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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통일항아리가 깨진 독 된다면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차장
통일부가 입주한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4층 로비에는 높이 51㎝의 큼지막한 백자 항아리 하나가 놓여 있다. 지난 6월 류우익 장관이 경북 문경의 영남요에서 전통의 달항아리 기법으로 빚은 작품이다. 항아리의 위와 아래 부분을 따로 만들어 하나로 합쳐 구워내는 전래의 방식이 마치 남북이 하나 되는 통일 과정을 상징하는 듯하다. ‘평화통일’이란 푸른색 글씨가 새겨진 이 항아리는 통일부의 혼이 깃든 신줏단지로 자리잡았다.

 통일항아리는 지난 19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류우익 장관의 대표 아이콘이다. 우리 조상들이 밥 지을 때마다 단지에 쌀을 조금씩 덜어두었다가 급할 때 요긴하게 썼듯이 통일항아리에 남북통일에 대비한 재원을 차곡차곡 준비해 가자고 류 장관은 강조해 왔다. 장관의 한 달치 월급 기부에 고위 공무원단은 각 100만원 안팎의 성금으로 화답했다. 사회 지도급 인사를 중심으로 지난 6월 출범한 ‘통일생각’이란 단체는 3억원이 넘는 국민 성금을 모았다. 지난 13일 대전을 출발해 12개 주요 도시를 돈 ‘통일항아리 국토대장정’도 20일 서울 행사를 끝으로 성료됐다. 떠들썩하진 않지만 국민 마음속으로 점차 번져나가고 있다는 게 통일부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통일항아리에 돌팔매질을 해대는 목소리도 있다. ‘그럴 돈이 있으면 대북 지원이나 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집요하게 요구해 온 이들은 정작 북한당국이 밀가루 1만t 등 100억원어치의 대북 수해 구호 물자를 거부한 데 대해선 아무런 쓴소리를 못한다. ‘통일비용을 들고 나온 건 흡수통일을 하자는 것’이란 생뚱맞은 비판도 나온다. 북한도 “이명박 괴뢰패당의 흡수통일 음모”란 비방을 쏟아내고 있다. 남북협력기금에 ‘통일재원’ 계정을 마련하려는 법안을 다뤄야 할 국회도 마음이 12월 대선 콩밭에 가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항아리에 힘을 보태려는 바람은 해외에서 더 거세게 불고 있다. 며칠 전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북미주 지역을 책임진 김영호 부의장이 류 장관을 찾아왔다. 미주동포들이 뜻을 모아 통일항아리에 쾌척하겠다는 얘기였다. 30년 전 무일푼으로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로 건너가 천신만고 끝에 엄청난 부를 이룬 김 부의장은 “이제 우리 미주 동포들이 조국을 위해 기여할 일을 찾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천군만마를 얻은 류 장관은 통일항아리를 지고 태평양을 건널 기세다.

 20년 뒤 통일이 이뤄질 경우 첫해 최소 55조원의 통일비용이 든다는 게 전문기관의 분석이다. 통일항아리로 천문학적 비용을 다 마련할 순 없다. 그야말로 국민들의 통일의지를 결집할 상징물인 셈이다.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은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혼란이고 재앙이지만, 준비된 통일은 축복”이란 교훈을 한국에 줬다. 모처럼 통일에 대한 국민 관심을 일깨워준 통일항아리를 깨뜨려서는 얻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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