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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난 주목받고 싶다

노인은 어안이 벙벙해서 신문기자가 술에 취한 거라고 생각하고는 말했다. “그만두게, 잠꼬대는.”
“천만에요. 저는 지금 라로슈 마티외가 내 아내와 간통하는 현장을 붙잡고 왔습니다. 경찰관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장관은 이제 끝입니다.”

강신주의 감정 수업 <20> 야심

왈테르가 몹시 놀라 안경을 이마 위로 추어올리고 물었다. “나를 놀리는 건 아니겠지?”
“천만에요. 전 지금부터 그것을 기사로 쓰려고 합니다.”
(…)
사장은 그래도 이해할 수 없는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자네 부인은?”
“날이 새면 곧 이혼 소송을 제기하겠습니다. 그 여잔 죽은 포레스티에(사별한 전 남편)에게 되돌려 주겠어요.”
(…)

왈테르씨는 벌린 입을 닫지도 않고 겁먹은 눈으로 뒤루아를 보면서 생각했다. ‘정말, 이놈을 잘 키우면 써먹을 만하겠는걸’. 왈테르 영감은 안경을 이마에 올려 걸치고 눈을 드러낸 채 여전히 그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응, 이 녀석은 출세하겠어, 이 악당은’.

방금 읽은 장면은 모파상의 장편소설 『벨아미(Bel Ami)』에서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출세에 목마른 뒤루아가 지금까지 자신의 기자 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돕던 아내 마들렌을 간통죄로 고소해 내치고는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마들렌의 치마폭은 지금까지 그의 성장을 도와주었던 인큐베이터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뒤루아로서는 마들렌을 제거하는 건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웠다. 지금껏 자신이 묵인했던 마들렌과 외무장관 라로슈 마티외의 밀애를 폭로하는 것만으로 그의 목적은 쉽게 달성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성공과 출세를 위한 새로운 제물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마들렌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먹잇감은 누구인가? 파리 정계를 쥐락펴락하던 영향력 강한 신문 ‘라 비 프랑세즈’의 사장인 왈테르 영감의 딸 쉬잔이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목표물을 손에 넣는 것도 뒤루아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신은 그에게 윤리적 성품이나 냉정한 지성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파리의 거의 모든 여성을 홀릴 만한 매혹적인 외모와 화술을 주었으니 말이다. 뒤루아의 별명이 ‘벨아미’, 그러니까 ‘아름다운 애인’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느 여자가 뒤루아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골뜨기에 불과한 뒤루아가 능력 있는 미모의 기자 마들렌과 결혼한 것도, 심지어 왈테르의 부인이자 쉬잔의 어머니인 비르지니마저 자신의 정부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의 잘생긴 외모 덕이었다.

모파상의 소설 『벨아미』는 19세기 최고의 도시 파리에서 외모에 빠져드는 여성들과 출세와 성공에 눈이 먼 남성들이 펼치는 화려하지만 덧없는 군무들을 묘사한 작품이다. 여기서 순수한 사랑이란 인간사를 이해하지 못한 철없는 사람들이나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뒤루아가 여성들의 지위와 신분을 이용하려는 것이나, 뒤루아에게 매혹된 여성들이 그와 팔짱을 끼고 산보나 파티에 참여하고 싶었던 것도 모두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과는 무관한 욕망, 즉 야심 때문이었다. 이런 명예욕은 둘 이외에 제 3자를 전제하고 있는 사회적인 감정이다. 그러니까 잘생긴 남자나 높은 지위를 가진 여자를 소유하려는 욕망의 이면에는 희소성을 추구하는 사회학적 원리가 이미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잘생긴 남자를 애인으로 두는 순간 다른 여성들의 시샘을, 또한 높은 지위를 가진 여자를 애인으로 두는 순간 다른 남자들의 부러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순수한 사랑, 그러니까 일체의 야심이 개입되지 않은 사랑이란 과연 존재할까? 스피노자라면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야심(ambitio)이란 모든 정서를 키우며 강화하는 욕망이다. 그러므로 이 정서는 거의 정복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어떤 욕망에 묶여 있는 동안에는 필연적으로 야심에 동시에 묶이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말했다. 가장 고상한 사람들도 명예욕에 지배된다. 특히 철학자들까지도 명예를 경멸해야 한다고 쓴 책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는다고.”(스피노자의 『에티카(Ethica)』중)

스피노자의 이야기를 읽는 순간, 우리는 서글퍼지지 않을 수 없다. 아! 사랑에도 이미 야심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구나. 그래서일까.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사랑의 행복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자신의 행복을 알려 모든 사람으로부터 주목받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 대부분은 항상 행복한 상태에 있지 않으니, 행복한 사람은 그만큼 주목받기에 충분할 것이다.

외모를 미끼로 여성을 유혹해 그녀의 지위를 바탕으로 출세하려는 뒤루아, 그리고 잘생긴 외모를 가진 남자를 얻어 자신의 행복을 과시하려는 여성들. 『벨아미』에 등장하는 모든 군상은 기본적으로 야심의 화신들이다. 이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감정 속에서 모파상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사랑에서조차 야심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통제하면 할수록 순수한 사랑이 가능해진다는 것, 바로 그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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