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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 기초과학의 용기 있는 변화

피터 풀데
포스텍 석좌교수
아태 이론물리센터 소장
외국어를 처음 공부하거나 악기를 배울 때, 자동차를 조립하거나 다리와 같은 구조물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다. 탄탄하게 다져진 기초는 더 크게 도약하고,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이는 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한 나라의 기초과학 수준은 국력의 척도가 된다. 한 나라의 기초과학 수준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기초과학에 종사하는 과학자와 연구원들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지 여부다.

 한국은 어떨까? 최근 중앙일보 보도에서 지적했듯 과학자들이 여러 이유로 연구에만 매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은 기초과학 육성을 위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을 시작하면서 긍정적인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그 중심에는 독일의 막스플랑크 협회를 벤치마킹해 2011년 11월 개원한 기초과학 전문 연구 및 지원 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이 있다.

 막스플랑크 협회의 운영철학은 상당히 단순하다. 첫째, 능력 있는 인재를 영입해 그들이 하고자 하는 연구에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둘째, 조급하게 성과를 보채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원칙을 적용한 결과 이 협회는 1948년 이래 17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은 1917년 이화학연구소를 설립하고 기초과학 육성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연 2000편 이상의 논문이 발표되고 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물론 노벨상이 기초과학 연구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벨상은 한 나라의 기초과학 수준을 가늠하는 근거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한국의 과학자들도 한국 과학의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되어줄 기초과학연구원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갖게 됐다. 그런 만큼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창출해 내는 것은 물론 새로운 연구분야에 도전하는 인재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기초과학연구원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려면 연구원 자체의 운영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채근하는 사회 분위기가 우선 바뀌어야 한다. 거친 원석을 갈고 또 갈아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를 얻거나 작은 씨앗을 싹 틔워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해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와, 학자들이 마음껏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과 인프라가 조성돼야만 비로소 기초과학 선진국이 될 수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조성하고 기초과학연구원을 운영하며 브레인 리턴 500 사업을 통해 우수한 두뇌를 유입시키는 등 지금 한국은 용기 있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나는 한국의 이런 변화의 움직임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제 첫 걸음마를 뗀 수준이긴 하지만 한국 정부가 내딛고 있는 용기 있는 발걸음은 고국을 등지고 해외로 나갔던 과학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이 희망찬 발걸음으로 다시 한국을 찾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만큼 시행착오도 많은 법이다. 많이 기대한 만큼 오래 기다려주고, 성과를 바라는 만큼 애정 어린 시각으로 바라봐주면 반드시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인들은 기초과학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브레인 리턴 500(Brain Return 500)=해외 핵심 연구인력 유입 사업이다. 2017년까지 기초과학연구원을 중심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세계 각국의 해외 우수 과학자부터 신진 과학자까지 500명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다.

피터 풀데 포스텍 석좌교수 아태 이론물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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