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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내가 그 이름을 지어주기 전에는 하나의 정책에 지나지 않았지만 …

[게티이미지]

방송통신위원회는 6월부터 이동통신 재판매(MVNO) 서비스의 홍보 용어로 ‘알뜰폰’이라는 애칭을 쓰고 있다. 이동통신 재판매는 자체 통신망을 갖추지 않고 대형 통신사의 통신망을 빌려서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휴대전화 서비스를 하는 저가통신 사업이다. 방통위는 4~5월 공모전을 거쳐 선정된 용어 중 ‘알뜰폰’을 선택했다. 통신비를 아낄 수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한편, 용어 사용이 간편해 이용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 후 알뜰폰은 언론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공식 용어가 됐다. 사업도 순항 중이다. 알뜰폰 가입자는 7월 말 기준 87만4000여 명에 달한다.

 정부도 정책 네이밍에 신경을 바짝 쓴다. 정책 네이밍이 정책 성공의 내비게이션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실은 올해 초 정책 네이밍 가이드북 『네이밍으로 공감하라!』(이하 가이드북)를 발간하기도 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정책 네이밍(브랜드)은 국민이 정책을 접할 때 가장 먼저 인지하는 용어”라며 “정책에 대한 선호·기억·태도 등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좋은 이름은 구전(口傳) 효과가 크기 때문에 정책 홍보에도 도움이 된다.

 가이드북은 몇몇 정책 네이밍을 모범 사례로 소개했다. ‘미소금융’이나 ‘햇살론’은 긍정적 이미지를 부각시켜 정책 성과를 높인 네이밍 사례로 꼽혔다. 미소금융은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힘든 금융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창업자금 등 자활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지원하는 소액대출 정책이다. 서민에게 생소한 ‘마이크로금융’이라는 전문 용어 대신,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연상되는 ‘미소금융’을 선택했다. ‘아름다운 웃음(美笑)’이라는 뜻을 담아 삶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는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측면도 있다.


 저신용 저소득 서민에게 생계 운영자금을 저금리로 지원하는 햇살론도 마찬가지다. ‘보증부 서민 대출 상품’이라는 딱딱한 옛 이름을 버리고 ‘햇살론’이라는 새 이름으로 재출시하면서 서민의 폭발적 관심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보금자리주택’은 정책의 본질에 충실한 네이밍으로 평가됐다.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과 내 집 마련을 지원하기 위한 임대주택과 중소형 분양주택이 보금자리주택이다. ‘주거지’를 뜻하는 우리말인 ‘보금자리’를 사용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기억하기 편하다. 가이드북은 “종전의 ‘주공아파트, 임대아파트’보다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며 “친서민 이미지뿐만 아니라 정책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평했다. 보금자리주택은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의 10대 히트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책 네이밍은 일반 국민의 인지(認知) 프레임을 형성하는 ‘정책의 첫인상’이다. 그래서 프레임을 선점하는 효과가 있다. 프레임(frame)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고정관념을 뜻한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부자 증세안을 ‘버핏세(稅)’로 네이밍, 공화당을 압박하는 고지를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교육과학기술부의 입학사정관제는 어려운 한자어를 썼다는 점에서, 지식경제부의 ‘QWL 밸리(일하며 배우고 문화생활도 누리는 복합산업공간)’는 발음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아쉬운 네이밍 사례로 지적됐다. ‘영리병원’도 네이밍 실패 사례다. 의료의 공공성을 훼손할 것이란 잘못된 이미지를 줬고, 이는 반대 측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정부가 뒤늦게 정확한 의미를 담아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고쳐 불렀지만 ‘영리병원’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올 3월 첫선을 보인 ‘K-컨슈머리포트’를 4개월 만에 ‘비교공감’으로 바꿨다. 대국민 공모를 통해 영어 명칭을 한글 이름으로 바꾼 경우다. ‘미국 컨슈머리포트의 아류’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명칭을 변경했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하지만 ‘컨슈머리포트’란 이름이 이미 소비자 뇌리에 박혀 있다 보니, 최근까지도 ‘비교공감’이란 이름 앞에 ‘옛 K-컨슈머리포트’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아직 네이밍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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