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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기적 ... 한 해 관광객 31만서 150만으로

1 관람객들이 미디어기자박물관에서 한국보도사진전 역대 수상작을 살펴보고 있다.
“처음부터 지역 주민과의 교류에 승부를 걸었어요. 미디어의 속성, 기자가 하는 일이 결국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거잖아요. 포털사이트에 동네 카페를 만들고 어르신들 모습과 동정을 자주 올렸죠. 대도시 사는 자식, 손주들이 보고 연락하니까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더군요.”중앙 일간지 사진기자 출신으로 영월군에서 미디어기자박물관을 운영하는 고명진(61)씨의 말이다.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광전리. 평창강(서강)에서 멀지 않은 풍광이 꽤 아름다운 마을이다. 지금은 도로와 다리가 잘 정비돼 있지만, 십수 년 전만 해도 나룻배를 타야 인근 마을과 겨우 연결되던 산골이다.

탄광촌이 문화촌으로, 영월군의 변신

고씨는 부인 김영숙(57)씨와 함께 2011년 2월 이곳에 내려왔다. 연고는 없었지만 여행 중 눈에 들어왔던 영월의 매력에 빠져 여생을 보내고자 마음 먹었다. 귀농자를 위해 영월군에서 운영하는 농촌대학에 1년 이상 다니며 현지 사정을 익혔고, 이웃들도 사귀었다. 그러던 차에 한 폐교가 눈에 들어왔고, 지난 5월 영월군의 시설 지원을 받아 미디어기자박물관을 개관했다. 영월군에서 폐교를 리모델링해 고씨에게 제공했고, 고씨는 평생 사진기자의 전공을 살려 박물관 전시관을 알차게 채웠다.

이 과정에서 농촌대학 시절 인연을 맺은 김철산(65)·김헌식(55)씨 등이 큰 도움이 됐다. 서울에서 기계 제작업을 하다 6년 전 귀농한 김철산씨는 농사일과 함께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서각 실력이 수준급이다. 그는 박물관 현판을 서각으로 만들어 고씨한테 제공했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 8년 전 영월로 와 소나무를 키우는 김헌식씨도 박물관 조경을 꾸미는 데 기꺼이 힘을 보탰다.

2 도자기 전시와 체험을 할 수 있는 쾌연재도자미술관. 3 세계민속악기미술관도 실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4 인도미술 박물관의 조각상 전시실. 영월=조용철 기자
고씨는 “지금 자리에 박물관을 만들기로 결심한 한 뒤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정성을 들였다”고 말했다. 늘 카메라를 들고 웃는 얼굴로 다니는 고씨의 친근함에 마을 사람들도 마음을 열었다. 고씨는 “지난 5월 개관을 며칠 앞두고 잡초가 무성해 고민 중일 때 마을 주민들이 새벽부터 예초기를 들고 와 풀을 잘라내 줬다”며 고마워했다. 박물관에는 본인이 수집하고 기증받은 자료와 유물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초기엔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 반발
영월군에는 미디어기자박물관 같은 사립 박물관이 17곳이나 된다. 그중 5곳이 올해 문을 열었다. 군에서 운영하는 공립 박물관도 7곳, 모두 24개가 운영 중이다. 지자체당 박물관 수가 평균 1곳이 채 안 되는 우리나라에서 단연 돋보이는 수치다. 박물관 구성도 다채롭다. 조선민화박물관·묵산미술박물관·쾌연재도자미술관·사진박물관 등 미술 관련 박물관이 주축을 이루지만, 호야지리박물관·곤충박물관·화석박물관·동굴생태관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박물관들이 있다. 최근에는 곰인형박물관도 문을 열어 관객층을 넓히고 있다.

박선규(55) 영월군수는 “한때 광산도시로 번창하다가 무서운 속도로 쇠락하고 폐허화하는 영월을 살리기 위해 고민이 많았다”며 “기존의 관광자원과 연계해 관광객들이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데 박물관이 적절하다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인구가 줄면서 학생 수도 줄고, 자연스레 폐교가 자꾸 생겨나던 상황도 역이용했다. 2006년 취임한 박 군수는 “취임 초 민간에서 주도해 폐교를 활용해 만든 박물관이 몇 곳 있었다”며 “큰 시설 투자 없이도 더 발전시키면 군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박물관 사업이 호응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상당수 지역 주민이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박물관이냐’며 반감을 보였다. 이런 여론을 다독이고 바꾸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는 게 박 군수의 얘기다.이제 그 효과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2004년 한 해 31만 명 정도였던 영월 관광객(박물관 및 유료 관광지) 수가 지난해 150만 명으로 늘었다. 박 군수는 “박물관 입장료 수입은 아직 미미하지만 박물관에 온 분들이 모두 영월에서 식사, 숙박, 쇼핑 등을 하며 돈을 쓰고 간다. 경제 유발효과도 상당하다”고 자랑했다. 이어 “박물관 등 문화사업은 경제와 동떨어진 게 아니다. 농업·산업과도 접목될 수 있다. 또 영월이 얻은 브랜드 가치도 만만찮다”고 말했다.

전시 질 높이는 등 내실 다져야
영월군은 현재 24개인 박물관 수를 2015년까지 총 30개로 늘릴 계획이다. 요즘은 박물관 도시로 이름이 나면서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제안들이 빗발쳐 옥석을 가리기 쉽지 않을 정도다. 좋은 제안은 엄선해서 지원을 할 방침이다. 가령 영월군 주천면(酒泉面)의 옛 지명이 ‘술샘’인데, 술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이곳에 술 문화와 관련된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게 그 예다.하지만 박물관 증설 과정이 모두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워낙 짧은 시간에 수가 늘어나다 보니 유기적인 연계가 안 되는 등 빈틈도 보인다.

우선 박물관마다 질적 수준이 천차만별인 점이 거슬린다. 대부분의 사립 박물관이 설립자가 평생 모은 자료나 유물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설립자의 손을 떠나도 장기적으로 박물관이 생존하려면, 지속적으로 전시의 질을 높이고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영월 책 박물관’ 폐관 사례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영월 책 박물관은 서울 인사동에 있는 고서점 ‘호산방’ 대표 박대헌 관장이 1999년 문을 연 영월군 1호 박물관이다. 당시 쓸모 없이 방치됐던 폐교를 박물관으로 재활용하겠다는 아이디어도, 제대로 된 박물관이 되려면 자료만 쌓을 게 아니라 세련된 기획·디자인과 홍보를 통해 잠재 관객들의 문화적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는 전략도 박 관장이 처음 시도했다. 하지만 이 박물관은 이제 영월에 없다. 2006년 영월군이 책마을 사업을 시작하면서, 정작 책 박물관과 사전 협의가 없었던 점이 계기가 됐다. 당시 박 관장은 박물관을 휴관했고, 이런저런 협의와 갈등이 반복되다가 결국 2010년 폐관했다.

박씨는 “박물관 운영자와 지역사회, 외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문화 생태계의 구성은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영월군의 처사를 비난했다.
미디어기자박물관처럼 최근에 영월에 새로 문을 여는 박물관들이 지역사회와의 관계 맺기에 적극적인 것은 그래서 고무적이다. 올해 5월 문을 연 인도미술박물관도 지역주민과의 교류에 신경을 쓴다. 박물관 터인 옛 금마초등학교 동문들의 연례행사인 가을 운동회도 예전처럼 계속 열 예정이다. 주천면 금마리 이운희(65) 이장은 “박물관 터는 오래전 마을 공회당이었고, 마을 사람들과 자녀들이 다닌 금마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라며 “추억이 어린 곳이 폐허가 되지 않고 깨끗하게 박물관으로 단장돼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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