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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472> 진화하는 산업스파이

고려시대의 문익점, 영국 산업혁명기의 토머스 롬브 의 공통점은 뭘까요? 오늘날로 치면 ‘산업스파이’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199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냉전이 종식하면서 산업스파이는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첨단산업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각국의 ‘제임스 본드’들의 총성 없는 전쟁은 전 세계 곳곳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진화하는 산업스파이의 세계를 들여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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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의 목마가 스파이의 원조

스파이의 역사는 길다. 서양에서는 그리스의 트로이 전쟁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목마’가 스파이의 원조란 설도 있다. 동양에선 전국시대에 쓰인 손자병법에 5종류의 간첩을 쓰는 법이 나온다. 손자는 ‘용간편’을 마무리하며 “간첩이야말로 전쟁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 스파이를 통한 첩보전은 수많은 영화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맥아더 장군이 “가장 빛나는 첩보원”이라고 평가한 소련 시절의 리하르트 조르게(Richard Sorge)는 기자로 가장해 일본의 비밀정보를 빼돌렸다. 그러다 일본 무희와 사랑에 빠졌고 정체가 드러나 처형당했다. 그의 일생은 [스파이 조르게]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속한 MI6는 영국 해외정보국(SIS)의 별칭이다. 이 밖에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소련의 KGB, 이스라엘의 모사드(Mossad) 등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첩보 단체다.

 스파이의 활동 무대는 비단 군사 분야뿐만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개인, 기업, 국가 간의 스파이전도 치열하다. 고려 말기인 1363년 원나라에서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 우리나라로 들여온 문익점도 일종의 산업스파이라고 볼 수 있다. 농경사회에서 새로운 작물이나 품종은 최고의 산업 비밀이었다.

 2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영국의 산업혁명도 산업스파이에서 출발했다. 토머스 롬브는 18세기 초 비단기술을 독점하던 이탈리아 볼로냐의 기술과 공장도면을 빼돌렸다. 품질 좋은 기술을 접한 영국은 신기술을 쏟아냈고 결국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산업스파이가 노리는 건 기술정보

산업스파이의 타깃은 경공업부터 정보산업까지 거의 모든 산업분야를 망라한다. 특히 최근에는 항공, 통신, 컴퓨터 소프트웨어, 바이오, 제약, 에너지 등의 새로운 분야가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보안업체인 시만텍은 2012년 상반기 화학과 제약 부문에 대한 산업스파이의 공격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분석했다.

 [포춘]지가 선정한 1000대 기업 중 56%가 산업스파이에 의해 피해를 봤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신기술의 집합소인 미국의 실리콘 밸리는 산업스파이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전미산업기밀보호협회(ASIA)에 따르면 미국이 연간 산업스파이로 입는 손실은 2002년 590억 달러에서 현재는 25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미국의 듀폰, 모토롤라, GM,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다국적업체가 암호장비, 모바일폰 부품, F-35전투기 장비 등의 기술을 유출당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휴대전화와 반도체, 조선 등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국가로 산업스파이의 핵심 타깃 중 하나다. 지난 6월 삼성과 LG는 2조원 이상을 투자해서 개발한 55인치 TV용 아몰레드(AMOLED) 기술을 산업스파이에게 털렸다. 장비검사업체인 이스라엘 업체 오보텍의 직원이 디스플레이 패널의 장비검사를 하는 척하며 회로도를 몰래 찍어 유출한 것이다. 이들은 빼돌린 기밀자료를 경쟁업체인 중국과 대만 회사로 넘겼다. 아몰레드 기술은 국가핵심산업 기술로 지정돼 향후 5년간 30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검찰은 이스라엘 업체가 홍콩에 산업스파이 활동만을 위한 전담부서를 운영하며 조직적으로 산업기밀을 유출했다고 발표했다. 2005년 쌍용자동차 기술유출 사건과 2007년 LNG선 건조기술 유출 사건, IT산업의 와이브로 기술유출 사건 등도 대표적 사례다. 지난 1월에는 흑표 전차의 설계도를 미국 업체에 유출한 국책연구기관 책임연구원이 적발되기도 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는 최근 7년간 264건의 기술 해외유출로 400조원 이상의 피해를 봤을 것으로 추산했다.

 국내 업체 간 기술 유출을 둘러싼 다툼도 치열하다. 최근 효성과 LS산전은 초고압 변압기 및 차단기 기술 유출 등으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효성의 최고기술경영자(CTO) 출신 임원이 이직하며 영업비밀을 유출했는지를 다투는 것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외 기술유출 건수는 439건으로 2005년 207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M&A 과정에서 유출되기도

산업스파이들에게 가장 큰 유혹은 돈이다. 한 건만 성공해도 1년 내내 벌어야 할 보수를 한번에 챙긴다. 미국의 악명 높은 은행강도 윌리 서튼의 말을 빌리자면 “당신의 회사에 기술이 있고, 그 기술에 돈이 있기 때문에 산업스파이는 끊임없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에 따르면 기술유출동기 중 개인영리가 61%, 금전유혹이 20%를 차지했다. 2006년 삼성전자의 최신 휴대전화기술 유출 미수사건의 범인은 대가로 19억원을 받기로 했었다.

 산업스파이가 모두 전문 스파이는 아니다. 다수의 산업스파이는 옆자리에서 근무하는 동료이거나 내부자였다. 국정원 통계에 따르면 산업기밀 유출의 주체 중 79%가 전·현직 직원이었다. 특히 스카우트 등 이직 과정에서 핵심 정보를 빼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2002년 하이닉스 소속 핵심 인력 50여 명이 중국과 대만 등으로 이직한 사례가 있다. 이들은 스파이카메라 등 첨단 기술을 동원하는 경우보다 주로 신발 깔창이나 벨트 등에 USB 등을 숨기는 단순한 방법으로 손쉽게 산업기술을 훔쳤다. 복사와 휴대가 쉬운 디지털 형식의 자료가 주요 타깃이었다.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산업기밀이 유출되는 경우도 있다. 합법적으로 회사 주인이 바뀌는 것이라 해외로 기밀이 유출돼도 손쓸 방도가 없다. 중국 상하이자동차의 쌍용차 인수가 대표적이다. 2000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려 했던 포드자동차의 경우 기업정보만 입수한 뒤 인수를 포기하기도 했다.

산업스파이에 대한 처벌

우리나라는 산업스파이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 비밀에 관한 법률과 산업기술유출방지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법률은 유출방지 기술의 범위를 넓게 잡아 ‘가치 있는 정보의 유출’을 모두 기술유출로 규정한다. 특히 철강·조선·정보통신 등 8개 분야 49개 국가핵심기술은 따로 특별 보호대상으로 지정하고 있다. 하지만 광범위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산업스파이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산업스파이들이 활개 치는 건 적발되더라도 처벌의 가능성이 낮거나 형량이 적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6~2010년 부정경쟁방지법으로 기소된 927명을 분석한 결과 1심 판결에서 실형을 받은 비율은 4.5%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산업스파이가 집행유예나 벌금형,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이는 산업기술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의 형량 자체가 낮고 기술유출에 대한 피해액 산정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법원은 검찰이 입증할 수 있는 피해액만 인정하고 있는데 첨단 기술의 경우 미래가치 추산에 주관성이 개입하기 때문에 피해액수 산정이 어렵다. 수조원대 기술을 유출하고도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수천만원의 벌금만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업체 입장에서도 산업스파이는 남는 장사다. 연구개발비나 시장조사비를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유출이 적발되더라도 꼬리 자르듯 산업스파이에게 책임을 넘기면 그만이다. 실제로 삼성·LG의 아몰레드 기술을 훔쳐간 이스라엘 업체 본사 직원들은 검찰기소와 법원의 출석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검찰 등 수사기관도 해외업체나 외국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기에 손쓸 방도가 없다. 첨단 기술의 경우 산업스파이를 통해 핵심정보를 획득하면 5년 정도의 기술격차를 순식간에 극복할 수 있기에 경쟁업체 입장에선 엄청난 유혹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최근 19대 국회에서는 산업스파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새누리당의 김도읍 의원이 산업스파이에 대해 5년 이상 징역과 10억원 이상 벌금을 동시 부과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새누리당의 정희수 의원은 산업스파이에 대해 5년간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통합당의 박병석 국회부의장도 기술유출에 대한 형량과 벌금을 강화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처벌 강화가 해결책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산업스파이는 21세기 가장 큰 사업 중의 하나이며,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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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