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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멋 들지 않은 조화로운 맛 입 안에 한가득

1 생면으로 만든 페투치니(Fettuccine)에 프로슈토, 올리브, 토마토 등을 올리브 오일 소스로 버무린 파스타.
베네치아를 갔을 때 관광객들에게 떠밀리는 거리를 피해 혼자 골목길을 이리저리 걷다가 어느 조용한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웬걸, 맛이 아주 훌륭했다. 김이 모락모락 날 것 같은 따뜻한 파스타는 ‘집 밥’ 같은 느낌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편안하고 충실한 맛. 혼자 하는 여행에서 외로움을 달래주는 위안이 됐다. 미슐랭 별점이나 가이드 북의 맛집과는 거리가 먼 소박한 식당이었지만 내겐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됐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3> 파스타 전문 ‘디미’

얼마 전 서울에서도 이런 곳을 하나 찾았다. 바로 ‘디미’라는 곳이다. 경복궁 돌담길 옆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카페 겸 파스타 식당이다. 매일 반죽을 해서 만들어내는 생면 파스타로 현란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본 재료의 맛에 충실한 요리를 만들어 낸다. 이곳의 파스타 요리는 집에서 만들어주는 것같이 편안하고 따뜻한 맛이었다. 기억에 남는 강한 맛은 없지만 재료들이 골고루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입 안을 꽉 채워준다.

2 디미 2층에서 바라보이는 전경. 경복궁 돌담과 나무가 어우러진 전망이 아름답다. 3 디미 1층 내부 전경. 1층은 주로 카페, 이층은 식당으로 쓰인다.
이곳은 낙천적이고 유쾌한 아가씨 두 분이 직접 요리를 하면서 운영하는 곳이다. 이희재(33)·안지윤(32)씨다. 요즘 유학파 오너 셰프들이 문을 연 이탈리아 식당들이 많아서 이 분들도 그런 분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좀 거리가 있었다. 알고 보니 유학은 고사하고 요리를 전공한 적도 없었다. 그저 몸으로 때워가면서 독학으로 하나씩 이런 맛들을 찾아온 것이었다.

두 분 모두 미대 출신이다. 한 분은 음식 관련 스타일리스트, 또 한 분은 식품 관련 디스플레이 일을 하면서 ‘식 공간 연출’ 공부를 대학원에서 했다. 석사학위를 받고 전공 관련 일을 하려고 보니 아직은 생소한 분야라 일자리도 많지 않고 전문성도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차라리 자신들이 회사를 만들겠다고 시작한 공간이 다섯 평 정도의 작은 사무실이었다. 일 때문에 주방 시설을 만들어 놓았는데 일거리도 많지 않아 재미 삼아 지인들을 상대로 원테이블 레스토랑을 시작했다. 둘 다 모두 음식에 나름 솜씨가 있었고 맛집도 많이 돌아다녀서 음식 센스가 있다고 자부하는 터였다. 하나씩 공부해 가면서 음식을 만들어 갔다. 그러다가 맛을 인정받으면서 차츰 소문이 났고 그러기를 4년 만에 이렇게 작지만 정식 음식점을 꾸리게 됐다.

‘맨땅에 헤딩’한 사람들이 다 그렇듯 이분들 역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스토리들이 있었다. 원테이블 레스토랑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일단 예약을 먼저 받고 나서 미리 메뉴들을 다 만들어 자신들이 맛을 보면서 준비하는 무모한 방식을 사용했다. 그것 때문에 밤을 새우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테이블 밑바닥에 은박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한 일도 많았다고 한다. 오믈렛 맛을 제대로 내겠다고 계란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거의 일 년 동안 오믈렛을 먹은 적도 있단다.

일 년 정도 열심히 노력해 어느 정도 메뉴도 개발하고 자리를 잡았는데 음식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잘하고 있는지 자신감이 없었단다. 그래서 아예 식당 문을 닫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한 달 동안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본고장에 가서 확인해 보고 나서는 자신들이 나름 잘하고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고 다른 아이디어도 많이 얻게 되어서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된 전환점으로 삼았단다.

‘디미’는 음식의 맛을 알아간다(知味)는 뜻에서 만든 이름이란다. 지미(知味)의 고어식 발음이다.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라고 하는 17세기 한글조리서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이름 속에 두 사람이 그동안 겸손하게 열심히 노력해 온 과정들이 녹아 있었다. 독학으로 이렇게 충실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맛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참 대단하다.
가을이어서 더욱 호젓한 경복궁 돌담길 따라 영춘문 옆에는 있는 듯 없는 듯 ‘디미’가 있다. 유쾌한 아가씨 사장님 두 분이 그동안 맨주먹으로 배운 맛있는 파스타를 따뜻하게 만들어 줄 준비를 하고 있는 곳, 작지만 정겹고 편안하다. 갈수록 거창한 학력과 배경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서울에 이런 소박한 곳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무한경쟁으로 지친 우리가 위안을 받으며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디미(DIMI)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1-1 (전화 02-730-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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