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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놀이터 ① 건축가 양진석의 아지트 용산 ‘전자쌀롱’

시리즈 ‘나의 놀이터’를 시작합니다. ‘잘 놀기’로 소문난 사람들의 노는 공간입니다. 그들이 놀이로 성취감과 해방감을 만끽하고, 일터에서 발휘할 새 힘을 키우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놀이터를 통해 경쟁에 치여, 삶이 바빠 잊고 살았던 ‘나의 놀이터’를 되살려 보려 합니다.



지난 12일 오후 8시 서울 한강로동 전자랜드 용산점 지하.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만화가·회사원·디자이너·CF감독…. 직업도, 나이도, 스타일도 제각각인 이들은 건축가 양진석(47) 와이그룹 대표의 ‘친구’들이다. 양 대표의 ‘번개’모임 제안에 발걸음도 가볍게 찾아왔다.

전자랜드 지하엔 양 대표의 아지트 ‘전자쌀롱’이 있다. 지난해 11월 그가 만든 그의 놀이터다. 음악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음악하며 놀고 싶어 만든 곳이다.

‘전자쌀롱’에 오면 건축가 양진석씨는 어린아이처럼 발랄해진다. 무대에 올라가 노래도 부르고, 지인들과 허물없는 술자리도 갖는다. 마음이 동할 땐 음향조정실로 올라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며 DJ 노릇도 한다.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양진석 대표는 자신의 직업을 말할 때 늘 “건축가 겸 싱어송라이터”라고 한다. 음악은 양 대표의 삶에서 생업만큼이나 중요한 축이다. 독학으로 피아노를 익혀 중학생 때부터 작곡을 했고, 대학생 땐 밴드 ‘노래그림’을 만들어 앨범까지 냈다. 솔로 앨범도 1995년 1집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다섯 장이나 발표했다. 일본 유학 시절에도 곡을 쓰고 공연장을 찾는 일을 쉬지 않았다. 양 대표에게 음악은 취미였고, 휴식이었고, 놀이였다.

그랬던 그가 ‘놀기’를 멈춘 적이 있다. 2001년 3집 앨범을 낸 뒤 7년 동안이다. 일이 너무 바빴다. “일에 치여 앞이 어딘지 뒤가 어딘지도 몰랐던 때”였다. 매일 회의에, 술자리에, 개인 생활이 없었다. 주말이면 현장에 나갔다.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인데, 점차 멀어졌다.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쓸 감성이 남아있지 않았던 거다. “차 안에서도 그냥 조용히 있고 싶어 음악을 틀지 않았어요.”

생활이 변하니 몸도 변했다. 살이 쪘다. 1년에 1㎏씩, 그 7년 동안 몸무게가 꼭 7㎏ 불었다. 늘 피곤했고, 여기저기가 아팠다. 정신도 늙어갔다. 명예와 돈이 인생의 전부 같아 보였다. “돈 많이 벌어 별장 사고, 요트 사고, 스포츠카 사는 인생이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허례허식도 많아졌다. 300만~400만원짜리 ‘명품’ 양복을 입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 신용카드 결제를 하면서 액수를 보지 않고 사인을 했다. 문득 정신을 차린 게 2008년이다. 양 대표는 “마치 재벌인 척하는 내 모습에서 ‘꼰대’를 보았다”고 말했다. 구태의연한 생각, 창의력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꼰대.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나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나 신선하고 문화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사람이었는데….”

다시 음악을 하기로 했다. 일정표에 작곡할 시간을 따로 집어넣었다. 대신 게임이나 인터넷 서핑 등으로 흘려버리는 시간을 없앴다. 2007년 태어난 딸이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보고 노랫말을 썼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댈 사랑한다 말한다면 어때/난 정말 이제 그댈 너무 사랑한다고 말하고 말하고 싶은 건데(…) 거침없이 너에게로 달려가보자/드디어 우리 생애 최고의 날을 만들자(…)”. 딸 유진이는 지금도 이 노래 ‘센티멘탈 러브’를 제일 좋아한다.

1년 동안 만든 곡을 모아 2009년 4집 앨범을 냈다. 그 해 ‘양진석 밴드’도 만들었다. 65년생 양 대표를 88~91년생 밴드 멤버들이 “형”이라고 불렀다. 양 대표의 삶은 다시 젊어졌다.

“연습 끝나고 다섯 명이 홍대 앞에서 고기를 실컷 먹었는데 8만원이 나오더라고요. 화폐 단위가 달라진 거죠. 마음까지 겸허해졌어요.”

동네 옷가게에서 4만5000원짜리 셔츠를 사 입고 만족스러워한 것도 그 즈음이다.

1 잡지를 찢어 붙여 장식한 좌식 탁자들. 언젠가 바닥에 앉아 술 마실 때 쓸 요량이다. 2 건축가 겸 싱어송라이터 양진석씨. “내게 건축이 좋으냐, 음악이 좋으냐는 질문은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와 같다”고 말했다. 3 무대 뒤 출연자 대기실. “공연 전 긴장된 기분이 좋다”는 양씨는 “그래서 이곳이 가장 애착 가는 공간”이라고 했다. 4 그동안 ‘전자쌀롱’에서 열린 공연 포스터.

지난해 11월 양 대표가 마련한 공간 ‘전자쌀롱’은 술집 같기도 하고, 클럽 같기도 한 곳이다. 오후 2시에 문을 열어 새벽까지 술을 팔고, 안주를 팔고, 음악을 들려준다. 노래방 시설도 돼 있어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주말에는 공연 장소로 빌려준다.

“원래 PC 게임방이었다는데, 2년 정도 비어있었어요. 덕분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임대할 수 있었죠.”

음향·조명 기기는 쌈지에서 운영하다 문을 닫게 된 홍대 앞 라이브클럽 ‘쌤’에서 가져왔다. 양 대표는 660㎡(200평) 공간을 공연장처럼, 포장마차처럼 꾸몄다. “용산과 원효로 지역의 새로운 문화메카가 됐으면 좋겠다”는 포부도 있다. 그동안 밴드 ‘장미여관’ ‘게이트플라워즈’ ‘해리빅버튼’ 등의 공연이 70여 차례 열렸다. 하지만 아직 수익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양 대표는 “정확한 액수는 비밀”이라면서 “지금까지 ‘전자쌀롱’에 억대의 돈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을 아지트 삼아 노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닥친 일을 한발 떨어져 보는 여유를 얻었다. 양 대표는 “인생, 애걸복걸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며 “내려놓을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더라”라고 말했다.

놀이에는 창의성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었다. “풀어지는 분위기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게 양 대표의 경험담이다. 이날 ‘전자쌀롱’에 모인 사람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웹툰 ‘무규칙 여행기’로 유명한 만화가 ‘빡세’ 박민호(34)씨는 “요즘 내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내가 즐거워질 것인가’다”라며 “내가 내 즐거움부터 찾아야 독자들도 즐겁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합석한 건축가 윤재민(41)씨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우리도 그래요. 내가 즐거워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질걸요.”

양진석 대표=건축·디자인 회사 ‘와이그룹’ 대표. 성균관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고 일본 교토대에서 석사 학위를, 안양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MBC-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러브 하우스’에 출연해 일반인들에게 얼굴을 알렸으며, 용평리조트 더 포레스트 레지던스,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 명월관, 잠실 더 샾 스타파크 등을 설계했다. 2004년 바이올리니스트 김주현(36)씨와 결혼해 다섯 살 난 딸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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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