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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졌던 한국어 학술단체 67개 뭉친다

1935년 1월 조선어학회 회원과 한반도의 각 지역 언어를 대표하는 이들이 모였다. 표준어를 정리하기 위해서다. 사전 편찬에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일제의 탄압으로 사전 편찬은 좌절되었지만, 표준어 작업은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사진 한글학회]




일제 치하 국어학자 탄압 ‘조선어학회 사건’ 70돌
10월 어문단체 연합회 출범
외래어·비속어 등 현안 많아 한글·한자 갈등 거론않기로

10월 들어 한국어 관련 학술단체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한글날이 있어서만이 아니다. 현재 한국어 관련 학술단체는 모두 67개. 이 단체들이 함께 모이는 ‘한국 어문학술단체 연합회’(가칭·이하 연합회)가 결성된다.



 계기는 10월 1일 70돌을 맞는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는 유일한 조선어(한국어) 단체였다. 당연히 한국어 연구자의 구심점이었다. 그런데 광복 이후 67년의 세월이 흐르며 67개의 국어 관련 학회가 생겨났다. 대학·지역에 따라 각각 나뉘고, 세부 전공별로 분화됐는데, 이런 상황에서 연합회가 70년 전 조선어학회가 했던 중심적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합회 결성 실무를 맡은 국립국어원(원장 민현식)의 조남호 어문연구실장은 “영어에 밀려 한국어가 점점 왜소화되고, 방송·인터넷에서 각종 막말 문제가 심해지는데 국어학계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구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 동안 한국어 학술단체는 그리 잘 모이지 못했다. 되레 심각한 갈등양상을 보였다. 주요 요인으로는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을 둘러싼 논란이 꼽힌다.



 조 실장은 “한글 전용이냐, 한자 혼용이냐는 문제에 얽혀 연구단체들이 서로 왕래조차 하지 않았는데, 새롭게 출범할 연합회에서는 한글-한자 갈등 문제는 거론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조선어학회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시기, 민간단체인 조선어학회의 한국어 연구는 단지 언어 정비 차원이 아니었다. 국어복원을 통한 일종의 민족운동이었다.



 사건은 1942년 10월 1일 조선어학회(현재의 한글학회 전신) 회원 33인이 종로경찰서에 연행되면서 시작됐다. 조선어 사전 편찬에 관여했던 학자들이다. 외솔 최현배·일석 이희승 선생 등 근대 한국어 연구의 초석을 놓은 이들이 대부분 포함됐다.



 조선어학회가 추진한 언어연구의 마지막 목표가 사전 편찬이었는데, 완성된 원고를 압수당했고 체포된 인사들은 함흥형무소로 이송됐다. 국어학자 검거는 43년까지 이어졌다. 주요 학자들이 징역 6년에서 2년을 선고받았고, 사전 편찬도 중단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조선어학회는 오늘날 한국어 연구단체의 모태로 자리잡게 된다. 연구는 해방 이후 계속돼 57년 『우리말 큰사전』 발간으로 첫 결실을 맺었다.



 ◆한글-한자 단체도 참여



조선어학회 사건 70돌을 되새기면서 연합회 창립을 겸하는 학술대회가 국립국어원 주최로 10월 12일 열린다. 조선어학회 행사는 한글학회(회장 김종택)가 주관하고, 연합회 행사는 창립준비위원회(위원장 정병헌)가 주관한다. 장소는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예정돼 있다.



 현재 국어국문학회·국어학회·국제한국어교육학회·이중언어학회·한국국어교육학회·한국어교육학회·한국어문교육연구회·한국어문학회·한글학회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단체가 참여의사를 밝혔다. 한글 전용을 중시해온 한글학회와 한자 혼용을 강조해온 한국어문교육연구회도 모두 동참한다.



 정 준비위원장은 “조선어학회 사건은 한글이냐 한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어를 지키자는 운동이었다. 그 정신을 기리며 연합회를 발판으로 미래의 한국어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찾아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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