을 지키는 내용은 세 가지다. ▶당내민주주의다. 많은 일반당원도 참여하는 정책 결정이다. 3~4000개 현 중 250곳 당서기를 직접선거하고 있다. ▶당의 부패 가능성을 없애는 것. 반부패다. 강력한 반부패정책을 시행할 것이다. ▶셋째, 학습운동이다. 집단 학습과 능력 배양에 나설 것이다. 여유가 있다면 싱가포르를 모델로 하는 법치를 단행할 것이다. 민주화를 제외한 합리적 국가체제, 제도화된 국가체제, 의법치국을 해 나갈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시진핑 시대의 정치개혁에는 새로울 것이 없다. “후진타오 없는 후진타오시대”가 될 것이다.
시진핑의 힘은 어느 정도 일까. 후는 힘이 없었다. 박력 리더십의 문제보다 국민들이 견뎌줄 것인가의 여부다. 지금까지는 참아줬다. 앞으로는 어떨지 모른다.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 새로 집권할 5세대 정치 엘리트는 중국 권력지형의 변천이라는 큰 흐름에서 볼 때 혁명세대, 개혁세대에 이어서 포스트 개혁세대, 또는 사실상의 포스트 덩(鄧)세대의 등장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최고지도자로의 등장과정에서 차이가 있다. 후진타오까지는 사실상 덩샤오핑의 발탁과 지명에 의해 최고지도자에 오른 세대이다. 따라서 덩샤오핑의 정치적 가치와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제개혁, 고도성장과 안정을 지향해왔으며 동시에 이들이 정권 정당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어 왔다.
그러나 포스트 개혁세대인 시진핑은, 개혁과정에서의 개인적 업적, 계파간 타협과 경쟁을 통해 최고지도자로 등장하였다. 개인적 능력과 계파간 타협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동시에 덩샤오핑 시대를 넘어서는 초(超) 덩샤오핑 세대로서의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내세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고도성장과 안정의 당위성이 아닌 새로운 정당성의 근거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둘째, 5세대 지도부는 변화된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개혁세대는 사실상 양극화를 불가피하게 인정하면서 고도성장에 몰두해왔고, 이를 통해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해 왔다. 그러나 시진핑 체제는 복잡하고 다원화된 중국 사회의 변화, 개혁 후유증의 치료를 통한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 구축, 2008년 이후 변화된 국제환경에의 대응 등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즉 성장모델의 전환과 정치개혁의 모색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와 요구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반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시진핑 정부는 포스트 덩 세대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덩샤오핑 시대를 넘어서기까지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계파간 경쟁과 타협의 결과 집권한 정부라는 한계가 남아 있다. 미완의 개혁 과제, 그리고 치유해야 할 개혁의 후유증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집권 전반기 5년은 이러한 ‘덩샤오핑 시대 넘어서기’ 에 집중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계파간 타협과 정치적 안정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 시기는 시진핑 정부가 과연 후반기 5년 임기에 무엇을 새로운 정당성의 근거로 제시할 것인지 고민하고 모색할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당분간 후진타오 정부에서 했던 것처럼 일정부분 ‘중화민족의 부흥’ 이라는 민족주의와 민생 담론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민족주의 담론을 통한 정당성 확보는 양날의 칼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과도기적 상황에서 내적 통합과 발전의 동력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민족주의는 내적으로 정치적 광장 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고, 대외적으로 외교적 유연성을 제약하고, 중국위협론에 시달리며 중국 부상 일정에 차질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즉 민족주의를 통한 정당성 확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생 담론 역시 단기적으로는 소득증대, 양극화 완화, 복지 증진을 통해 일정부분 정당성의 근거로 작동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이러한 민생정책의 추진은 결국 정치 개혁의 필요성을 더욱 현실화 시킬 가능성이 높다.
전임 세대와 달리 시진핑 정부는 집권 전반기 5년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이기간 전임자와 각 계파간의 타협과 조율을 이끌어내야 하고, 홀로서기의 기반을 구축해야 하며, 새로운 시대적 소명과 내적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후반기 5년의 임기도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시대적 요구인 정치 개혁에 대해 어떠한 범위와 수준에서 대응할지를 집권 이후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이며, 시진핑 정부는 지속적으로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시진핑 정부가 집권 전반기 5년에는 정치 자유화를 포함한 본격적인 정치개혁 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고자 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은 정치개혁이 아닌 다른 방식 예컨대 계파간 타협, 민생문제의 일정한 해결, 외교적 성과 등을 통해 홀로서기의 기반을 구축해 가려 할 것이다. 시진핑 정부가 본격적으로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2017년 이후 어떠한 비전과 가치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 시기에는 중국의 정치개혁 일정에 대한 보다 분명한 청사진이 제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덩샤오핑의 개혁이 문혁을 통해 가능했고, 위기가 정치개혁을 촉발 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인상적이다. 시진핑을 보면 생각보다 위기관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중국의 위기는 아래보다 위로부터 올 수 있다. 정치국 내부 통합이 있으면 상당기간 안정을 지속할 수 있다. 공멸의 위기감이 형성되어 있고,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다. 위기관리를 잘 할 가능성이 높다. 위기가 체제위기가 아니라 관리될 가능성이 높다. 개혁 추진 동력은 약할 수 있다. 번스타인 교수는 소수민족문제가 체제 위기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티베트 신장의 분리독립운동을 보면서 신장 티베트 독립운동은 공산당 정당성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위가 중국 내 공산당이 주도하는 한족의 결집을 가져왔고 극복의 공감대를 이뤘다. 소수민족이 독자적으로 분리 독립할 수 없는 능력에서 더 힘든 상황, 즉 강압적 진압을 가능하게 만드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번스타인 교수: 커멘트 잘 들었습니다. 그 중 답을 할 수 있는 이슈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중국 모델의 지속 가능성 문제는 섣불리 답하기 힘들다. 일부 중국이 과연 정치개혁 능력이 있을까라는 질문도 있었다. 정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정치개혁이란 말을 많이 한다. ‘민주주의’, ‘자유’는 원자바오 총리도 말을 했다. 하지만 정의를 내린 바 없다. 불명확하다. 중국의 민주주의 논의를 보면 대중과 관계를 좋게 하는 정도다. 대중의 우려에 응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는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해가 상충할 때 처리하는 방식이다.
서양 민주주의와 좋은 민주주의에 대한 말씀이 있었다. 제가 대만에 대해서는 조금 알지만 한국· 일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아시아가치를 따르고 유교 유산이 있는 곳에서도 민주주의가 잘 돌아간다. 서양적 민주주의 잘 진행된다. 서양의 민주주의가 아시아에서 아시아 가치와 잘 공존하는 모습을 보았다. 90년대 대만에서 국회 폭력사태 많았다. 한국 국회도 마찬가지를 앓고 있다. 지금 반대의견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배워 나아가야 한다. 미국에도 정치 우파가 있다. 그들은 타협을 거부한다. 민주주의의 정수는 합의와 양보다. 이런 극우파들이 합의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민주주의는 위기를 겪고 있다. 민주주의는 완성이 될 수 없다.
다음으로 세부적인 내용을 답변하겠다.
국민소득 5000불에서 민주주의가 안정된다는 논리다. 5000불 이하에서 민주주의는 흔들린다는 말과 같다. 이는 통계를 보는 것이다. 50개 국가 소득수준과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관계에서 정확한 결과는 모르겠지만 한 국가의 내용을 잘 알려주지 못한다. 중국이 5000불 소득을 넘어서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불균형 성장 문제도 보아야 한다. 중국은 불평등 수준이 크다. 사회적으로 불화가 생길 수 있다 하버드 대학의 마틴 킹 화이트 교수는 ‘Myth of the Social Volcano’란 저서에서 불균등이 중국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다.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부를 축적하는 그릇된 방식이 문제다. 부 자체의 불균형은 큰 문제가 아니다. 특정한 내부 상황을 말하기에는 약한 점이 있다.
민주주의가 중국에서 어떻게 평가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범위가 넓게 사용된다. 인민의 이름으로 한다고 모두 민주주의는 아니다. 중국에는 안정파와 개혁파 사이에 분열이 있다. 사실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모두 그렇다. 자유주의 개혁파 사이에 불화가 있다. 18세기부터 그랬다. 토리당, 휘그당의 경우가 그렇다. 어떤 사람은 변화를 원했고 어떤 이들은 안정을 원했다. 국가가 두 개의 광범위한 그룹으로 나뉘는데. 만일 중국에 두 그룹이 있다면 민주주의 토대는 됐다고 볼 수 있다. 개혁당, 보수당 정도가 될 것이다. 당이 서로 의견을 제시하고 투표하면 된다. 기타 국가와 다르지 않다. 물론 중국의 유교부흥이라는 관점도 있다. 공자를 현자로 모시고 군자로 보아, 유교로 돌아가는 주장이 있다. 엘리트주의다. 현명하고 재능 있고 능력으로 발탁된 엘리트를 뽑자는 논리다. 민주주의의 민의를 따르자 유교로 돌아가자는 의견도 있다. 다스림에 대한 유교 회귀주의다. 유교는 이도 저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국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는 쉽다. 하지만 근간적인 갈등의 해결책은 제시할 수 없다. 고대 중국을 보면 갈등 회피 경향이 있다. 중재자를 활용해서 중재했지 의견을 교환해서 갈등을 해결하지 않았다. 서방은 갈등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깨달아야 할 점은 갈등이 현대 사회의 내재적 요소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유교의 지도자, 군자가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가능하다. 이해관계는 충돌하기 마련이다. 하나의 정치체제가 해결할 수 없다. 갈등을 무시할 뿐이다. 수면위로 떠오르지 못하게 할 뿐이다. 시위가 굉장히 많다.
정치가 국민을 배신하고 있다. 기득권에 대해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기득권자들이 경제의 너무 많은 것을 차지하고 있다. 자신들의 힘을 놓치기 싫어한다. 이런 기득권은 모든 사람들의 번영과 이율배반적이다. 모든 사람이 조화롭게 잘살자와 기득권은 상충된다. 공산당 이념과도 충돌한다.
또한 중국이 빠르게 변할 수 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민족주의는 중요한 요소다. 많은 중국인들이 댜오위다오 문제로 흥분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볼 수 있다. 국가주의다. 국가 국민의 응집력을 가져다 준다. 중국의 이데올로기, 시진핑의 이데올로기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맑시즘이라는 표면 뒤에 덩, 장의 이론 뒤에 공허한 대화만 많다. 응집력 있는 이데올로기는 없다. 중국이 과연 이데올로기가 있는지 모르겠다.
중국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개혁에 반하는 일들도 많다. 현 상태로 혜택을 받는 사람이 많다. 바뀌면 그들의 기득권을 뺏기는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불평등은 심각하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조금 더 내라고 하면 들고 일어난다. 중국의 신흥부자들도 거부할 것이다. 근저의 분쟁을 표면화시켜야 한다. 갈등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한다. 노조, 협회들을 정당화 시키면서 갈등을 표면에서 다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민의 조직, 농민당 지금은 상상 못하지만 1990년대 이익집단으로 논의된 바 있다.

문흥호: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플로어에서 질문을 받았다. 번스타인 교수께 드리는 질문 1개, 토론자 질문 1개가 들어왔다. 번스타인 교수께 드리는 질문이다. 시진핑이 2주 넘는 잠적 뒤에 돌아왔다.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답변해 주십시요.

번스타인: 시진핑이 정말 허리가 아픈지 아무도 모릅니다. 중국정치의 시스템이 낙후됐기 때문입니다. 투명을 표방하지만 세계에 모든 게 괜찮다고 보여주고 있다. 2주 동안 최고지도자가 안보일 수 없다. 만일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주간 실종됐다고 상상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어떤 반향이 있겠습니까. 중국은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 배울게 아직도 많다.

문흥호: 조영남 교수에게 들어온 질문이다. 시진핑이 후진타오처럼 보수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부분을 봤는지 대답해달라. 이희옥 교수는 지도부가 등장한 뒤 한중 관계에 어떤 영향이 있을 지 답을 해달라.

조영남: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에게 엄격한 훈육을 받았다. 시진핑은 발끝부터 머리까지 사회주의자, 혁명가다. 문화대혁명 때 그는 심한 박해를 받았다. 출세하기 위해 하는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신념이다. 관료로서 시진핑을 보면 그는 연해지역에서 20년간 살았다. 정책은 양면적이다. 시장주의적 정책을 펼친다. 홍콩과 대만에서 좋아한다. 정치적으로 대단히 보수적이다. 세 번째, 지난 5년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한 말들을 보면 당 개혁을 외쳤다. 외부에 나가서는 중국의 국가지위를 강조했다. 오소독스한 사회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다.

이희옥: 시진핑 뒤에서 이동률 교수가 사진을 찍은 뒤 시가 사라졌다. 시진핑이 국가 부주석에 취임한 뒤 첫 방문지가 북한이었다. 김정은의 중국방문과 시진핑의 한국·북한 방문은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시진핑 시대에도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중요하다. 시진핑은 두 개의 한국에 주목할 것이다. 외교 진폭을 줄여나갈 가능성도 크다. 우리 내부의 소프트닝 노력이 중요하다. 한중관계는 발전가능성 높다.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에게 물었다. 부시 정부는 한국을 얼마나 생각하나 답해달라고, 미국은 365일 중에 1주일 정도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에 반해 후진타오 비서는 1년 365일 중 북한을 포함해 10일 정도 한반도를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중국은 대국외교를 펼치고,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 그 속에서 한중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추구할 것이다.

정리=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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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