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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30년 … 1조5000억 투입, 모바일 코리아 시대 연다

1999년 4월 초고속 인터넷 ADSL 서비스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신윤식 하나로텔레콤 사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화상 통화를 하고있다. [사진 SK브로드밴드]
1982년 5월, 경북 구미에 있던 한국전자기술연구소(현 ETRI)와 서울대의 컴퓨터가 연결됐다. 전에도 컴퓨터간 연결은 있었으나 현재 인터넷의 근간을 이루는 표준 프로토콜(TCP/IP)을 기반으로 전산망이 구축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는 세계 유일의 인터넷 사용국가이던 미국이 군사기밀 보호를 이유로 인터넷 관련 장비 판매를 거부하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전길남 박사팀이 독자적인 기술로 TCP/IP를 이용한 연결에 성공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국가가 됐다.



1982년 세계 두 번째 설치
1786만 명이 초고속망 접속
차세대 기술개발에 힘 모아

이듬해인 1983년 국내 인터넷은 해외 인터넷과 최초로 연동된다. 한국과학기술원(현 KAIST) 전산학과가 유럽의 EUNET과 연결됐고 이어 미국 UUCPNET과도 연결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200bps의 속도로 해외와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됐다.



1986년 데이콤(현 LG유플러스)은 PC통신 상용서비스인 천리안을 개시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구조가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변하기 시작하던 때라 서비스 산업의 근간인 통신망 건설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설 때였다. 천리안은 생활정보 DB를 바탕으로 가입자수 100만 명을 돌파했고 이어 케텔(나중에 하이텔로 변경)·나우누리·유니텔 등 다양한 PC통신 서비스가 탄생했다. PC통신은 채팅·동호회·전자사서함의 기능을 갖춘 사이버커뮤니티의 원조라 할 수 있다.



1994년은 우리나라 인터넷 대중화의 원년이라 할 수 있다. 그해 6월 한국통신(현 KT)은 국내 최초의 인터넷 상용서비스인 ‘Kornet’을 출시했다. 대학과 연구소의 전유물이었던 인터넷이 일반 대중을 위한 서비스로 확산된 것이다. 특히 1994년은 정부가 정보통신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정보통신 관련 기능을 모아 정보통신부(현 방송통신위원회)로 확대 개편한 해이기도 하다.



1998년 국내 인터넷 사용자들은 인터넷 속도가 갑자기 수백 배 빨라지는 경험을 한다. 두루넷이 국내 최초로 케이블모뎀을 이용해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99년 정보통신부는 ADSL을 승인함으로써 하나로통신(현 SK브로드밴드)·한국통신 등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인터넷 이용자 수는 급격히 늘기 시작한다.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는 1999년 37만, 2000년 402만, 2001년 781만 명으로 크게 늘었고 2002년 10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인터넷 가입자는 1786만 명에 이르고 있다.



2000년대는 중반부터는 인터넷 관련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2006년 세계 최초로 휴대 인터넷(와이브로)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고 2008년에는 대표적인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인 IPTV가 도입됐다.



특히 2009년 말 등장한 스마트폰은 인터넷 생태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하드웨어 중심의 인터넷 산업구조가 응용 서비스·콘텐트·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었다. 방통위는 이러한 변화에 맞춰 ▶광대역 무선네트워크 확충 ▶차세대 모바일 기술 개발 등 4개 분야 10대 핵심 과제에 5년간 1조5000억원을 투입하는 ‘모바일 코리아’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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