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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들이민 ‘언디자인’의 도발

모처럼 독서를 하기 위해 카페에 들렀다. 표지에 편집자 이름을 저자 이름과 병행해서 표기했다는 이유로 출간과 동시에 화제가 되었던 김수영을 위하여를 들고. 책을 열자마자 철학자 강신주의 흡인력 있는 문체가 시인 김수영으로 빠져들게 한다. 김수영이 살아왔던 행적을 따라가 본다. 격정적이면서도 호소력 있는 문장들이 시인의 삶으로 향하는 잘 닦인 아스팔트길이 된다. 한참을 잘 달리다가 난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춰야만 했다. 1968년. 시인이 죽은 해다.

시대를 비추는 북디자인 ⑧티보 칼만

투철한 비판정신으로 참여시인이라 불리던 김수영이 떠난 해가 68년이라니. 역사에서는 상징적 시점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일까. 난 ‘68’이란 연도와 함께 한 명의 급진적 디자이너를 떠올려야만 했다. 바로 티보 칼만(작은 사진)이었다. 칼만은 49년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전 세계에 걸쳐 인권과 반전 그리고 평화를 위한 진보적 지식인과 노동자 계급, 그리고 학생의 목소리가 드높아졌던 60년대 뉴욕에서 SDS라는 급진적 학생 운동 단체에 가담해 ‘68혁명’의 물결에 합류했다. 당시 그는 뉴욕대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었으며 쿠바 혁명을 지지하기 위해 쿠바에도 다녀오기도 했다. 68년부터는 뉴욕의 한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후에 이 서점은 미국의 대형 서점인 반스앤노블로 성장한다.

칼만의 행보는 초기부터 이단적이었다. 디자이너였지만 디자인을 비판했고, 기업 관련 디자인으로 성공했지만 자본을 혐오했다. 세상의 메커니즘을 일찍이 간파한 그는 보이지 않는 이면의 삶과 이야기를 누설하고자 거칠고 용기 있는 행동을 자처했다.88년 AIGA(미국그래픽아트협회) 콘퍼런스에서 AIGA 기업상을 수상했던 에스프리란 의류업체의 노동력 착취 실태를 고발했다. 90년엔 기업 친화형 디자인을 실천해 나간 디자이너 조 더피를 위선적이라고 힐난했다. ‘칼만-더피 논쟁’이라고도 불리는 이 유명한 사건은 더피 디자인 그룹이 월스트리트저널에 낸 광고에서 촉발됐다. 칼만은 이 광고의 카피가 더없이 기업 친화적이고 위선적인 디자인 행위를 드러냈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그는 “더피는 쓰레기를 금으로 포장해 그것이 마치 멋지고, 가치 있도록 보이게 한다”고 했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의 한복판에서 디자이너로서 살아가는 칼만도 더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논쟁을 지켜본 디자이너 마이클 베이루트는 “양심이 있고 없고의 차이”에 불과하다며 중립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칼만은 타고난 행동가이자 선동가였다. M&Co라는 디자인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한 지 11년이 되는 해인 90년에 그는 자신의 선동가적 기질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매체를 만나게 된다. 베네통 잡지 ‘컬러스’였다. 이미 베네통은 사진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두고 도발적인 광고 캠페인을 전개해 나가고 있던 중이었다. 신부에게 키스하는 수녀, 죽음을 기다리는 에이즈 환자, 백인 아기를 안고 있는 흑인 여인 등 토스카니가 지휘하는 광고 한 편 한 편은 편견과 금기에 대한 반란이었다. 칼만은 토스카니의 제안을 수락하고 편집장 겸 아트디렉터로 베네통의 도발적 문화 캠페인에 함께하게 된다.

칼만은 93년 로마로 이주하면서 ‘컬러스’ 작업에 더 집중했다. 창간호(4)부터 13호까지 토스카니의 지원과 칼만의 정치문화적 비전이 빚어낸 이 잡지는 사진으로 풀어낸 신랄한 문화비평이었다. 지구촌의 청소년층을 주 독자로 한 만큼 칼만은 사진이라는 ‘보편적 언어’를 잡지의 핵심 언어로 채택했다. 그리고 사진이 중심이 되는 ‘세상의 나머지에 관한 잡지’를 만들게 된다.

잡지는 충격과 날 선 비판의 연속이었다. 4호(1)에선 누드의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을 앞세움으로써 인종주의를 건드리는가 하면, 9호에서는 쇼핑과 관련된 현대 사회의 소비문화를 날카롭게 해부(5)했고, 11호에서는 에이즈를 진단했다. 압권은 인종주의 호에 실렸던 ‘만약에(what if)’라는 시리즈였다. 흑인으로 돌변한 엘리자베스 여왕(2), 동양인 모습의 교황 바오로 2세, 백인 피부의 마이클 잭슨(3)까지 칼만의 발상에서 빚어진 인종주의에 대한 공격은 우리의 무의식에 자리한 편견을 집어낸 날카롭고 세밀한 집게였다. 60년대 학생 운동 시기부터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까지 그는 언제나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운동가이자 실천가였던 셈이다.

99년 그는 림프암으로 세상을 떴다. 칼만의 삶은 기존 통념과의 싸움이자 전복이었다. 디자이너인 그를 수식하는 핵심 키워드가 ‘언디자인(undesign·엘리트적이고 상업적인 디자인에 반대하는 디자인)’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기존에 통용되는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그의 전복적인 디자인관을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언디자인’이라는 반어법은 칼만이 꿈 꾸는 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선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개념은 여전히 지금도 이 나라에서 유효하다. 동대문부터 용산까지 디자인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권력과 자본의 산물들. ‘언디자인’은 칼만으로부터 이제 우리가 빌려 써야 할 기존 디자인에 대한 대안적 개념이 아닐는지.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를 다시 찾아본다. 한 화가의 풍경 그림 밑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날 선 시인은 자기만의 풍경을 그린다. 그래서 시는 불친절하다.” 그러고 보니 칼만도 시인에 가까웠구나 싶다. ‘언디자인’을 통한 전복의 풍경을 그렸고, 그것은 많은 이들에게 불친절한 진실이었다. 상처와 치부를 찌르는 불친절하고 꽤 아픈 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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