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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가 살 길이다 신약 앞세워 해외로

국내 제약산업은 최근 몇 년간 시련의 연속이었다. 리베이트 규제로 영업환경은 바뀌면서 판매가 점점 어려워졌다. 지난 4월부터는 새 약가정책으로 의약품 가격이 평균 14% 떨어지면서 수익률이 악화됐다. 여기다 의약품을 만드는 원료까지 올라 경영 압박을 더했다. 약을 만드는 비용은 더 많이 드는데 예전보다 더 힘들고 싸게 판매하게 됐다는 것. 회사의 경영상황은 악화될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올해 상반기 국내 제약업계의 경영성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JW중외제약 연구진이 실험실에서 혁신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고 있다. [사진 JW중외제약]

 상장 제약기업의 영업이익은 3951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7.1% 줄었다. 결국 지속된 경영난에 적자를 낸 기업이 수두룩하다. 대다수 제약사는 매출은 기존 수준을 유지했지만, 수익성이 줄어 어려움을 호소한다. 힘들게 팔아도 남는 것이 별로 없는 내실 없는 경영을 했다는 의미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매출 상위 10대 제약사의 매출액은 2조8000억 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3% 남짓 증가했다. 하지만 성장세는 2010년 이후 매년 줄고 있다. 성장 동력이 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래도 불투명하다. 국내 제약사의 든든한 자금줄 역할을 해왔던 복제약(제네릭) 개발도 예전보다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FTA를 통해 발효될 ‘허가-특허 연계제도’로 특허권자의 동의·묵인 없이는 복제약을 판매할 수 없게 됐다. 그동안 국내 제약업계는 오리지널 신약의 특허가 끝나기 전에 복제약 개발에 착수해 특허가 종료되는 시점에 제품을 출시해 왔다.

 이알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제약사 대부분이 리베이트 쌍벌제와 약가인하 여파로 영업이익이 하락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며 “국내 제약산업은 상위 제약사 위주로 구조조정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약사 국내는 좁다…해외로 해외로=벼랑 끝에 몰린 제약사가 주목한 것은 혁신 신약과 해외 진출이다. 국내 상위 제약사들은 복제약의 굴레에 벗어나기 위해 신약개발에 매진해왔다. 더 이상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 의약품 시장을 공략해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하겠다는 전략이다. 물론 혁신 신약을 개발해 상품화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도 낮다. 하지만 일단 상업적으로 성공해 글로벌 블록버스터 제품으로 이름을 올린다면 단숨에 글로벌 제약사로 클 수 있다.

 실제 2008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의약품인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화이자)의 매출액은 연간 130억 달러다. 이 같은 수치는 현대차 아반떼 약 100만 대 수출과 맞먹는다. 영국의 제약컨설팅사인 URCH에 따르면 한 해 의약품 시장 매출액의 3분의 1은 이들 혁신신약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신종플루 같이 새로운 질병이 나타나면서 제약산업은 사회·경제적으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제약사들이 R&D 투자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07년 기준으로 글로벌 1위 제약사인 화이자는 매출액의 16.7%(80억 9000달러)를 신약개발을 위한 R&D에 투자하고 있다.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SK)는 14.6%(66억 6000달러)를, 사노피아벤티스는 16.2%(62억 2000달러), 노바티스 16.9%(64억 3000달러), 아스트라제네카 17.5%(51억 6000달러), 머크 20.2%(48억 8000달러), 일라이 릴리 18.7%(34억 9000 달러)였다.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R&D로 재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도 제약산업 육성을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는 녹십자·JW중외제약·LG생명과학·SK케미칼·종근당·동국제약·현대약품 등 43개 국내 제약회사를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했다. 최근에는 2020년 글로벌 제약 7대 강국을 목표로 제약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국내 제약사 중에서도 글로벌 제약사가 나올 때가 됐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연구개발(R&D)을 통한 기술혁신 ▶제약의 글로벌 경쟁규모 실현 ▶수출을 통한 시장 확대 및 유통구조 투명화 ▶규제·제도의 예측성 제고 ▶인력양성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집중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다국적 제약회사로 성장하기 위한 국내 제약기업의 도전이 시작됐다. 

 ◆신약 R&D, 연구비중·효율성 높이고 다국적제약사와 제휴=국내 제약기업들은 우선 혁신 신약 개발을 위해 연구개발 비중을 높였다. 또 매출 원가율을 낮춰 생산 효율성을 제고하는데도 적극적이다. 새로운 환경에 맞춰 미래 먹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눈을 해외로 돌리기도 한다. 연구개발 역량 강화를 위해 회사가 적극 나서기도 한다. 각지에 분산됐던 연구개발 센터를 한 곳으로 모아 신약개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다국적제약사와 제휴해 해외에 진출하기도 한다.

SK케미칼은 국내 최고 수준 R&D 투자로 제약시장을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실제 SK케미칼은 1999년 국산신약 1호인 항암제 ‘선플라’를 개발해 국내 신약개발의 문을 열었다. 이후 관절염 천연물신약 조인스, 발기부전신약 엠빅스 등을 발매하면서 국내 대표 R&D 제약사로 자리매김 했다. SK케미칼은 2000년 이후 매출액의 10~15%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해외 신약개발·수출 네트워크 개발에도 열심이다. SK케미칼은 1999년 국내 최초로 소화성궤양 치료제 ‘오메드’를 유럽시장에 수출했다. 이후 중동·동남아 지역으로 수출 범위를 확대하고, 수출 품목 수도 늘렸다. 올해는 치매치료 패치 ‘SID710’의 유럽 허가 신청을 완료하고, 유럽 내 주요 제약사 12곳과 판권·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종근당은 당뇨병·고도비만·표적항암제 분야 신약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항암제 ‘캄토벨’ 개발을 통해 축적한 신약개발 경험을 살린 것이다. 현재 당뇨병치료제 로베글리타존은 개발을 종료하고 품목허가를 진행하고 있다. 이 약은 지식경제부의 충청광역경제권 선도사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도비만치료제 ‘CKD-732’는 지난해 호주에서 임상 1상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해 정상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차세대 항암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JW중외제약은 연구개발 효율성을 높이는데 집중했다. 지난 6월 본사를 서초동 JW타워로 이전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경기도 화성시에 있던 신약연구센터와 서울 가산동 CMC연구센터를 본사로 옮겼다. 회사 관계자는 “여기저기 분산됐던 연구센터를 한 곳에 모아 우수한 연구인력을 확보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이 회사는 현재 미국과 한국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Wnt표적항암제를 비롯한 혁신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전략이다.

 LG생명과학은 내년부터 신약개발 효과가 기대되는 회사다. 최근 개발을 완료한 당뇨병치료제 ‘제미글로’와 혼합백신 ‘유포박-히브’등이 주인공이다. 특히 혼합백신 유포박-히브는 세계보건기구(WHO)에 품질인증을 받았다. UN산하기관인 유엔아동기금(UNICEF), 범미보건기구(PAHO)이 주관하는 국제 구호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관련업계에서는 LG생명과학이 약 5000억 원 규모의 입찰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1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미약품도 R&D에 적극적이다. 이 회사는 항암·바이오·복합신약 분야에 집중 투자해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연구개발 성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2006년 자체 개발에 성공한 랩스커버리(LAPSCOVERY) 기술은 바이오 의약품의 단점을 개선하는데 적용된다. 한미약품은 이 기술을 활용해 당뇨병치료제·인성장호르몬·C형간염치료제 바이오신약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인 머크와 함께 복합 고혈압치료제 아모잘탄을 해외 수출하기로 했다. 전세계 51개국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둔 것. 이런 성과를 토대로 한미약품은 GSK와도 함께 복합신약을 개발하기로 했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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